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 일주일 뒤..MB "떠나간 분 뜻을 잘 받들어야" [대통령의 연설]
'박정희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은?' '이명박 대통령이 기억하는 현대건설은?'…<대통령의 연설>은 연설문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머릿속을 엿보는 연재 기획입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남아 있는 연설문 약 7600개를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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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연설] 이번 회차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그 이후 대통령들이 각자의 전임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언급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회차부터 언급되는 전임 대통령은 모두 직선제를 통해 선출됐는데요. 그만큼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전임 대통령에 대한 언급 내용도 극명히 엇갈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적은 달랐지만 연설에서 동지애가 느껴지는 전현직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같은 당에서 배출됐지만 전혀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던 사례도 있고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을 언급한 기록이 딱 한 줄 있는데요. 1996년 경향신문 특별회견에서 '두 전직 대통령(전두환·노태우)의 사면을 검토할 의향이 있나'라는 질문에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사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 정도로 언급이 없는 사례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설 기록 정도입니다. 취임식 때를 제외하면 아예 언급이 없는데요. 같은 당 소속이면서도 심각한 갈등 양상을 겪었던 두 대통령 사이가 반영된 결과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의 라이벌인 김영삼 전 대통령을 추켜세운 연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기념식을 비롯해 각종 민주화운동 행사에서는 두 사람의 동지 의식이 잘 드러납니다. 특히 민추협은 두 대통령이 군사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쳐 만든 단체인 만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연설문에서 빼놓는 게 더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그해 10월에는 부산 민주공원 개원식 연설을 통해 "특히 저는 이 자리를 빌려 1979년 당시 야당 총재로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과감하게 투쟁해 부산과 마산 그리고 전 국민 궐기에 크게 기여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로에 대해서 여러분과 같이 높이 찬양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이후 민추협 16·18주년 기념식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16주년에는 "민추협의 결성은 1984년 당시 군사독재 체제의 폭압 속에서 민주화의 횃불을 높이 든 역사적 사건이었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제가 공동의장으로 나선 가운데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민주화의 빛나는 이정표였던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연설문에는 임기 내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가득합니다. 노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는 과정에서부터 동교동계 인사들과 대립하고 임기 중반 열린우리당 창당과 임기 말 분당 사태까지 겪은 것과 꽤나 온도차가 느껴지는 연설문인데요.
2003년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 축사에서는 "우리 국민들은 퇴임한 이후에도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봉사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고대해왔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국민 여러분께 기쁨과 희망을 드리는 자리다. 각 정당 대표와 각계 지도자 분들이 모두 함께 한마음으로 축복해주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대통령으로 일컬었습니다.
이처럼 아예 김 전 대통령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에 축사를 한 사례가 무수히 많습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자연히 김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지 않겠냐 하실 수 있을 텐데요. 여타 연설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2005년 중앙공무원교육원 신임 관리자 과정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은 '권력기관 개혁정책 탓에 국정 장악을 못하고 있지 않나'라는 질문을 받고 대뜸 "나는 김대중 대통령만큼 유능한 대통령을 본 일이 없다"는 말을 내뱉습니다.
이어서 "그분도 인품만으로 나라를 이끌어갔다고 생각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는데요. 질문자 생각처럼 권력기관 도움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일이 어렵다고 토로하기 위해서였죠. 김 전 대통령을 칭송하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역설적으로 평소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가장 잘 드러난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연설 기록은 2009년 6월 1일 '제16차 라디오·인터넷 연설-북핵 포기는 상생과 번영의 출발'입니다. 노 전 대통령 기일로부터 일주일가량 흐른 뒤의 연설문이죠. 그사이 봉하마을과 경복궁 영결식 장소에는 조문객 수백만 명이 줄을 이으며 국가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는데요.
이 전 대통령 임기 말에 이르러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는 연설이 또 등장합니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에 관한 국정 연설'인데요. 진보진영에서 버림받으면서까지 한미 FTA를 관철시킨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때 한미 FTA 협상을 주도한 분으로 역사에 분명히 기록되어야 한다"며 "현 정부는 바로 그 나무에 열매를 맺고자 한다. 그 열매는 미래 대한민국과 미국 두 나라 국민이 거두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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