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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쫄깃 뜨끈뜨끈.. 나이 먹긴 싫지만 '떡국'은 맛있다

기자 입력 2022. 01. 27. 11:10 수정 2022. 01. 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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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歲饌) 상차림의 대표 음식은 뭐니뭐니 해도 떡국이다. 보통 쌀농사가 성한 남쪽에서는 떡국을 하고 쌀이 귀한 북쪽에서는 만둣국을 끓였는데, 이 둘을 절충해 끓인 게 떡만둣국이다.
일본 설날 음식 ‘오세치’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세계의 새해 음식

이밥에 고깃국 최고이던 시절

긴 가래떡은 무병장수 뜻하고

동전 모양 썰기는 재물을 상징

소고기 귀해 꿩으로 육수 내고

그것도 못 구하면 ‘꿩 대신 닭’

중국은 설에 만두 빚어 먹고

일본선 신정에 ‘오세치 요리’

美는 노예 음식 ‘호핑 존’ 즐겨

무슨 날이 되면 이에 맞는 세시(歲時) 음식을 먹는 것을 챙긴다. 물론 3시에 먹는다는 뜻은 아니다. 해가 바뀌는 설이니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 챙겨 먹는다. 딱히 설을 쇠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에서도 그리한다. 당연히 양력 1월 1일(new year’s day)이다.

대한민국에선 설날이면 으레 떡국을 준비한다. 양력 1월 1일엔 떡국을 먹지 않는다고 뭐라 하진 않는다. 잡채니 갈비찜, 전 등 여러 가지 세찬(歲饌·설 음식)은 없으면 섭섭한 정도지만 설날에 떡국만큼은 꼭 한 그릇 먹어야 한다. 설날의 상징이 떡국이다. 맛있을 뿐 아니라 귀하기도 하다. 이밥에 고깃국이 최고던 시절, 고기 육수에 떡을 넣어 끓인 음식이니 할 말 다했다.

떡국을 먹는 문화는 옛날부터 있었다. 병탕(餠湯)이라 해서 문헌에 등장한다. 떡국에 든 가래떡은 ‘첨세병(添歲餠)’이라 해 ‘한 살 더 먹는 떡’으로 통했다. 새해에 떡국을 먹는 세시풍속은 조선 때 문헌 동국세시기 등에 등장한다. ‘정조차례와 세찬에 빠지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고,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했다’고 적었다. 쌀도 귀할 터이니 떡이야 오죽했을까. 구황(救荒) 측면으로 보자면 떡은 쌀보다 비효율적이다. 그만큼 귀한 떡을 빚으려면 뭔가 구실이 있어야 했다. 설은 명분 중 최고였다. 그래서 모두가 챙겼다.

조선시대 최고급 일자리는 바로 조정이다. 조정에선 설이 되면 ‘보너스’를 내렸다. 대신부터 여러 직무에 근무하는 이들에게 각각 다른 양의 쌀과 고기, 생선, 소금 등을 하사했다. 대갓집 등 사대부들도 어려운 종씨나 사돈 일가에 설을 쇨 세찬거리를 보냈으며 주변에 어려운 이들을 챙겼다고 한다.

마침 때가 겨울이니 햅쌀로 길게 빚은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썰어 떡국을 준비했다. 육수로는 고기만 한 것이 없다. 소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라에서 도축을 금지할 만큼 소고기는 귀했다. 대신 눈밭에 나가 꿩을 잡아 와 이를 삶아 육수를 냈다. 이것으로 떡국을 끓이면 그 맛이 아주 좋았다. 꿩을 잡지 못하면 닭을 썼다. ‘꿩 대신 닭’이었다. 꿩 육수 떡국이 제대로지만 닭도 귀한 식재료였다.

좋고 귀한 재료로 만든 세찬에는 누구나 의미를 담는다. 우리네 떡국은 맛도 좋지만 장수와 재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더욱 특별한 음식이었다. 길게 늘여 뽑아낸 가래떡은 무병장수의 의미를 담았으며 동그랗게 썬 모양새는 엽전, 즉 재물을 상징했다. 남쪽은 떡국을 하고, 쌀농사가 힘든 북쪽에선 만둣국을 끓였다. 둘 다 꿩 육수를 썼다. 중부지방에선 떡만둣국으로 이 두 형태를 절충한 경향을 보인다. 요즘도 식사 메뉴로 인기 좋은 떡만둣국은 남북의 세찬 문화가 융합된 결과다.

