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몰랐던 윤석열보다 언론의 '진로이즈백' 더 놀랍다

하성태 입력 2022. 2. 4. 15:42 수정 2022. 2. 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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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선 TV토론 보도 관전평] 네티즌이 실시간 검증하는 동안 언론은 뭐하고 있나

[하성태 기자]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후보 토론에서 후보들이 리허설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 4당 후보 모두 "국민연금 개혁" (조선일보)
- 이·윤 대장동 난타전 누가 되든 "연금 개혁" (중앙일보)
- 사드 충돌... 李 "중국 자극" 尹 "추가 배치" (동아일보)
- 이재명 "문 정부 부동산 정책 잘못" 사과 윤석열 "안보 튼튼해야" 사드 추가 강변 (한겨레)
- '대장동' 치고받고, 연금개혁엔 공감대 (경향신문)
- 또 대장동 충돌... 尹 "천문학적 특혜" 李 "尹후보가 이익" (국민일보)
- 李 "문 정부 후계자 아니다" 尹 "정권교체가 답" (서울신문)
- 李 "문 후계자 아냐, 부동산 매우 잘못" 尹 "정책 실패 반성 없어 정권교체가 답" (세계일보)
- 尹 "수도권 사드 필요" 李 "경제 다 망칠거냐" (한국일보)

4일 주요 일간지 1면 머리기사들이다. 전날 20대 대선 첫 TV토론이 지상파 방송3사 합계 시청률 40%에 육박하며 전 국민적 관심 속에 치러진 가운데, 주류 언론은 대부분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발언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형식의 제목을 뽑았다.

물론 주목한 키워드는 각기 달랐다. 예상 가능했던 대장동·사드·부동산 이슈 외에도 상당수 언론이 이날 토론에서 네 후보 모두 흔쾌히 동의한 "연금 개혁"을 헤드라인으로 꼽았다. 이 후보의 "문재인 정부 후계자 아니다"란 발언도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사설만 놓고 보면, 토론 전반에 대한 긍부정이 엇갈렸다. <공약·자질 비교 평가에 도움 된 첫 대선 후보 TV 토론>(한겨레), <정책·비전 대결 싹 보여준 대선후보 첫 4자 TV토론>(세계일보), <대선후보 TV토론…한계 보였으나 의미는 있었다>(국민일보)는 호의적인 평가에 가까웠다.

이와 달리, <첫 토론회서 대통령 신뢰감 못 보여준 4당 후보들>(서울신문), <"일자리 창출" "집값 안정" 빈 구호뿐이었던 대선 TV토론>(동아일보), <첫 대선 TV토론, 유권자 갈증 풀기에 턱없이 부족했다>(경향신문), <네거티브 없었지만 변별력도 떨어진 대선후보 첫 TV토론>(연합뉴스)와 같은 혹독한 관전평도 다수였다.

하지만 좀 더 눈여겨 볼 것은 개별 기사에 나타난 언론사별 논조나 '낚시성' 기사였다. 단적인 예가 바로 'RE100' 관련 보도였다.

난데없이 등장한 '장학퀴즈', '퀴즈쇼'  

토론회에 대해 정치권 및 소셜 미디어 등을 강타한 화두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등 기후·환경 이슈였다. 이날 이 후보는 윤 후보에게 '국제사회의 RE100 동참 움직임'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그러자 윤 후보는 'RE100'이 뭐냐고 되물었다.

토론 직후, 소셜 미디어상에선 팩트체크와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탄소중립을 비롯해 향후 기후·환경 위기 대응은 물론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 수출 등 경제 이슈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RE100 자체를 몰랐던 윤 후보를 향한 갖가지 촌평이 쏟아졌다. 이후 정치권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의아한 것은 일부 언론의 반응이었다.
 
3일 여야 대선 후보 4인의 첫 TV토론에서 생소한 용어들이 일부 등장하면서 장내는 일순 '장학퀴즈'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주로 이 후보가 윤 후보에게 미래 산업과 일자리·성장 등 분야에서 RE100(알이백), EU택소노미, 블루수소 등과 관련한 질문을 던진 뒤 자문자답 식으로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3일 연합뉴스 <RE100·EU택소노미·블루수소...갑자기 '장학퀴즈' 된 TV토론>)

다소 생소한 용어일 순 있다. 하지만 주요 기후·환경 이슈에 대한 윤 후보의 무지보다 이 후보의 질문에 초점을 맞춰 '장학퀴즈(쇼)'라고 규정하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3일 밤 연합뉴스의 이런 발 빠른 프레임에 조선일보, 세계일보, 채널A 들도 줄줄이 '장학퀴즈 된 토론', '퀴즈쇼'란 표현이 포함된 기사를 작성했다.

