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식장서 온 유기견이라구요?"..황당한 '변종 펫숍들'

나경연 2022. 1. 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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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번식장의 개들은] ② 유기견 보호소로 '위장'하는 펫숍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가 지난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개 번식장에서 구조 후 돌보고 있는 강아지들. 카라 제공.

‘개 번식장’이라니 말만 들어도 섬뜩합니다. 더 기괴한 건 번식장 운영에도 트렌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길에 다니는 아무 똥개나 잡아서 수컷, 암컷을 교배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마치 해외 명품브랜드 패션쇼처럼 해마다, 시즌마다 유행하는 품종을 집중적으로 번식시킵니다.

2020년 tvN ‘삼시 세끼’에 출연한 강아지 ‘산체’ 기억하시나요? 산체의 인기 때문에 한때 장모치와와 입양 문의가 펫숍에 빗발쳤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JTBC ‘펫키지’에 출연한 가수 태연의 반려견 ‘제로’가 유명해지면서 실버토이푸들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빠르게 바뀌는 인기 품종, 그에 맞춰 전시되는 펫숍의 강아지들. 이 강아지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람들이 원하는 때에 맞춰 펫숍 유리창 안에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게 된 것일까요?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① 개 번식장 구조 동행기 ② 유기견 보호소로 ‘위장’하는 펫숍 ③ 벌금 ‘푼돈’ 취급하는 번식장 주인들, 세 편에 걸쳐 전합니다.

“사진 속 강아지들은 다 유기견인가요?”
“네, 유기견 맞습니다.”
“그럼 구조 활동으로 데려온 아이들인가요?”
“저희 펫숍 유기견은 고객들이 파양한 아이들입니다.”
“...?”

어릴 때부터 반려견을 키우고 싶었던 김솔희(24‧가명)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하는 순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취업에 성공하고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한 김씨는 평소 팔로윙하던 연예인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품종을 몇 개 골라뒀습니다. 그러던 중 인기 연예인들의 ‘사지 말고 입양하자’ 해시태그를 보게 됐습니다. 해당 해시태그를 따라 들어가 여러 기사를 접하면서 개 번식장의 처참한 상황을 알게 됐고, 펫숍 강아지 대신 유기견을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김씨는 포털사이트에 ‘유기견 입양’을 검색한 후 나오는 업체 중 한 곳에 연락했습니다. 해당 업체의 홈페이지에는 장모치와와, 푸들, 포메라니안 등 김씨가 기르고 싶었던 품종의 개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유기견이 맞냐는 김씨의 질문에 해당 업체 직원은 ‘고객들이 파양한 개’라고 답변했습니다. 당황한 김씨가 “그런 개들은 유기견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라고 하자 직원은 말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피해 사례가 다수 나오고 있는 ‘변종 펫숍’이었습니다.

지난 24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개 번식장에서 발견된 강아지들. 나경연 기자.

번식장 개를 ‘유기견’으로 위장…“미끼 장사”
본지 기자가 '유기견 입양' 키워드로 광고 중인 펫숍 업체에 문의한 대화 내용 화면. 나경연 기자.

기자도 포털사이트에 유기견 입양을 검색한 뒤 나오는 업체 중 5곳에 직접 연락을 취했지만 모두 김씨와 같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번식장에서 데려온 새끼들이나 기존 고객들이 파양한 반려동물을 유기 동물로 위장해 사람들을 유인하는 구조였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학대받다 버려진 동물들의 이야기가 다수 보도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변종 펫숍은 이같이 달라진 반려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마케팅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임(강사모) 대표를 맡은 최경선 박사는 유기견이라는 키워드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펫숍의 상술이 ‘미끼 장사’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펫숍에서 판매가 안 된 큰 개들, 기존 고객이 파양한 개들을 유기견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유기견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인데 이게 바로 미끼장사”라며 “이런 펫숍들은 자신들이 우수브랜드상을 받은 업체라고 자랑하기도 하는데 사실 돈만 주면 다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최 박사는 “유기견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법률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지자체 보호소가 10일가량 데리고 있으면서 입양자를 기다리고 있는 개들을 말한다”면서 “보호소에서 데리고 있는 동안 입양 희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하게 되는데 그 전에 입양해서 데려가는 경우가 보편적인 유기견 입양”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은 지자체가 보호하는 유기 동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 동물권 보호 단체가 개 번식장 등에서 구조해 보호하고 있는 동물을 입양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변종 펫숍 관련 글 올렸더니…“고발하겠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임(강사모) 대표를 맡은 최경선 박사가 변종 펫숍에 주의 하라는 취지로 올린 글의 화면. 강사모 블로그.

