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경주마 참사..'미필적 고의' 판단이 처벌 좌우

송주원 입력 2022. 1.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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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까미' 막을 과실범 처벌·가이드라인 의무화 필요

'태종 이방원'은 지난 1일 방송된 낙마 장면을 촬영하던 중 강제로 쓰러트린 말이 일주일 뒤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다. /동물자유연대 SNS 캡처

[더팩트ㅣ송주원·최의종 기자] 퇴역 경주마 '까미'가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물권 단체의 형사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법률가들은 까미의 부상을 충분히 예견하고도 적절히 조처하지 않았다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2의 까미를 막기 위해 동물보호법 개정과 함께 실무진이 의무적으로 준수할 촬영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지난 1일 방영된 '태종 이방원' 7회에는 이성계가 낙마하는 장면이 담겼다. 극 중 이성계는 물론 말까지 바닥에 머리부터 고꾸라지며 크게 넘어진다. 이후 카라와 동물자유연대 등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말의 발목에 와이어를 묶은 뒤 성인 남성 여럿이 잡아당겨 고꾸라지게 했다. 영상에 따르면 머리부터 땅에 부딪힌 말은 발길질을 하며 고통스러워하지만 촬영 관계자들은 함께 넘어진 스턴트 배우에게만 달려갔다. 까미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이 말은 며칠 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카라'는 20일 태종 이방원 촬영장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서울 마포경찰서에 고발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역시 21일 영등포경찰서에 고발장을 냈다. 동물자유연대는 같은 날 촬영장 책임자와 KBS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영등포서에 고발했다. 경찰 관계자는 "비슷한 사안인 만큼 고발건을 영등포서로 모두 이송해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법률가들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의 발목을 잡아당기면 큰 부상을 입을 것을 누구나 예견할 수 있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충윤 변호사(법무법인 해율 서초사무소장)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의 발에 와이어를 걸어 넘어뜨려 상해를 입힌 행위를 단순 과실로 보기는 어렵다. 누구나 말이 크게 다칠 것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강석 변호사(법무법인 청음 반려동물그룹) 역시 "말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도 동물 보호 장치나 후속 치료 조처 등을 전혀 하지 않았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라고 봤다.

동물학대 행위의 미필적 고의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뒤따랐다. 한재언 변호사(동물자유연대 법률지원센터)는 "과거부터 이러한 촬영 방식으로 피해를 입은 동물이 많았는데도 촬영 방법을 고수했거나, 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매트 등 충분한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미필적 고의 인정 근거가 될 수 있다"며 "미필적 고의 판단은 수사기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건 전후 상황을 꼼꼼히 살피고 적극적으로 법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동물보호법에서도 과실범 처벌 조항을 추가해, 인간의 부주의로 동물이 피해를 입은 사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회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동물학대 살상 행위 규탄 기자회견'을 하며 KBS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까미는 원래 경주마였으나 성적이 좋지 않아 퇴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까미처럼 퇴역 경주마가 대마 업체를 통해 촬영장으로 향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태종 이방원처럼 과거를 배경으로 한 사극 촬영에 수많은 말이 동원되지만 동물 촬영 관련 지침은 미흡하다.

미국에서는 비영리기구 미국인도주의협회(AHA· American Humane Association)는 1940년대부터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 협회는 말을 비롯해 개, 고양이, 물고기 등 각 동물의 특성에 맞는 촬영 지침을 규정하고, 이 지침을 준수한 영화에 한해 엔딩 크레딧에 '어떤 동물도 다치지 않았음'(No Animals Were Harmed) 마크를 명시하도록 했다.

국내에서도 까미가 사망하기 약 1년 전인 2020년 12월 카라에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라는 지침을 만들었다. '말의 걸음걸이에 이상을 주는 어떤 장치나 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등 까미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내용이 담겼지만 관건은 촬영 관계자의 준수 여부다. 신주온 카라 정책실장은 "의무성을 띤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현실이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서 단체의 가이드라인을 차용하거나 신설해 촬영 현장에서 동물의 안전을 힘 있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의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도 문제다. 동물의 부상과 사망 피해는 물론 동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며 촬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섬세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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