이후 <당신은 몰라도, 대선 후보는 알아야 할 RE100과 택사노미>(한겨레)와 같은 팩트체크 기사들이 속속 등장한 가운데 '장학퀴즈'보다 한술 더 뜬 언론들도 있었다. 난데없이 서울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를 등장시킨 기사들이었다.

언론들은 정말 RE100 생소했을까?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후보 토론에서 후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이 후보의 질문 뒤 서울대커뮤니티 '스누라이프'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RE100'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은 '알이백이 무엇이냐' '진로이즈백은 알아도 알이백은 모른다' '처음 듣는다' 등 이 용어에 대해 생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네티즌은 'RE100도 모르는 게 대통령 후보냐'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3일 중앙일보 <"알이백 뭐냐, XX이즈백은 아는데"..李 질문에 네티즌 시끌>)

'진로이즈백'이란 표현이 재밌다고 느낀 걸까. 토론 직후, 중앙일보가 포털로 송고한 이 기사를 이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 파이낸셜뉴스 등이 줄줄이 소위 '복붙'(복사붙여넣기) 기사로 양산해냈다. 스누라이프발 '진로이즈백', '소주이즈백'이 포털을 뒤덮는 순간이었다.

중앙일보가 길어 올린 이 같은 '스누라이프' 반응은 < 'RE 100' 공방에 누리꾼 "윤석열 자질 없어" VS "이재명 아는 척 그만" >(한국일보) 기사처럼 시청자·누리꾼들의 부정적 반응을 대표하는 의견으로 활용됐다. 또 '장학퀴즈' 운운과 마찬가지로 대선후보로서 RE100 자체를 몰랐던 윤 후보의 무지보다 이 후보의 태도를 지적하는 보도행태도 적지 않았다.

의아한 점은 'RE100' 논란을 전달하는 다수 언론사의 논조였다. 언론사들 대부분은 'RE100'이 생소한 용어임에 초점을 맞춘 뒤 두 후보 간 공방 및 정치권 반응을 지상 중계하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 뉴스를 제공하는 54개 주요 언론 검색 결과, 이들 언론은 지난해와 올해, 이날 대선 TV토론 전까지 600개가 넘는 'RE100' 관련 기사를 생산했다. 이미 언론들 대부분이 RE100을 주요 환경 및 기후위기 이슈로 인식해왔다는 뜻이다. RE100은 대기업 중심으로 당면한 화두로 부각된 지 오래고, 그렇기에 더더욱 경제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주목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해당 용어 자체를 생소한 것처럼, 이에 대한 질문 자체를 '잘난 척', '아는 척'이라 규정한 언론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네티즌은 팩트체크, 언론은?

이날 토론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이재명 후보는 시간제한으로 인해 발언을 이어가지 못하자 "언론들이 팩트체크 해 주시겠지요"라고 말했다. 제한된 시간 내에 4자 토론이 진행되는 만큼 후보들 모두 물리적 제약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언급이었다.

하지만 전 국민적 관심 속에 진행된 첫 번째 대선 TV 토론을 지상 중계한 언론들이 후보들의 발언을 후속 검증하는 등 사실 확인에 치중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혹독한 관전평을 내놨던 언론들이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생중계 댓글창을 통해 실시간 검증에 나섰던 유권자들만큼 성의를 보였는지도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주요 이슈에 대한 질문 자체를 '장학퀴즈'로 몰아붙이며 근거 없이 태도를 문제 삼거나 누리꾼 의견 뒤에 숨어 토론 자체를 희화화시키는 보도행태는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이번 TV 토론 평가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결정적 한방' 운운하는 헤드라인 만큼이나.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토론은 역대 대선후보 TV 토론 중 시청률 2위(39%)를 기록했다. 지상파 3사 유튜브 중계 및 이재명·윤석열 후보 채널을 통해서도 40만이 넘는 유권자가 실시간으로 토론을 지켜봤다. 

역대 대선 가운데 가장 적은 TV 토론이 예고된 만큼 향후 3번으로 예정된 선관위 주최 법정토론을 포함해 4자든 양자든 토론 한 회 한 회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토론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토론 내용을 사후 평가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 또한 유권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주요 언론들만이라도 향후 TV 토론 보도에서 '진로이즈백'과 같은 어이없는 기사를 퇴출시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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