변종 펫숍은 입양을 원하는 고객에게 유기견을 지금까지 돌봐줬다는 명목으로 돌봄 비용 몇 백만원을 지급하게 합니다. 기존 고객들 역시 파양할 때 몇 백만원의 비용을 내기 때문에 펫숍은 이중으로 돈을 버는 구조입니다. 이와 관련해 피해 고객들은 펫숍에게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내용을 반려동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해당 펫숍으로부터 ‘고발하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사례를 가진 변종 펫숍이 늘자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는 직접 업체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유기견 입양을 검색한 뒤 상위에 노출되는 업체 중 한 곳에 연락해 ‘유기견이 맞냐’ ‘왜 그렇게 광고하느냐’ ‘어디서 데려온 개냐’ ‘구조한 개가 맞냐’ 등의 질문을 했고 전화를 받은 직원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통화를 종료했습니다. 카라는 통화 내용을 바탕으로 온라인에 변종 펫숍을 주의하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어김없이 해당 업체로부터 고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카라 관계자는 “요새는 펫숍들이 포털사이트 파워링크에 광고를 올린 뒤 자신들이 안락사 없는 보호소라고 광고한다. 그리고 구조비,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몇 백만원을 요구하는데 사람들은 이게 상술인지 잘 알 수 없다”며 “카라가 이런 내용을 폭로하는 글을 올렸더니 ‘고발하겠다’는 연락이 와서 고발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무실로 고발장까지 날라왔지만 업체가 결국 고발하지 않았다. 그 업체가 고발할 수 있는 근거, 명분이 아무것도 없는데 일부러 겁을 주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고발하겠다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엔 돈…‘개 경매장’에서 쓴 돈 메꿔야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가 지난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개 번식장에서 발견한 강아지들. 카라 제공.

변종 펫숍이 생기는 것도, 업체들이 유기견을 미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도 모두 돈 때문입니다. 펫숍들은 보통 중간업체를 통해 경매장에서 강아지를 구매합니다. 번식장에서 넘어와 경매장에서 팔리는 강아지들은 A, B, C 등급이 정해져 있고 혈통, 비혈통으로 구분합니다. 최 박사는 “강아지를 분류해 나타내는 표준 스탠다드, FCI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표의 기준에 따라서도 등급이 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경매사가 5만원부터 가격을 부르기 시작하면 입찰자는 버튼을 눌러 경매에 참여합니다. 인기 품종의 작고 예쁜 강아지는 10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올라가지만 비혈통이고 비인기 품종인 경우 최저 10만원까지도 내려갑니다. 만약 펫숍이 인기 품종 강아지를 10마리를 사면 이 비용만 30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펫숍은 무조건 이보다 비싸게 분양해 수익을 올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품종은 빠르게 변합니다. 예를 들어 푸들이 유행하던 시기 경매장에서 푸들 20마리를 들여와도 6개월 만에 인기 품종이 치와와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럼 이 푸들들은 펫숍 안에서 나이를 먹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반려견의 나이대를 지나게 됩니다. 펫숍은 인기가 없는 나이든 푸들에 유기견이란 이름을 붙여 돈을 받고 입양을 보냅니다.

카라 관계자는 민간 유기견보호소의 자격을 정립하는 것이 변종 펫숍을 막을 방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민간 보호소에 대한 개념이 정립이 안 된 상황이다. 관련 자격을 명확히 해서 전문적인 보호사가 있는 곳만 보호소로 지칭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일반 펫숍들이 민간 보호소를 자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조건을 충족해 반려동물 생산 업체로 정식 허가받은 곳에서만 반려동물을 판매할 수 있게 하는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펫숍 강아지가 유기견으로 신분 세탁하는 일이 사라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가 지난 25일 밤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개 번식장에서 구조 후 돌보고 있는 강아지. 카라 제공.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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