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이 부추긴 '집단 열등감'..강자 향한 욕망만 남겨" [창간호 특별인터뷰①]

정지혜 2022. 1. 29. 14: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제용어인 ‘진입장벽(Entry Barriers)’은 어떤 산업에서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저해하는 경제적·전략적·정서적 요소를 말한다. 한국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진입장벽이 ‘철옹성’화하는 추세다. 기득권은 장벽을 높이기 바쁘고, 비기득권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압도되고 있다. 사람들은 시스템을 바꾸기보다는 순응하고,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골몰하기 시작했다. “장벽 자체를 허물자”는 외침이 희미해진 자리엔 점점 더 굳건해지는 진입장벽 차단 사회가 남았다.

세계일보는 창간 기념으로 정치와 사회, 젠더 등 분야에서 단단히 장벽화한 우리 사회의 실태를 긴급 진단했다. 2022년판 ‘진입장벽 사회’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은 기득권 중심주의가 국가의 혁신과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기득권 체제를 불신하지만, 다른 모델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시민사회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했다.

*관련기사: 철옹성이 된 기득권 중심주의… “국가 혁신·발전 막는 원흉” [창간33 - 진입장벽 사회]

‘대안적 삶’을 주창해 온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글로벌비즈니스대학 융합경영학부)는 저서 ‘강자 동일시’에서 기득권 경쟁사회가 어떻게 모두를 파괴적 악순환에 빠뜨리는지 설파했다. 강 교수와는 기득권을 증오하면서도 선망하는 한국인들의 복잡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이 겪은 특수하고 드라마틱한 현대사는 ‘힘이 없거나, 권력에 저항하는 존재는 탄압받는다’는 메시지를 구성원들에게 각인시켰다. 그 결과는 체제를 의심하기보다 빨리 적응하고 강자가 되어 ‘군림당하기 전에 군림하는’ 이가 되자는 맹목적 욕망. 이러한 이분법은 우리를 어떻게 집어삼키고 있을까. 다음은 강 교수와의 일문일답.

◆갈수록 커지는 기득권 향한 욕망

-우리 사회의 진입장벽이 너무 커지고, 사회 역동성이 저하되고 있다. 기득권에 대한 욕망이 크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까.

"기득권층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못 들어오게 막는다기보다는 게임의 룰 자체가 그렇다. '승자 독식의 룰' 때문이다. 승자가 다 가져가버리니 내가 치른 희생에 대한 보상 심리가 내면화된다. 이 틀을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역량이 떨어지게 된다.

'강자동일시' 심리가 그렇게 나온 것이다. 룰 자체를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기득권이 되어서 나도 강자 그룹에 속해야만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는 생각만 하는 상태다. 기득권 경쟁 사회에서는 공부도 진리 탐구나 배움의 욕구가 아니라 '기득권에 진입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고생해서 기득권에 편입되면 자신이 누리는 것을 당연시 하게 된다."

-그것을 '공정하다'고 보는 것이 최근의 추세 같다.

"지금의 공정사회 개념은 왜곡된 측면이 있다. 내가 고생한 만큼 누리는 것은 정당하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이 못 누리는 건 노력을 안하거나 능력이 부족해서이므로 당연히 쳐져야 한다고 바라본다.

부모님의 영향이나 사회적 상황으로 주어진 것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자기 능력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자신이 누리는 것이 본인의 노력이나 각종 비용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 생각하게 되니 공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의해 모두가 만인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건 헌법이나 교과서에나 있고 현실에서는 무시당하는 실정이다."

-사람들이 '무시를 하거나 아니면 무시당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상당히 많은 인문사회과학서들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룰에 적응하거나 룰을 만들거나, 지배하거나 지배당하거나, 관리하거나 관리당하거나. 이런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슬퍼지는, 우리 안의 열등감

-우리나라에서 '강자동일시', 기득권 선망이 더 심한 것 같기도 한데 이건 왜 그런가.

"크게 보면 '집단적 열등감'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을 하루 빨리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 선진국이 되자 이런 건 따지고 보면 다 열등감이다. 어린 아이들이 싸울 때도 보면 '너희 아빠 경찰이냐? 우리 아빠는 검사다', '너희 집 몇 평이냐? 우리 집은 두 배나 넓다' 라고 하면서 우월감과 열등감이 보인다. 사람들은 열등감을 모면하기 위해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 잡아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게 권력일 수도, 부일 수도, 명예일 수도 있다."

-그 열등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열등감의 원천은 약 100년 전부터 우리가 역사적으로 속박당하면서다. 일제 이후의 역사에서 특히 그랬다. 강자에 빌붙어 떡고물 받아먹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잘 풀렸지 않나. 반면 독립정신이나 저항정신으로 풀뿌리 관점에서 싸워온 사람들은 계속 배척당하고 억압당하고 가난하게 살았다. 이런 모습을 보며 '강자가 돼야 겠다', '빨리빨리 뭔가 성취해야겠다'는 심리가 정착했다. 일제강점기, 미 군정, 박정희식 경제개발 과정을 거치며 요즘 많이 언급되는 능력주의, 성과주의 담론이 사회적으로 확산했다."

