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베이징 동계올림픽 '한복 논란'..어디까지 사실일까?

이랑 2022. 2. 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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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여성은 핑크색 반짝이는 치마에 하얀색 저고리를 입었습니다. 머리는 댕기를 땋았고, 정수리에는 머리 장식도 올렸습니다.

한국인이면 한복을 입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복을 입고 나타난 곳이 문제입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중국 오성홍기 게양식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오성홍기 게양식에는 중국 내 56개 민족 대표들이 모두 참여했는데 이 여성은 조선족을 대표했습니다.

■"중국 고유 문화"라는 보도, 사실일까?

네티즌들이 화가 난 부분은 '우리 것인 한복을 세계인이 보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조선족의 문화로 선보였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중국이 한복을 중국 것으로 주장하려는 '문화 공정' 아니냐는 겁니다.

국내 일부 매체들은 실제, 중국 관영 매체 CCTV 방송화면에서 조선족의 한복이나 장구춤 등이 "중국 고유문화로 등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실일까요?

왼쪽에서 세 번째 여성은 조선족을 대표해 중국 오성홍기 게양식에 참여했다. (출처: 중국중앙(CC)TV)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실이 아닙니다. 개막식 중계에서 중국 중앙(CC)TV는 '한복이 중국 고유의 것이다'라고 표현한 적은 없습니다.

중국중앙(CC)TV는 "전국 각 분야에서 모인 우수한 대표들과 56개 민족의 대표들이 손에 손으로 전달하며 오성홍기를 나르고 있습니다"고 중계했습니다.

■한국에 공개 안 된 올림픽 영상이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중국을 홍보하는 사전 공연도 뒤늦게 네티즌들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현장에서 이뤄진 사전 공연 중간마다 중국 각 지역의 올림픽 응원 영상이 등장했는데요.

이번에는 조선족 자치주가 있는 지린성 영상이 문제가 됐습니다.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전 사전 행사에 나온 지린성 소개 영상에 한복 입은 조선족 여성들이 북을 치고 있다. (출처: 중국중앙(CC)TV)


진분홍 치마에 털배자까지 갖춰 입은 여성들이 북을 치고 있습니다.

지린성 소개 영상에 등장한 장구 치는 조선족 여성들 (출처: 중국중앙(CC)TV)


빨강 저고리에 파랑 치마를 입은 여성 수십 명은 장구춤을 췄습니다.

이 영상과 함께 "조선족 동포들은 축제 복장을 하고 조선족의 전통악기인 장구와 북을 치고 있습니다"는 설명이 흘러나왔습니다.

상고 돌리기를 하는 남성과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도 등장했습니다. 모두 합쳐 1분 정도 분량이 중국 내에서 생중계됐습니다.

다른 소수 민족이 사는 신장과 장쑤 등의 홍보 영상도 전통 복식을 입은 소수 민족이 춤을 추거나 생활하는 모습으로 구성됐습니다.

신장 소개 영상에 등장한 한 소수 민족이 전통 옷을 입고 춤을 추고 있다. (출처: 중국중앙(CC)TV)


우리나라에서는 개막식만 중계됐기 때문에 사전 행사에서 조선족들이 한복을 입고 장구와 북을 치는 영상은 원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은 국내에 빠르게 전파됐습니다. "한국에 공개되지 않은 베이징 올림픽 영상"이나 " 난리 난 베이징 올림픽 근황" 같은 제목을 달고 말입니다.

조선족 여성이 서로 김치를 먹여주는 모습. 이 모습은 올림픽 개막 사전 행사에 나왔지만 중계되지는 않았다. (출처: 지린성 홍보 영상)


인터넷상에는 중국 내에서도 중계되지 않았던 '김치 먹는 여성', '윷놀이하는 가족' 등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사전 행사에 우리 전통 문화와 한복이 등장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이런 영상을 정작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일부러 숨겼을 것'이라는 의심과 함께 말이죠.

하지만 '한국에 공개 안 된 올림픽 영상'은 사실 해외 중계 계약상의 문제였고, 일부 영상은 중국 내 TV를 통해서도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지점과 경계해야 할 것

이처럼 우리가 중국에 대한 '반감'을 느낄만한 상황을 전달하는 글이나 시선에는 진실과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우리의 울분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경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중국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실제 중국은 여러 차례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로 치부해 왔습니다. 한복, 김치, 온돌 문화 등이 중국에 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이런 경험이 누적돼 '이번에도 또?'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이 같은 중국의 주장들이 "한국의 K팝과 K드라마 등이 세계인들에게 널리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위기감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애국주의"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K팝, K드라마, K영화 등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까요.

조선족이 중국에 이주하게 된 역사와 함께 그 문화가 어디서 왔는지 분명히 하면서도, 이주한 민족과 한국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22 베이징올림픽

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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