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고지 통제된 겨울 제주서 설문대할망을 만나다 [여행+]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날씨가 심상치 않다. 겨울의 호젓한 바닷가를 기대한 일정이었다. 1100로(路)가 폭설에 얼어붙어 통제되면서 눈꽃 트래킹이 강제됐다. 바다라고는 카페 아라파파 북촌에서 다려도 풍광을 배경으로 본 게 전부다.
이튿날 잠시 날이 개며 한라산 풍경이 눈에 들었다. 겨울 제주 여행에서 흰눈이 쌓인 설문대할망의 얼굴을 마주할 줄 몰랐다. 예측불허 제주의 겨울 날씨나 과음으로 쓰린 속은 빌레왓의 보말파스타로 해장하면 그만이다.
1100로는 한라산 정상을 동쪽에 끼고 제주와 서귀포시를 잇는 산간도로다. 도로 꼭대기인 1100고지에는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개척한 산악인 고상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원과 휴게소가 있다. 한라산을 가장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뷰 포인트라 사계절 내내 북적인다. 휴게소 건너편은 2009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1100고지 습지다. 습지 16곳이 군데군데 퍼져있다. 노랑턱멧새, 흰눈썹황금새, 큰부리까마귀, 곤줄박이, 노루, 오소리 등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제주 도착 첫날 1100로의 서귀포 방향이 폭설로 통제됐다. 스노체인이 없는 차량들이 1100고지를 메웠다. 요즘 눈이 잦고 기온이 낮아 상고대가 지천이다. 휴게소 오른쪽에 있는 사슴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이들이 넘쳐난다. 길 건너 나무 데크가 놓인 675m의 탐방로를 따라 20분가량 눈꽃 트래킹에 나섰다. 하얀 눈이 온세상을 덮어 습지는 온데간데없다. 가는 곳마다 눈 터널이다. ‘제주 최고의 눈꽃 명소’라거나 ‘여름보다 겨울 여행객이 많다’는 설명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1100고지에서 조금 내려오니 눈밭이 조금씩 희미해지더니 멀리 바다가 보일 때쯤엔 주변에 눈이 없다. 배 대표는 “제주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며 “겨울에 해를 볼 날이 적어 섬을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돌문화공원은 제주 탄생 신화인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주 테마로 제주 혼을 담은 100만평의 대자연 속 박물관이자 생태공원이다. 공원 한쪽 설문대할망 제단에는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으로 돌과 흙을 날라 제주 섬을 만들었다”며 “이때 치마의 헤진 틈으로 흘러내린 돌과 흙이 여기저기 쌓여 360여개의 오름들이 생겨났다”는 설명이 붙었다. 또 다른 제주 토박이조차 오름이 300개가 넘는다는 설명에 감탄하고 만다.
설문대할망에 얽힌 이야기는 더 있다. 설문대할망이 오백 아들을 먹이려 솥에 몸을 던졌고, 뒤늦게 이를 알게된 오백장군이 원통해하며 한라산 영실과 차귀도의 기암괴석이 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매년 5월 한라산 정상을 붉게 물들이는 철쭉은 그때 오백 아들이 흘린 피눈물이라고 한다.
돌문화공원의 탄생 배경은 유명하다. 1971년 여름 탐라목물원으로 문을 연 탐라목석원은 2009년 여름 폐원했다. 백운철 전 목석원장은 평생 모은 돌 2만점을 기증하고 돌문화공원 조성을 도맡기로 했고, 20년 협약 기간이 지난 2020년 12월 끝났다.
오백장군갤러리로 향하는 길에 한라산 영실의 기암절벽에 내려오는 전설 속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석상과 상징탑이 즐비하다. 공원 동북쪽에 건설 중인 설문대할망 전시관까지 완성되면 공원 조성이 마무리된다. 언제쯤 완전한 돌문화공원을 보게 될까.
스누피가든을 여정에 넣을까 고민했다. 어릴적 스누피나 찰리 브라운보다 담요를 끼고 사는 라이너스를 더 좋아했지만, 이 역시 수십년 전 얘기이다. 찰스 슐츠가 1950년부터 50여년간 신문에 연재한 토막 만화 피너츠는 비글인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 루시, 라이너스 등의 일상을 소재로 한다.
정오쯤 되자 한라산에 설문대할망의 얼굴이 드러났다. 전날 내린 눈으로 하얗게 분칠한 할망 얼굴 위로 구름이 지나가자 SNS에 “설문대할망이 담배를 피운다”는 글이 떠돌았다. 배 대표는 “설문대할망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날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했다.
제주=글·사진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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