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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휘자에겐 인고의 시간과 노력 필요"

장지영 입력 2022. 01. 22.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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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성시연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지휘자 성시연이 지난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심포니와 서울시향의 첫 여성 부지휘자에 이어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 최초 여성 예술단장 겸 상임 지휘자를 역임한 성시연은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에서 동양인 여성 지휘자라는 한계를 극복해가고 있다. 윤성호 기자


지휘자 성시연(46)은 지난해 11월 5일 세계 최정상 악단 가운데 하나인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를 지휘했다. 한국 지휘자로는 정명훈에 이어 두 번째. 탁월한 음향을 자랑하는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 메인홀에서 탄둔의 트롬본 협주곡 ‘비디오 게임 속 세 뮤즈’, 테오 페르바이의 ‘터널 끝에 보이는 빛’, 윤이상의 ‘무악’, 벨라 바르토크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을 선보였다.

네덜란드의 주요 언론 ‘드 폴크스크란트’(de Volkskrant), NRC 한델스블라트(Handelsblad), 트라우(Trouw)는 콘서트 리뷰에서 호평을 쏟아냈다. 드 폴크스크란트와 NRC 한델스블라트는 별점 5개, 트라우는 별점 4개와 함께 “여성 지휘자로는 역대 8번째로 RCO와 함께한 성시연이 인상적인 데뷔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성시연이 지난해 11월 세계 최정상 악단 중 하나인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는 모습. ⓒ성시연


성시연은 데뷔 20주년을 맞은 올해 독일의 명문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을 비롯해 스페인, 프랑스, 미국, 뉴질랜드 등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성시연의 발걸음은 단단하고 곧게 앞을 향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성시연은 지난 6일 서울시향 신년음악회를 지휘하며 1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섰다. 지난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되찾은 음악의 가치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세상을 뜨고 가족을 잃는 상황에서 한동안 음악의 역할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음악이 우리 사회에 무슨 메시지를 던지고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잇단 공연 취소로 인한 상실감도 컸어요. 팬데믹 이후 비대면 온라인 공연만 해오던 베를린필이 2020년 9월 대면 공연을 다시 시작해서 보러 갔는데, 어느새 눈물을 흘리는 저 자신을 보며 ‘이게 음악의 힘이구나’를 느꼈죠.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된 단원들의 희열을 통해 ‘우리 음악가는 이 순간을 위해 살고 있구나’라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음악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 순간 코로나19로 인한 성시연의 불안과 의심도 사라졌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RCO 지휘가 대표적이다. 원래 RCO는 중국 출신의 스타 작곡가 탄둔이 지휘까지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탄둔이 코로나19 여파로 네덜란드에 올 수 없게 되면서 성시연에게 기회가 왔다. RCO 단원이 협연자로 나오는 탄둔의 신작 ‘비디오 게임 속 세 뮤즈’를 제외하고 나머지 프로그램은 성시연의 제안으로 변경됐다.

“RCO가 탄둔을 대신할 수많은 지휘자 후보 가운데 저를 선택한 게 기쁘면서도 부담이 됐는데요. 원래 현대음악으로 프로그래밍됐던 공연인 만큼 탄둔의 ‘비디오 게임 속 세 뮤즈’를 제외하고 제가 잘 아는 곡들로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이 요즘은 유럽에서 많이 연주되지 않는 편이지만, 제가 지휘봉을 잡을 때면 최대한 공연 프로그램에 넣으려고 합니다. RCO에서 나이든 단원들은 ‘오랜만에 윤이상 곡을 하게 됐다’며 좋아했고, 젊은 단원들은 ‘윤이상의 곡이 정말 강렬하다’고 말했습니다.”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 소개에 대한 책임감

윤이상(1917~1995)은 유럽 음악계에서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성시연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장 시절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콘서트 및 해외 투어를 통해 국내외에서 윤이상을 재조명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서도 윤이상의 작품인 ‘예악’을 선보일 계획이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서 상임지휘자로 활동할 때의 모습.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2017년 경기필의 베를린 공연을 봤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관계자가 저를 초청하면서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을 요청했습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선 윤이상 선생님의 ‘예악’ 외에 진은숙 선생님의 생황 협주곡 ‘슈’ 등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기회가 되면 두 거장 외에 젊고 유능한 한국 작곡가의 곡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성시연은 서울예고를 졸업한 뒤 스위스 취리히 음대와 독일 베를린 국립 음대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전공을 바꿔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2002년 베를린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지휘로 데뷔한 이후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그는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콩쿠르 우승에 이어 2007년 구스타프 말러 지휘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미국 보스턴심포니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지휘자(2007~2009) 및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첫 여성 부지휘자(2009~2013)로도 활약했다. 2014년 경기필의 수장이 되며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 최초 여성 예술단장 겸 상임 지휘자가 됐고 한 차례 연임하며 경기필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2018년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떠나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섰다.

보스턴심포니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할 때의 모습. ⓒBoston Symphony


“외국 생활이 힘들긴 하지만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교감하며 음악적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지휘자라는 직업은 경험 문화 언어를 모두 합쳐 완성되는 만큼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휘한 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배울 게 많은 것 같아요. 한 번의 리허설만으로도 단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지휘자가 되기까지 더 성장해야죠.”

클래식계 흔드는 여성 지휘자들의 약진

보수적인 클래식계에서 지휘는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자신의 음악적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나 상임 지휘자까지 도달하는 여성은 매우 적다. 최근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클래식계에도 성평등 의식이 확산하면서 재능있는 여성 지휘자들을 음악감독 또는 상임 지휘자로 임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성시연은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동양인 여성 지휘자라는 한계를 극복해가고 있다.

“제가 지휘를 배우기 시작할 때와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여성 지휘자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완화된 게 보여요. 가령 여성 지휘자들의 대모 격인 마린 알솝이나 시모네 영 같은 60대 선배들을 보면 파워풀합니다.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죠. 하지만 요즘 젊은 여성 지휘자들은 여성성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특유의 경쾌함이나 발랄함도 개성으로 인정하는 추세에요. 제 경우 여성 지휘자로서 ‘끼인 세대’인데다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좀 더 도전정신을 갖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유럽 오케스트라와 처음 만날 때 선입견과 낯섦 때문에 동양인 여성 지휘자가 제시하는 음악적 해석에 일단은 설득당하지 않으려는 게 보이곤 해요. 결국 지휘자로서 음악성으로 단원들에게 어필하는 것 외엔 없더라고요.”

지난 19일 베를린으로 돌아간 성시연은 다음 달 3~4일 스페인 빌바오 오케스트라 지휘를 시작으로 유럽 활동을 재개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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