-현대사에서 그런 흐름이 계속 강화되어 오기만 했던 것인가.

"이 흐름을 바꾸자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 일부 지식인, 종교인,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는 돼 왔다. 하지만 늘 주류 담론에서 배제됐을뿐이다. 심하면 감옥으로 보내기도 하고. 가장 대표적인 게 김지하의 '오적' 사건 같은 것 아니겠나.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정치인, 기업인, 은행인, 검사, 조폭 이런 연합체들이 이 주류 담론을 계속해서 지켜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탄압하면서.

우리도 시민사회가 분명히 있다. 참교육 학부모회, 전교조 선생님 등. 전교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곡되어 있어서 그렇지 그 분들이 1980년대 말에 처음 시작할 때 그 좋은 직장 퇴직당하면서도 1527명의 선생님들이 참교육 외치고 나온 이유가 뭐겠나. 아이들을 더이상 살벌한 경쟁 매커니즘에 몰아넣지 말고 참된 배움을 일으키게 하자 그런 목표와 가치였다."

-그러나 이들을 비주류에 머물도록 한 사회였다.

"기득권 집단의 동맹들이 그런 부분을 철저히 탄압하는 가운데 소위 보통 사람들은 이를 지켜보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보통이나 가지 괜히 나서지 마라' 이렇게 된다. 피해의식과 두려움이다. 약자보다는 강자가 되어야 내가 인정받는다는 마인드가 집단적으로 공유됐다."

◆성장과 분배 말고 ‘원천’을 보자

-모두가 기득권이 된다는 건 불가능한 것 아닌가.

"불가능할뿐 아니라 해롭다. 건강한 사회라는 건 적으면 적은대로 나누고, 많으면 많은 대로 나누어야 한다. 또한 가면 갈수록 우리 ‘부의 원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분배냐 성장이냐’의 차원을 넘어야 한다는 뜻인가.

"보수는 성장을 강조하고 진보는 분배를 강조하는데 진정 지속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면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출발점이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원천' 차원을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더 천천히 가야 한다. 아무리 파이를 키워 비교적 공정하게 나누어 먹는다 치더라도 각자 파이를 입에 무는 순간 돌 조각, 유리조각, 암 유발물질이 나오면 무슨 소용인가. 성장과 분배를 아무리 잘 해도 전부 다 죽는 사회로 간다. 부의 원천이 사람을 착취하고 자연을 훼손해서 만든 것이라면 결국 우리에게 유해물질이다.

제가 문제제기하는 부의 원천 차원은 심층적인 것이다. 아이들이 배움을 얻을 때도 1학년이 6학년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것보다 1학년 1학년 나름의 감성과 관계를 배우고 행복을 느끼며 커야 한다. 그래야 차곡차곡 야무진 배움이 일어난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외우고 빨리 달려간다. 그래봐야 어쩌려는 건가. 빨리 늙어 죽는 게 목적이 아니지 않나. 삶의 각 단계마다 누려야 할 과정이 있듯이 사회 발전이라는 것도 차곡차곡 그렇게 가는게 건강하다."

-지속가능한 성장 얘기할 때 ESG(친환경·사회적 책임 경영·지배구조 개선)를 많이 거론하는데.

"ESG조차도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서 축적 프레임을 버리지 않는 담론이다. 녹색 성장과 같은 것이다. 지금은 성장에 대한 성찰을 하고, 저성장 시대가 우리에게 오히려 기회라고 봐야 한다. 분배와 원천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가자고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한다. 그래야 ESG 논의도 의미가 있어지는 거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테크닉 내지는 전략으로서의 ESG는 지속가능한 이윤과 무엇이 다른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적대적 공생'만 있고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다. 정치만 보더라도 좌든 우든 기득권이 된 이들은 결과적으로 비슷한 느낌이다. 기업과 노조 역시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노동조합 활동, 노동자의 권리가 처음부터 부정당할 위험이 있어 조심스럽기는 하다. 어느 대기업에서 한 명의 똑똑한 인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구호를 내세운 적이 있는데, 10만명의 노동자나 소비자 없이 한 명의 인재가 빛나는 성과를 과연 낼 수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노동자 운동은 부의 성장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성장과 분배의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된다.

