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염재호 칼럼] 87년 체제의 종언과 정치개혁 재야의 출범

입력 2022. 01. 26. 00:39 수정 2022. 01. 26. 06:33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히토쓰바시 대학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명예교수는 10년 뒤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일본경제의 쇠락을 경고했다. 이미 구매력 기준 1인당 GDP, 노동생산성, 평균임금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선 것을 두고 옛 대장성 관료출신 경제석학이 일본사회에 던진 경고의 메시지다. 지난해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던 이명찬 박사의 『한일역전』에서도 일본의 우경화와 혐한감정은 객관적인 경제지표에서 한국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에 대한 불안감의 발로라고 분석했다.

이제 삼성의 시가총액이 도요타를 뛰어넘고, 우리나라 주요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일본 주요기업들보다 훨씬 앞서 있다. K팝, K드라마, K게임 등 문화산업에서도 한국이 두각을 나타내자 정부는 코로나 사태에 K방역까지 선전하고 나섰다. 일본이 10년 뒤에는 한국에게 G7의 자리를 내어줄지도 모른다는 노구치 교수의 경고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 87년체제 종식 위해 재야 나서야
재야주도 정치개혁 원년의 해로
선출직에 대한 평가시스템 구축
정치인재 육성프로그램 만들어야

하지만 이런 찬사 뒤에 숨겨진 위험이 더 두렵다. 87년 민주화 체제가 시작되고 10년 만에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 선진화를 이뤘다고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결과였다. 기업도산과 개인파산으로 나라의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개인의 삶은 피폐해졌다. 민주화되었다고 경제자유화만 내세우며 다가오는 위험을 간과한 문민정부의 무능력은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벌일 정도로 경제파탄의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이제 87년 민주화 이후 8번째 대통령을 뽑는 해를 맞았다. 그동안 선출된 7명의 대통령 중 3명은 수감생활을 했고 한 명은 퇴임 후 자살을 했다. 다른 두 명의 대통령은 가족의 비리로 임기 말 곤혹을 치렀다. 한 명의 대통령은 역사상 처음 탄핵이 되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가 독재체제를 청산하고 미래 한국을 이끌어줄 견인차가 되길 기대했지만 우리 정치는 점점 더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87년 체제로 시작된 민주화의 대가는 그리 만만치 않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행복지수는 떨어졌고 소득양극화와 자살률은 높아졌다. 정치민주화로 시민들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갈등은 증폭되고 소통은 사라졌다.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자유를 명분으로 타인의 명예나 가치를 쉽게 훼손한다. 이념의 깃발은 나부끼고 감성적 충동으로 공동체의 선은 뒷전에 내몰린다. 가치판단의 일관성이 무너져 내로남불이 일상화되고 기존의 상식과 합리성은 무시된다. 이런 현상에 정치가 늘 앞장서고 있다.

양당 대통령후보의 비호감도가 60% 정도라고 한다.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수능의 난이도를 낮추고, 반값아파트를 수백만호 건설하고, 만나는 집단마다 기본소득과 봉급을 인상해준다는 즉흥적 선심성 공약만 난무한다. 국가의 미래는 보지 않고 눈앞의 승리만 바라보고 달리기 때문이다. 세대갈등, 젠더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을 증폭시키며 표 계산만 하기에 국가지도자로서 함량 미달을 의심하게 된다.

막강한 권력의 청와대와 국회가 타협과 조정의 정치를 거부하고 일방적 강행의 정치에 빠져 있다. 다수 국회의원이 행정부의 장관으로 임명되고 사법부가 정치화하면서 대통령제에서 상호 견제와 균형을 하는 삼권분립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이제 비호감의 대통령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고 양대 정당이 정치판의 이전투구만 일삼게 되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일본처럼 성장엔진을 멈추게 될 것이다.

우리 눈앞에 닥친 숙제가 너무 많다. 중국과 러시아가 연합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 한반도는 위험의 화약고가 된다. 기술패권과 보호무역은 기존의 글로벌 밸류체인을 흔들고 있다. 노동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 저출산대책 등 국내문제도 산적해있다. 작년에 출범한 일본의 기시다 내각은 개혁과제 첫 번째로 과학기술입국을 위해 100조원 규모의 기금을 마련해 매년 3조원을 미래연구를 위해 대학에 투자한다고 한다. 꾸준히 달려가던 거북이가 샴페인을 터트릴 때 30년간 낮잠만 자던 토끼가 기지개를 펴고 달리려는 셈이다. 우리는 다 이룬 것처럼 도취되어 나누고 퍼주기만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대선후보들로 인해 또 한번의 IMF를 맞게 될까 두렵다.

이제 87년 체제는 종언을 고하고 올해가 재야세력에 의한 정치개혁 원년이 되길 바란다. 87년 체제도 재야의 힘으로 이뤄냈다. 정치가 이대로 우리의 미래를 망치게 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기존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학계, 종교계, 사회운동계뿐 아니라 MZ세대와 재야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에 대한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미래 정치인재들을 체계적으로 키워내야 한다. 아집과 비방, 거짓 선동과 무책임, 춤추고 요리하며 예능을 앞세우는 정치인은 퇴출되어야 한다. 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정치인들이라면 대통령 꿈보다는 무소불위의 대통령제와 양당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광야로 나가 정치개혁에 앞장서면 좋겠다.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전 총장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