새해 음식은 다른 나라에도 존재한다. 다들 나름대로 의미를 담아 준비한다. 중국은 춘제(春節·설)에 만두(餃子·자오쯔)를 빚는다. 가는 해와 새해 이 두 해가 엇갈리는 설을 자오쯔(角字)라 하는데 공교롭게도 만두와 발음이 같은 까닭이다. 설에는 부엌에 불을 쓰지 않기 때문에 따로 조리를 하지 않고 미리 만들어 둔 편육(냉채)과 만두, 떡을 먹는다. 이 떡이 바로 녠가오(年고)로 전통 설 떡이다. 이 역시 ‘새해에 좋은 일이 일어나라’는 녠가오(年高)와 발음이 같다. 떡국처럼 의미를 단단히 심었다.

일본은 이제 설은 따로 쇠지 않지만 양력 1월 1일에 전통 세찬인 오세치(御節)요리를 먹는다. 도시락처럼 찬합에 각각의 의미를 지닌 음식을 가지런히 담아 설 연휴 내내 먹는다. 긴 수염을 가진 새우(海老)는 장수를 뜻하고 청어알을 말린 가즈노코(の子)는 자손을 의미한다. 밤으로 만든 구리킨톤(栗きんとん)은 황금색을 닮아 재물 운을 상징한다. 까만 콩 조림 구로마메(黑豆)는 검게 그을리도록 열심히 산다는 근면성실을 뜻하고 다시마 말이인 곤부마키(昆布き)는 ‘기뻐하다’라는 뜻의 요로콘부(喜ぶ)가 다시마와 음이 같아 기쁨을 가져다주는 음식이라며 오세치에 꼭 넣는다.

오세치는 원래 집에서 만들었지만 보통 손이 가는 게 아니다. 요즘은 유명 음식점에서 주문해 먹는다. 재료도 많이 들어 값도 만만치 않다. 몇십만 원짜리부터 수천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는 메밀국수를 먹는다. 국수 가락이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는 의미를 담아 도시코시(年越し)소바라 부른다. 이 역시 떡국처럼 장수의 의미를 담았다. 떡국도 있다. 오조니라 불리는 일본판 떡국은 장국에 찹쌀떡을 넣어 먹는다. 매우 부드럽고 차지는 까닭에 급히 먹기가 의외로 어렵다. ‘누워서 떡 먹기’란 원래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세찬은 ‘호핑 존(hopping John)’이다. 남부 흑인 노예음식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남부 쪽에서 즐겨 먹는다. 동부 콩, 쌀, 베이컨, 양파 등을 볶은 음식으로 여기에도 의미를 담았다. 동부 콩은 동전(coin), 채소는 지폐(note)를 뜻한다. 자본주의가 첨예하게 발달한 국가답게 재물을 중시하며 신년을 맞는다.

이탈리아에선 돼지 족발 소시지 참포네와 렌틸콩을 곁들인 ‘코테키노 콘 렌티키에(cotechino con lenticchie)’를 세찬으로 먹는다. 이탈리아인들은 이 음식을 먹어야 한 해를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땅을 긁어 대지 않는 돼지와 조리 시 양이 늘어나는 렌틸콩은 재산 증대를 의미한다. 납작한 렌틸콩의 모양도 동전으로 받아들인다. 이탈리아에서 땅을 긁는다는 것은 가난한 소작농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서도 귀한 음식을 챙겨 먹는다. ‘왕의 파이’로 꼽는 가토 데 루아(Gateau des rois)나 전통 빵 갈레트(Galette)를 준비한다. 갈레트를 구울 때 ‘페브(feve)’라는 작은 도자기 인형을 반죽에 넣어 행운을 점치는 관습이 있다. 인형이 들어 있는 빵을 집으면 당일 특별한 대접과 함께 새해 행운이 깃든다며 축하해 준다.

스페인에서도 보신각 타종처럼 새해 0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종소리에 맞춰 포도 12알을 먹으며 새해를 맞는다. 12월 말일에 포도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지중해 국가가 가진 특별한 행운이다. 또 1월 6일이 되면 프랑스처럼 작은 인형을 넣은 ‘동방박사의 빵’ 로스콘 데 레예스(Roscon de Reyes)를 굽는다. 갈레트와는 달리 과일을 많이 넣은 달달한 빵이다. 그리스도 마찬가지로 동전이나 장신구를 넣은 바실로피타(Vasilopita) 케이크를 먹는다. 맛은 카스텔라와 비슷해 폭신하고 달달하다. 달콤한 새해가 되겠다.

