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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돌진 혜성도 오미크론 비상도..제발 '과학자'의 말을 들어라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25)]

이종필 교수 입력 2022. 01.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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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룩업'과 방역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작년 12월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공개된 이후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돈룩업(Don’t look up)>은 SF 코미디 재난영화이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혜성을 발견했는데, 우연히도 6개월여 뒤에 지구와 충돌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 크기는 오래전 공룡을 멸종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소행성과 비슷해 지구에 궤멸적인 타격을 줄 것이 확실했다.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정치인들과 언론은 당장 자신의 이해관계만 앞세우는 상황을 코믹하게 그렸다.

<돈룩업>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끈 이유는 영화 속 모습이 본질적으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일 것이다. 혜성의 자리에 코로나19 바이러스나 기후위기를 대입하면 영화는 곧바로 현실이 된다. 어쩌면 훗날엔 진짜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금의 코로나19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르겠다.

과학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과학자의 견해가 외면됐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며 약간 우쭐함을 느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과학을 무시한 대가가 어떠했는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미국의 상황이 아마 가장 생생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는 원래 반과학주의로 유명했다. 기후변화는 과학자들의 사기로 치부했고 백신 일반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보였다. 그런 트럼프였기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을 경고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날은 똑같이 2020년 1월20일이었다. 한국은 이미 그보다 한 달쯤 전부터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모의훈련도 했고 바이러스가 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진단키트를 제작해 배포할 수 있었다. 이와 정반대로 미국은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에서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 결과 뉴욕 같은 도시에서도 의료체계가 무너져 부족한 산소호흡기로 어느 환자를 먼저 살릴 것인지를 의사가 결정해야만 했고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늘어나는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냉동트럭까지 동원했다.

SF 코미디 재난영화 <돈룩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지구와 충돌하는 혜성을 놓고 이해관계만 앞세우는 정치인과 언론
과학을 무시한 트럼프가 부른 코로나 팬데믹 초기 미국의 대혼란
방역패스 제동 판결과 일각의 백신 무용론 제기, 과연 과학적인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이 방역 모범국으로 급부상한 이유를 서방에서는 한국이 과학을 잘 따랐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우리가 오랜 세월 교과서에서 과학 선진국이라 배운 나라들이, 노벨 과학상 하나 없는 우리더러 과학을 잘 따른다고 칭찬하는 이 어색함과 당황스러움이라니. 그럼에도 이런 분석은 가장 정확하고 ‘과학적인’ 분석인 듯하다. 우리는 코로나19와 비슷한 바이러스의 존재를 미리 예견했고 확진자를 찾아 바이러스의 전파경로를 추적했으며 확산통로를 막았고 감염자를 격리·치료했다. 다행히 우리에겐 이 모든 과정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온갖 정보통신 및 의료기술을 충분히 동원할 여력이 있었다. 그 덕분에 강력한 봉쇄 없이 국민들의 자율권을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많이 보장하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했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과학자들이 항상 옳은 주장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과학이 가장 믿을 만한 지식체계로서 가장 성공한 학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다. 그 결과 한두 명의 과학자의 주장은 믿기 어렵지만 (동료 과학자들부터 아마 곧바로 믿지 않을 것이다.) 대다수 과학자들의 일치된 주장은 가장 믿을 만하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가혹한 검증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과학자들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만 한다. 영화 <돈룩업>에서 주인공이 동료들의 상호검증을 계속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다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합리적인 판단을 하다가도 여기에 정치가 개입하고 이해득실이 얽혀들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감축 정책을 실행에 옮기게 되면 그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과학적으로 확립된 사실들, 지구온난화는 사실이며 그 정도는 심화되고 있고 직접적인 원인은 인간의 산업 활동에 의한 탄소 때문이라는 사실들 중 일부 또는 모두를 부인할 것이다. 기후변화 자체를 부인했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뒤에는 화석연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전통적 에너지 기업의 절대적인 후원이 있었다.

