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흔드는 미국 구인난..저임금은 물론 고임금 일자리까지 '노동자 우위'

전슬기 2022. 2. 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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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접객에서 시작한 임금 상승세 전방위 확산
72개 산업 중 75% 직전 3개년 평균 뛰어 넘는 인상
'물가 소용돌이'..연준 긴축 빨라져 우리 경제에도 영향
지난달 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에 구인 광고판이 놓여 있다. 이날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직장을 그만두는 근로자 수가 또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연합뉴스

노동자들에게 좋은 시간이 왔다?

미국의 임금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레저 및 접객’ 등 저임금 일자리에서 그칠 줄 알았던 임금 상승이 중임금·고임금 일자리까지 두루 확산하는 모습이다. 전 산업에서 ‘노동자 우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높은 물가를 잡으려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가장 주목하는 경제 통계 중 하나도 임금이다. 빠르게 오르는 임금은 물가를 밀어 올리는 원료인 탓이다. 미 연준의 발걸음을 주시하는 전 세계가 자연스레 미국 임금 추이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 임금 상승 전방위 확산 8일 미국 노동 통계국 자료를 보면, 지난달 비농업 분야 취업자의 평균 시간당 임금은 31.63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5.7% 상승했다. 지난해 11월(5.3%), 12월(4.9%)에 이어 높은 상승폭을 올해 들어서도 이어간 셈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임금 상승률이 2~3% 수준이었다.

애초 임금 상승은 코로나19에 직원을 구하기 힘든 저임금 대면서비스업에서 두드러졌으나 점차 업종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확산하고 있다. <한겨레>가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12월 업종별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저임금·중임금·고임금 일자리를 구분해 따져보니, 전방위적 임금 상승 양상이 뚜렷했다. 저임금 일자리(평균 시급 10~20달러 중반) 중 레저·접객 업종의 시급은 지난달 19.44달러로 1년 전에 견줘 무려 13% 상승했다. 중임금(평균 시급 20달러 후반~30달러 초반) 일자리로 분류되는 교육·의료 업종과 내구재 생산업 임금도 같은 기간 각각 6.8%, 5.5% 올랐다. 비교적 고임금(평균 시급 30달러 중반 이상) 일자리인 전문가 비즈니스(6.9%), 금융(4.8%)에서도 높은 임금 상승이 나타났다.

이런 흐름은 한국은행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한은 미국유럽경제팀은 미국 산업을 72개로 쪼개어 살펴본 결과, 지난해 10월31일 기준 조사 대상 산업의 75%(54곳)에서 직전 3개년 평균을 웃돈 임금 상승세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직전 3개년 평균보다 높은 임금 상승률을 보인 산업의 비중은지난해 1월 65.3%에서 지난해 7월 70.8%로 뛰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신동수 한은 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전에는 환경이 열악한 일자리 중심으로 임금 상승세가 나타났는데, 최근 들어 고임금 산업에서도 구인율, 퇴직률이 높아지며 임금 오름세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 장기화 가능성 커…“구인난 미스터리” 임금 상승이 장기화될 여지가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기 회복에 따라 기업들의 일자리 수요는 커지고 있으나 일할 사람이 부족한 현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지원금이 줄면 서서히 구인난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초반 예측도 빗나가고 있다. 만 15살 이상 인구(생산 가능 인구) 중 취업자 및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 비중을 가리키는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 1월 현재 62.2%으로 코로나19 이전(2019년 11월) 63.2%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미국 ‘구인난 미스터리’의 구조적 원인을 찾는 갖가지 분석도 쏟아지는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연구보고서에서 미국 구인난 원인의 70%는 고령자 조기 은퇴와 여성 경제 참여 저하, 구인-구직자 눈높이 차이 등이며, 의외로 정부 소득 보전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놨다. 고령층은 자산가격 상승 및 건강 우려로, 여성은 교육기관 휴교에 따른 보육 부담 증가 등으로 고용시장을 떠난 것이 구인난 원인의 ‘절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4일 근로자 지원 접근 방식·시장의 특수성·코로나19 피해 정도 등을 원인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해 미국은 유럽·아시아와 달리 고용 유지를 하는 사업장을 간접 지원하기 보다는 해고된 노동자들을 직접 지원했다. 미국 고용시장은 원래도 고용시장 이탈과 복귀가 유연한 편이다. 이런 까닭에 코로나19 이후 고용의 이탈과 복귀 유연성이 한층 강화되고, 이 현상이 빠른 감염병 확산·정부 지원금 증가·자산 가격 상승 등과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미국만의 특이한 구인난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추측이다.

전 세계가 미국 구인난 및 임금 상승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해서다. 전 산업에서 오르는 시급은 ‘임금 상승→기업 가격 인상→물가 상승→임금 인상 요구’ 등으로 임금과 물가가 계속 서로 영향을 주는 소용돌이를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도 임금과 물가가 같이 오르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물가를 관리해야 하는 연준의 향후 긴축 속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임금이 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임혜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노동시장 초과 수요에 따라 강해지고 있는 임금 상승세는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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