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나체 사진 괴롭힘'에 고개숙인 세아베스틸..재판에서도 인정할까?

김수근 2022. 1. 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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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으로 발견된 동생, 장례 치른 뒤 열어본 휴대전화 안에는…]

"둘째가 2~3일째 연락이 안 돼. 회사도 안 갔대"

서울에서 일하던 형은 2018년 11월 "동생과 연락이 안 된다"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세아베스틸 군산공장에 다니고 있던 동생 36살 유 씨는 "공장 앞에 있던 자취방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어진 상황이었습니다.

휴대전화기 위치추적까지 하며 동생을 찾던 형은 집에서 10분쯤 떨어진 금강 하굿둑 인근 공터에서 동생의 차를 찾았습니다. 차 안에서 잠든 듯 앉아 있던 유 씨. 형이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집을 나간지 3일 만이었습니다.

경찰은 가족에게 "한 번 보셔야 할 것 같다"며 유 씨의 휴대전화기를 건넸습니다. 장례식과 각종 서류 정리를 끝내고 나서야 가족들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열었습니다. 그 안엔 유 씨의 25분 분량의 영상 4개가 있었습니다.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유서도 있었습니다.

[죽음이 목을 조여오는 순간까지 남긴 1시간 분량의 영상]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시작하는 영상에서 유 씨는 주로 회사 상사 2명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지 모 씨/제강팀 용해반 반장 - 입사한 달(2012년 4월)에 문신이 있냐고 물어봤다. 없다고 했는데도 팬티만 입게 하고 몸을 훑어보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줬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찍히기 싫어서 이야기를 못 했다. 한이 맺히고 가슴이 아프다. - (휴대전화) 앨범 사진 보면 지 기장이 자랑이라 생각하는 사진이 있다. 낱낱이 조사를 바란다. 나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길 바란다. - 청신경초종(뇌종양) 진단을 받고 출근. 여러 사람 있는 데서 고함치듯 소리가 들려온다. '너 뇌종양이야?'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재발하면 어쩔 건데?' 네가 미리 그런 질문 안 해도 된다. - 2016년 11월 23일 16시30분 경, 00복집에서 볼 뽀뽀. 17시 40분 경, 00노래방 입구에서 볼 뽀뽀. 그따위로 행동하는 게 난 정말 싫다.

# 조 모 씨/제강팀 용해반 선배 -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났냐? 성기 좀 그만 만지고 머리 좀 때리지 말아라. 이렇게 죽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다.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던 2012년 4월부터 사망 직전까지 회사 사람들에게 성추행과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 지 씨는 평소 유 씨가 가족에게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던 선배였습니다. 그런 지 씨는, 병 치료를 위해 연차를 낸 유 씨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습니다. 유 씨는 이런 사실을 가족에게 모두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유 씨의 휴대전화기 앨범에선 사람들이 나체로 서 있는 단체사진이 있었습니다. 회사 공용 컴퓨터에 옮겨져 있던 사진인데, 사진 속에선 가해자로 지목된 지 씨와 조 씨만 옷을 입고 있습니다. 유 씨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채 무리에서 가장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힘들어, 막 나를 욕하고 괴롭혀, 이 정도 선에서만 이야기했어요. 누가 자기 옷 벗겼다고 어떻게 쉽게 말하겠어요. 얼마나 맺힌 응어리가 많았으면 자기가 당했던 안 좋은 기억들만 이야기하고 그런 선택을 했을까." - 故 유00 씨 형

가족들은 이 내용을 정리해 유 씨가 사망한지 석달 뒤인 2019년 2월 회사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진실을 얘기하고 세상을 등진 착한 동생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가해자들은 혐의 부인… 유 씨 동료들 "진짜 그랬다"]

회사는 외부 노무법인에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한 달간 가해자들과 동료 선후배까지 12명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반장급인 지 씨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거나 축소했습니다. "문신 검사를 위해 옷을 벗으라고 했지만, 상의만 벗게 했다, 야유회에서 옷을 벗은 건 강요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유 씨의 성기를 만졌다고 지목당한 조 씨는 "동료로 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하고 "장난으로 툭 치듯이 만졌다"고 했습니다. 큰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였습니다.

함께 조사를 받았던 동료들이 용기를 냈습니다. "지 씨와 조 씨의 행동에 대해 목격했다, 유 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거들었습니다. "나도 당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덕분에 당시 회사 조사는 '유 씨의 피해가 인정된다'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노무법인은 지 씨에 대해 정직 3개월 이상의 중징계와 직위해제, 조 씨에 대해서는 정직 1개월에서 3개월 처분을 내리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반성의 태도와 개전의 정(뉘우침)이 매우 미흡하다'는 의견도 달았습니다. '남성들만 있는 조직인데 상급자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매우 취약하다'고 회사 분위기도 꼬집었습니다.

