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62] 토론 예능
최악의 토론이었다. 평생 토론 수업을 하며 밥 벌어먹은 교수로서 지난 2월 3일 대선 후보 토론을 채점하라면 네 후보 모두 영락없는 낙제다. 토론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채 기껏해야 순서나 지킨 시장판 야단법석이었다. 나는 이 칼럼에서 토론에 관한 내 생각을 두 번이나 밝혔다(2012년 8월 14일, 2019년 12월 24일). 이건 토론(discussion)은커녕 논쟁(debate)도 아니고 그저 언쟁(argument) 혹은 말싸움(quarrel)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유권자에게 도대체 뭘 보고 판단하라는 것인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누가 야비한 질문으로 일부 시청자의 속을 후련하게 하는지, 누가 임기응변의 달인인지, 누가 난감한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두꺼운 얼굴의 소지자인지, 아니면 어느 예능 프로그램처럼 시청자들은 다 아는 걸 출연자만 모르는 무지를 지켜보며 허탈한 비웃음이나 던지라는 것인지….
토론이란 본래 누가 옳은가를 가리는 게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누구의 생각이 더 탁월한지를 가름하는 논쟁도 이슈를 두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건만 어설픈 시간 제약 때문에 동문서답 변명만 늘어놓고 빠져나가기 일쑤다. 이쯤 되니 답변할 기회도 주지 않고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혐의를 뒤집어씌우거나 저열한 장학퀴즈나 연출할 따름이다.
이번에 사회를 본 정관용 교수는 매우 유연하고 노련한 진행자다. 그는 초대 손님으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술술 털어놓게 하는 특별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 어느덧 공약은 일단 지르고 보는 수준인 만큼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실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해야 한다. 마치 예능 프로그램을 방불케 하는 ‘4자 토론’ 따위는 집어치우고 한 후보씩 나와 정관용 교수와 길게 담소하게 하자. 그러면 누구를 뽑을지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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