방역패스는 정책 집행의 영역이고, 따라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치의 영역이기도 하다. 정치는 우리가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또는 어떤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어디까지 희생하고 양보할 것인지 선을 그어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어떤 형태로든 타협과 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판단의 출발점만큼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관계여야 한다.

바이러스는 위협적인가? 그렇다. 최근 대세종으로 올라선 오미크론 변이가 얼마나 위협적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수준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치명률이나 중증화율만 놓고 보자면 오미크론은 이전의 델타 변이에 비해 덜 위협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미크론의 폭발적인 전파력까지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의료체계가 감당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면 바이러스에 감염되든 되지 않든 응급상황에 놓인 환자들이 제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한 중증화율이 낮더라도 확진자 수가 많아지면 실제 중증 환자 수는 감소하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 게다가 오미크론의 낮은 중증화율은 이미 감염자가 많은 나라에서 도출된 결과이다. 우리나라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에도 중증화율이나 치명률이 낮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백신은 효과가 있는가? 그렇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3차 접종(부스터샷)을 맞은 경우 중화항체가 수십 배 증가한다. 또한 ‘돌파감염’의 경우에도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정도는 미접종자의 경우보다 약하다. 며칠 전 미국 질병관리통제센터가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백신 2차 접종 뒤 6개월이 지난 사람과 부스터샷을 맞은 사람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입원을 막아주는 보호 효과는 각각 57%와 90%, 응급실이나 긴급치료시설에 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호 효과는 각각 38%와 82%, 확진자 수는 각각 매주 평균 10만명당 255명과 149명의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미접종자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 위험은 접종자보다 무려 53배(오미크론 이후 10배) 높았다. 백신 접종은 본인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가 충분히 위협적이고 백신이 충분히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처한 상황에 따라 방역패스를 강화할 수도 있고 완화할 수도 있다. 방역패스는 단지 정책적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선택이라도 바이러스가 충분히 위협적이고 백신이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팩트’가 전제돼야만 한다. 그래야만 방역패스를 완화하거나 심지어 폐지하더라도 그에 따르는 발생 가능한 위험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역패스가 귀찮고 힘들다고 해서 바이러스가 위협적이고 백신이 효과적이라는 팩트까지 부인하는 것은 마치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않고서 지구를 멸망시킬 혜성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항간에서는 “2·3차 백신 의미 없다”는 식으로 백신의 효능 자체를 무시하는 언론 보도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느 유명 유튜브 채널은 얼마 전 오미크론의 위험을 경시하고 백신 무용론을 넘어 백신 위험론을 제기하는 등 유튜브 자체의 코로나19 관련 가이드라인을 위반해 영상 업로드 중단의 제재를 받았다. “유튜브는 현지 보건당국 또는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의료 정보에 상반되는 잘못된 의료 정보를 퍼뜨리는 콘텐츠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유튜브는 밝히고 있다. 세부적인 위반 사례에는 “코로나19 백신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 심지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으면 사망한다는 주장”도 포함돼 있다. 방역패스의 불편함을 강조하며 백신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끊임없이 부정했던 한국의 일부 언론에 이 기준을 적용하면 과연 몇 개의 기사나 살아남을지 의문이다.

최근 일부 법원 판결에서 방역패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해 방역 전문가들의 비판을 산 적이 있다. 판사가 과학을 모르는 게 아니냐, 판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구가 돌지 않는 것이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역조치의 비가역성을 가볍게 본 게 아니냐는 점이다. 가처분 인용 자체가 방역조치를 무력화하기 때문에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

방역조치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므로 가장 보수적인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수적으로 강화된 조치 때문에 겪는 불편과 고통은 어떻게든 다시 회복할 수 있지만 느슨하게 완화된 조치 때문에 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면 그걸 다시 회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는 말이 있듯이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을 전제하고 대책을 세워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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