['정직 3개월'과 '정직 2개월'..받아들이기 힘든 징계 수위]

회사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지 씨는 정직 3개월, 조 씨는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징계의 이유에는 '깊이 반성하고 개전의 정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징계를 받았다는 건 만족했는데 그 수위는 만족하지 못했죠. 아예 퇴사가 되든지 뭔가 강력한 게 나왔어야 하는데. 항의할 순 없었어요. 동생 사망과 관련한 조사에서 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 故 유00 씨 형

근로복지공단도 "장시간에 걸친 신체접촉, 탈의 지시 등 직장 내 성희롱이 있었고, 업무상 요인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며 유 씨의 사망을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억울함 풀기 위한 추적..동료들 찾아다니며 증언 녹취]

가족들은 틈틈이 동료 직원들을 만났습니다.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으려면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증언을 녹음으로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신입 사원 때 야유회 갔는데 팬티 한장 안 남기고 다 벗었다고. 그게 엄청 수치스러웠다고 그러더라고요." - 동료 A씨 "벗으라면 벗으라고 하면서 강압적으로 그런 부분도 있었고." - 동료 B씨 "(지 씨가) 저희 입사하자마자 보여주는 거죠. '이런 사진 찍었다'고. (조 씨는) 저도 만졌어요" -후배 C씨

생업을 이어가며 어렵게 자료를 모으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유 씨가 사망한지 2년 반이 지난 지난해 5월, 전북 군산경찰서에 지 씨와 조 씨 상대로 고발장을 냈습니다. 회사 자체 조사 결과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까지 있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 씨는 성추행과 불법 촬영, 조 씨는 강제 추행 혐의였습니다. 주요 피해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었지만 유 씨가 숨진 당시에는 이 법으로는 두 사람을 처벌할 순 없었습니다.

[등 돌린 동료들, "공소 시효 지났고, 증거 부족"..유족 "수사기관들 적극적으로 나서달라"]

그런데 6개월 간 이어진 수사 결과는 허무했습니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동료들이 등을 돌린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회사 조사에서, 따로 유족을 만나서 피해 사실을 증언해줬던 동료들이 수사 과정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말을 바꾼 겁니다. 그래서 경찰도 "참고인들의 진술이 피의자 주장과 부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족들이 지 씨와 조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증인으로 채택됐는데 나오지 않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유 씨의 동료와 후배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말이 없다"거나,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고 답변을 피했습니다. 심지어 고인이 유서에서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던 한 선임도 "당신들 때문에 회사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며 오히려 기자에게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경찰에 이의신청도 했습니다.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경찰에 수사를 다시하라고 했던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도 결국 경찰 의견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여 불기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족은 언론사의 문을 두드린 겁니다. 가족들은 검찰에 항고장을 냈습니다. 수사는 광주고등검찰청 전주지부에서 맡게 됩니다. 유족들은 "수사기관들도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습니다.

[가해자들 사과 없고 형사처벌 안받아.."동생이 남긴 숙제, 10% 밖에 못 끝냈다"]

가해자들은 그동안 반성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회사가 주선해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지 씨는 "사랑을 줘야 했는데 자신이 부족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조 씨는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2018년 당시 미투 운동 분위기를 유 씨가 이용한 것 같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유 씨의 형은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3년 넘게 이 사건에 매달려 있습니다. 동생이 남긴 유언이 형에게는 '숙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형은 아직 그 숙제를 10%밖에 못 끝냈다"고 합니다. 가해자는 사과도 하지 않고 있고, 사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조사 결과와 산재 인정으로 동생의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라고 밝혀졌는데도,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확인을 받고 싶은 거예요. 제 동생이 이렇게 아프게 갔다, 힘들게 생을 마감했다. 그걸 판사님도 인정해주길 바랐습니다. 이 사건을 알려서 사람들이 알게 되면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없어질 거고요" - 故 유00 씨 형

[MBC 보도 하루만에 이뤄진 책임자 사퇴와 사과..재판에서도 잘못 인정할까?]

유 씨의 사연이 보도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월 25일 세아베스틸은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사과했습니다. 군산공장 박준두 대표이사와 제강담당 김기현 이사가 사퇴했습니다. 박 대표이사는 유 씨가 숨질 당시 인사관리 총괄 책임자였습니다. 김 이사는 당시 유 씨가 일하던 부서의 팀장이었습니다. 김 이사에 대해 당시 노무법인은 '성추행과 부적절한 언행을 인지하고도 방관했다'며 직위해제 하라고 했지만, 3년 전 회사는 그냥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다 언론 보도로 문제가 되자 뒤늦게 책임을 지게 한 겁니다.

가족들이 회사와 지 씨, 조 씨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지금까지 재판에서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대표이사가 가족과 국민에게 머리를 숙인 것처럼 이어지는 재판에서도 책임을 인정할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다음 재판은 3월에 열립니다.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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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bestroot@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36541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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