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혼자인 순간은 없다

한겨레 입력 2022. 1. 22. 22:26 수정 2022. 1. 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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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런, 홀로!?][한겨레S] 이런 홀로 _ 소음, 내 영역을 침범하는
옆집 코골이 소리에 잠 못들거나
밤늦은 소란으로 놀라기도 하지만
미안하다는 윗집 사과에 웃기도
어떤 이웃 될지는 내 선택에 달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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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하지만 완벽하게 혼자인 순간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직장인은 도리 없이 매일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원치 않는 타인의 소음과 냄새 등에 노출되는데, 사실 집에 돌아와도 옆집, 윗집의 소음은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 인구는 자꾸 줄고 있다고, 국가 위험 신호라는데 내가 사는 지역은 어쩐 일인지 인구 과밀지역이었다. 작은 창문을 열면 맞은편 건물 창문으로 그 집 식구가 러닝셔츠만 입고 티브이(TV) 보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앞 건물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 창문을 열고 흡연을 하면 연기가 우리 집 창문으로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만큼 다세대주택을 다닥다닥 붙여서 짓는 것이다.

어느 날은 오후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니 건너건너 건물 옥상에 황색 개가 묶여 있었다. 그 집 옥상에 개가 묶여 있는 날에는 학대를 당하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기도 일정치 않았다. 어느 땐 2주 동안 개가 보이지 않아 안심했다가, 또 어느 날은 낮부터 오후까지 묶여 있는 걸 보기도 했었다. 주말 오후에 개를 보게 된 날은 그 집에 찾아가는 상상을 했다. 남의 건물 옥상에 몰래 올라가 낡은 걸쇠를 끌러내고 개를 탈취하는 것이다. 물론 원룸으로 큰 개를 데려올 수 없어 언제나 상상에서 끝났지만, 가끔 남의 옥상을 볼 때마다 거기 동물이 묶여 있진 않은지 살펴보게 된다.

층간·벽간 안 가리는 소음

지금 사는 임대주택은 앞 동이 없지만 그 대신 관공서가 자리하고 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출근해 운동하는 공무원들의 바지런함에 감탄하기도 하고, 가끔 샤워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 다급하게 내 집 커튼을 닫을 때도 있다. 시각은 커튼으로 차단하면 되지만 소음은 차단이 어렵다. 임대아파트들의 벽면이 너무 얇아 층간, 벽간 소음이 심각하다고 뉴스에 나온 적이 있는데, 방송 내용을 보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질 않는다. 방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부르면 몇 절인지 옆집에서 알 수 있다. 이걸 벽이라고 불러도 좋은지 모르겠다. 집과 집 사이를 가로막는 벽 공사를 무엇으로 한 걸까. 나무? 스티로폼? 플라스틱? 어쨌든 방음이 잘되는 재질은 아닐 것이다. 뒤늦게 뉴스를 본 나는 ‘우리 집이 그나마 낫네’라고 안심했다.

내가 사는 임대아파트는 구조상 옆집 안방과 우리 집 안방이 붙어 있는데, 침대를 벽에 붙이면 옆집 사람과 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잠을 청하는 구조가 된다. 그래서인지 옆집 남자가 코를 골면 탱크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려온다. ‘아, 오늘은 많이 피곤하셨나 보네. 10시부터 주무시고’라며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잠을 청할 때도 있다. 새벽까지 코골이 소리가 천장을 뒤흔드는 날이면, 그게 괴로우면서 ‘내 소리도 저 집에 다 들리겠지’ 싶어져 미안하고 두렵다. 비염으로 인해 밤낮 코를 풀어대는 내 소음도 저 집에 다 전해지겠지, 싶은 것이다.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각방 쓰는 부부가 된 것 같아. 옆방에서 남편이 심하게 코를 고네’라고 하소연할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여기 오래 살고 싶다. 벽간 소음은 있지만 그간 거쳐온 다른 집들에 비하면 처음으로 집이라고 할 만한 집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코골이가 심한 남자와 함께 잠을 청하고 있다. 극세사 벽을 사이에 두고.

임대주택 입주를 한참 고민했다. 보증금이 너무 높고 외진 곳이라 출퇴근이 30분은 더 걸리기 때문이었다. 일단 집을 한번 보고 결정을 하고 싶었는데 계약금을 먼저 내야 했다. 집을 보러 온 날, 문에 작은 쇼핑백이 하나 걸려 있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입주를 축하한다”며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했을 리는 물론 없고, 작은 종이가방을 열어 보니 외제 과자와 쪽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윗집에 사는 사람이에요. 제가 어젯밤 저희 집으로 착각하고 비밀번호를 눌러서 놀라셨죠. 밤중에 너무 죄송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저희 고양이를 그리려 했는데 이상한 곰돌이가 되어버렸네요.^^’ 동글동글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메시지를 열어 보고 나는 입주를 결정했다. 이런 이웃이 위에 산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서울시 저임금 청년과 빈곤 노인, 신혼부부 세대가 2 대 5 대 3의 비율로 거주하는 지금의 임대아파트는 무척 조용한 편이다. 만약 내가 입주했을 때 밤늦게 누군가 자기 집인 줄 알고 문을 막 흔들었다면 화가 나고 소름이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입주 전인 집 문을 흔들어대고 미안하다며 쪽지와 과자를 남긴 윗집 여성이 나는 마냥 귀엽기만 했다.

비타민에 실린 정중한 사과

친구 케이(K)는 가족과 살지만, 작업실을 꾸려 일주일에 절반은 거기 기거한다. 이전 작업실은 옆방에서 타투 작업을 하는 남자가 록을 크게 틀어놓고 시도 때도 없이 흡연을 하는 통에 창을 열 수가 없었다. 그다음 작업실은 윗집 층간 소음이 너무 심했다. 가는 곳마다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케이에게 나는 수많은 원룸과 빌라를 전전해본 경험자답게 충고했다. “지들은 거기 살지도 않을 사람들이 대충 짓고 팔아먹어서 실거주인이 조심해도 소음이 심할 수밖에 없어.” 어쨌든 케이는 계약이 종료되자 다음번 작업실로 이사했다. 세번째 작업실은 꼭대기층이라 층간 소음이 없었다. 그 대신 이번에는 옆집 대학생이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음에 관해서는 참아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케이는 옆집 문에 정중한 메모를 붙여두었다.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케이의 집 앞에 종이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직접 만든 도자기와 ‘밤새 못 주무셔서 피곤하시겠다’며 독일제 ‘오쏘몰’ 비타민이 들어 있었다. 재빠르고 정중한 사과와 값비싼 비타민 선물에 케이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케이가 초콜릿을 사서 쪽지와 함께 옆집 문 앞에 두었다. ‘자정 후에만 조심해주세요. 비타민 고맙습니다’라고.

혼자 살고 혼자 일하고, 1인가구라고 쉽게 통칭되는 삶이지만 산에 틀어박히지 않는 이상 완전히 혼자인 사람은 없다. 옆집, 윗집, 앞집과 불쾌한 충돌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내 영역으로 누구든 침범할 수 있다. 그렇게 훅 끼쳐오는 소음과 냄새를 우리 뜻대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이웃이 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점잖고 단정한 이웃 시민이 될 것인지, 남의 마음과 안전 따위는 아랑곳 안 하는 악당이 될 것인지.

늘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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