지금 코로나19 사태, 초미세먼지, 미세 플라스틱, 지구 온난화 같은 지구 전체가 당면한 문제가 결국 부의 원천과 관련된다. 원천이 사람과 자연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갉아먹음으로써만 이렇게 급격한 성장이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분배 투쟁이 그동안 배척당한 사람들을 생각하자는 차원에서는 정당한 측면이 있지만, 결국 그조차도 자칫 자본이나 권력이 협동해 이끌어가는 파괴적 프레임의 공범자가 될 위험이 있음을 뼈야프게 깨달아야 한다."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에는 기여하지 못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사회 운동의 1차적 단계에서 문제 인식은 해야 한다. 국가가 경제 성장 안 했으면 국민들 다 굶어 죽었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지배자들이 민중을 가만히 놔두면 민중은 스스로 협동해서 농사도 짓고 나무도 과일도 가꾼다.

근데 두 번째 단계에 가 보면 생산도 분배도 민중의 필요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과 국가를 위한 것이 되고 있다. 성장과 발전이 민중의 삶의 질을 고양하는데 안 쓰인다. 양은 늘려주지만 질은 파괴하는 쪽으로 가버렸지 않나. 우리나라 3면이 바다인데 그 좋은 금수강산이 지금은 가는 데마다 오염돼가지고 좋은 데 찾아가려면 더 멀리 가야한다. 미세먼지와 코로나를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달려왔고 싸워왔는가를 성찰하게 된다."

◆IMF가 한국 사회에 가져온 변화와 한계

-IMF 이후에 우리 사회가 좀 개혁이 되었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지배층 내부의 프레임, 권력 관계가 변했다. 국가가 경제나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던 시기에서 이제는 재벌로 대변되는 자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게 됐다. 국가주의적 의식보다 돈에 대한 의식이 요즘은 더 강하다. 자본의 법칙, 시장의 법칙이다. 젊은 청년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생각보다는 나의 이익과 기득권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졌다."

-'자본주의 키즈'라고들 한다.

"그렇다. 부모님들이 자녀교육 할 때도 성적도 중요하지만 친구도 중요하고 세상 사는 이치는 그런게 아니라고 하면 아이들이 오히려 부모님에게 그런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경쟁력 강화해서 자신이 특권층에 들어가야 한다는 마인드를 오히려 부모에게 가르쳐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학부모 강의 때 많이 듣는다."

-IMF 이후 자본주의가 가속화된 것은 '우리가 돈이 없어 이렇게 됐다'는 인식이 강해져서일까.

"겉으로는 '외환위기'라 표현이 됐으니까. 국가적으로 달러를 많이 벌어들이고 기업이 경쟁력을 높여야 된다고 본 거다. 그러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들 대부분 팔아넘겼다. 박정희식 국가주의 패러다임에서는 그래도 우리나라 주권과 자연을 지키자 해서 방벽을 쌓았다. 상징적인 게 그린벨트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경제적 그린벨트가 IMF 이후 다 해체돼 버렸다. 이런 문제의식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조차도 없거나 약했던 것 같다.

IMF 시기에 한국 사회가 진정 성찰했다면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분배와 원천을 생각하면서 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낮아지고 모두가 자기 삶, 사회적 삶에 참여하는 그런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기득권에 ‘중독’되면 해독이 힘들다

-기득권이 자발적으로 변하는 것보다는 비기득권이 각성과 실천을 적극적으로 하는 길이 좀 더 가능성 있을까.

"굳이 비교하자면 그렇겠다. 상부와 하부가 다 같이 변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기득권이 변하기는 어렵다. 중독 문제라서다. '강자동일시'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는데 권력과 돈에 중독되다 보면 해답은 죽음밖에 없더라. 죽고 나면 끝이 나는데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안 바뀐다. 내가 중독을 인식하고 어느 순간 멈춰야겠다는 강력한 결단 없이는.

암 환자들이 그렇다. 암이라는 죽음 앞에 가서야 술을 끊어야겠다든지 결심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야 성찰하지 평소에는 안 한다. 왜? 중독이 되어서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멈출 것을 제안한다. 멈춰서서 내가 얼마나 병들어있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거기에 대한 집단적 자각이 필요하다. 개인적 자각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의 회복 과정이 이제 필요하다고 본다."

-기득권에 들어왔더라도 밖으로 내쳐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 같다.

"맞다.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중독을 견인하는 매커니즘이 ‘두려움’이다. 패배자가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가진 것을 상실할 것에 대한 두려움."

-현재의 한국 사회를 볼 때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모든 희망의 원천은 우리 안에 있다. 개인적으로 선거에서 누가 되고 이런 기대보다는 우리가 삶 속에서 어떤 삶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성찰 이런 것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교육, 시민운동, 노동운동 등에서. 코로나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울증 모드로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전환을 위한 성찰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속에서 좋은 삶이란 걸 착각해 온 것은 아닌가 라는. 적정한 생산과 소비, 적정한 순환을 시키는 경제 모델을 통해서 우리가 훨씬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성찰 말이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