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인정 받은 웹툰 작가 "저작권은 작가에 생명줄..뺏기는 일 없어져야"

글·사진 윤기은 기자 2022. 1. 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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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7세 때 연재한 데뷔작, 불공정 계약으로 수익 편취
하루 11시간 일하며 공판 참석…독자들도 힘 보태

웹툰 작가 A씨의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 지난 25일 컴퓨터가 켜져 있다. 윤기은 기자

A씨(27)는 만 17세에 ‘웹툰작가’ 꿈을 이룰 때까지만 해도 저작권 문제로 법정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거대 웹툰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한 레진코믹스의 이사회 의장과 3년 가까이 법정 다툼을 벌였다. 미성년자일 때 레진코믹스와 맺은 불공정 계약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A씨는 데뷔작을 연재한 지 9년이 지나서야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A씨를 지난 25일 서울 광진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A씨가 2013년 레진코믹스와 맺은 계약이 발단이었다. 웹툰 작가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구상하는 ‘글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그림작가’로 나뉜다. 한희성 레진코믹스 이사회 의장(당시 레진코믹스 대표)의 제안으로 2013년 레진코믹스에 <나의 보람>을 연재하기 시작한 A씨는 혼자 글작가와 그림작가 역할을 모두 해냈다. 하지만 한 의장은 ‘업계 관행’이라며 연재 계약서의 글작가에 ‘레진’이라는 이름을 올리고 저작권 수익 15~30%를 떼 갔다.

A씨는 데뷔 5년차쯤 됐을 때 글작가들과 일하다 이상한 점을 느꼈다. 글작가들은 A씨에게 구체적인 스토리라인이 써진 각본과 캐릭터의 움직임이 대략적으로 그려진 콘티를 주었다. 반면 데뷔작을 연재할 때 한 의장이 한 것은 장르를 정한 것, 캐릭터 이름을 정한 게 전부였다. ‘콘티’를 주지도 않았다. 한 의장과 불공정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한 A씨는 2018년 12월 서울 강남경찰서에 한 의장을 고소했다.

법정 다툼은 만만치 않았다. 웹툰 업계와 저작권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가진 경찰 수사관이 드물다보니 A씨가 보강 자료를 수차례 제출해야 했다. 반면 한 의장은 경찰 조사 단계부터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 A씨는 “공판에 가면 항상 한씨 쪽은 바글바글했다. 자료도 이만큼(두 손을 60㎝가량 벌리며) 가져와 위축됐다”고 했다. A씨가 증인석에 설 때마다 상대 측 변호인은 ‘당시 웹툰을 혼자 그려낼 능력이 없지 않았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A씨는 일주일에 6.5일, 하루 평균 11시간 웹툰 작업을 하면서 10~12회 열린 공판에 방청객이자 증인으로 참석했다. 공판 내용을 속기한 뒤 변호인에게 보내 반론을 준비했다.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신인 작가들이 똑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하는 판례를 남기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동료 만화가들도 A씨와 연대했다. 한국만화가협회는 A씨에게 변호인을 소개해주고 법원에 탄원서를 냈다. A씨에게 힘내라고 격려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작가들도 있었다.

불공정 계약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 때는 영하 13도의 추운 날씨에도 독자와 작가들이 함께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의장에게 지난 11일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약식기소한 500만원의 두 배이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설득력 없는 논거를 제시하며 범행을 부인한 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한 의장은 항소했다. A씨가 말했다. “다들 만화를 좋아해서 불공정 계약에 노출되는 것 같아요. 돈을 받으면서 만화를 그려나가기 어려운 환경이니까요. 무기이자, 돈줄이자, 생명줄인 저작권을 작가들이 모두 지킬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합니다.”

글·사진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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