독일은 돼지, 도넛 모양 쿠키 마지팬 피그(Marzipan pig)를 만들어 먹고 또 이웃에게 나눠 준다. 아몬드와 설탕, 달걀 흰자 등을 섞어 만든 과자로 행운을 의미한다. 다만 이벤트는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스와는 반대다. 과자 중에 겨자소스를 넣어 이 과자를 먹는 이는 새해에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이 외에도 네덜란드에선 새해가 되면 온 도시에서 견과류가 든 공 모양 도넛 올리볼렌(Oliebollen)을 만들어 먹는다. 사람 사는 세상은 거의 비슷하다. 모두 귀하고 맛난 것을 만들어 먹으며 새해를 자축한다.

딱히 설날 무렵이 아니라도 사철 떡국을 파는 식당은 많다. 그만큼 한국인이 좋아하는 메뉴이자 귀한 음식이었던 까닭이다. 특히 전라남도 지역에선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떡국을 파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선 분식집에서 주로 떡만둣국으로 판다. 요즘은 떡국 종류도 많아서 조랭이떡국, 굴떡국, 매생이떡국 등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

보통 떡국은 사골육수에 끓이고 꾸미로 간장에 조린 소고기, 달걀지단, 김가루 등을 올려서 낸다. 고기 조림은 간을 맞추고 풍미를 더하기 위함인데 두부와 고기를 함께 쓰기도 한다. 뜨거운 국물과 매끄러운 떡을 한술 뜨고 여기다 칼칼한 김장김치를 얹어 먹으면 쫄깃쫄깃 맛이 좋다.

자꾸 나이만 먹는데도 설날이 반가웠던 것은 모두 떡국 덕분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조랭이떡국 = 서울 인사동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온 노포 ‘개성만두 궁’은 이제 대표적인 개성 음식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4년 연속 ‘빕구르망’으로 선정된 이 집은 개성 토산 음식인 눈사람 모양 ‘조랭이떡국’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입 안에서 또글또글 구르다 졸깃졸깃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다. 이북 음식답게 심심하고 담백한 사골 육수를 쓴다. 직접 빚은 고기만두를 함께 넣은 떡만둣국으로 즐기면 풍미가 좋다. 가래떡 만둣국도 따로 판다. 1만4000원.

◇떡만둣국 = 락원은 김포시 장기 지구에서 떡만둣국 맛집으로 명성을 얻은 집이다. 직접 빚은 만두 2종류(고기, 김치)를 뜨끈한 사골육수에 넣어 팔팔 끓여 낸 ‘반반 떡만둣국’이 인기다. 전통 방식의 만두소가 어린애 주먹만 한 이북식 만두에 가득 찼다. 두부와 돼지고기, 숙주와 부추 등 채소를 잘게 썰어 넣은 만두소의 심심한 맛이 얇고 존득한 피와 궁합이 잘 맞는다. 한우 사골로 육수를 우리고 강화 고춧가루와 김포 평야의 금쌀을 쓰는 로컬 식재료 식당이다. 바삭하게 튀겨 낸 군만두도 인기 메뉴다. 김포시 김포한강1로97번길 32-22. 1만 원.

◇닭고기 떡국 = 서대문 새봄떡국국수는 떡국과 국수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전문식당이다. 전복, 매생이, 굴, 닭고기, 소고기 등 다양한 꾸미의 떡국을 맛볼 수 있다. 구수한 육수에 만생종 쌀로 맞춘 가래떡을 그득 썰어 넣었다. 닭 살코기를 찢어 올린 닭고기 떡국은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메뉴다. 소고기를 듬뿍 넣은 떡국도 좋고 향긋한 바다 내음의 매생이 떡국이나 계절 별미 굴 떡국도 인기다. 한 살 더 먹는다는 떡국이니 이 집에 왔다가 나이 들어서 나온 이들이 많겠지만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서울 중구 새문안로 24. 1만 원(소고기, 닭고기).

◇매생이굴떡국 = 국내 처음, 아니 세계에서 매생이를 처음 재배한 전남 장흥군에서 매생이떡국을 판다. 토정황손두꺼비국밥집은 토요시장 내에서 국밥도 팔고 장흥 한우삼합도 차리는 집인데 겨울엔 매생이와 굴, 키조개 내장까지 넣고 끓여 낸 매생이국을 낸다. 바다 향기를 품은 부드러운 매생이가 절로 식도를 타고 넘어 들면 한 끼가 든든하다. 얇디얇은 매생이가 골고루 퍼져 시원한 맛을 내는 국물은 차진 떡에도 잘 스며들 정도로 진하다.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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