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국 아닌데 민간 빚도 많아..韓 국채위기 가능성 크다"

조지원 기자 2022. 2. 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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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의 섬뜩한 경고]10일 '2022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국가재정 비해 은행권 규모 커, 위기 발생때 정부지원 어려워
주요국 부채축소 불구 지출 확대..4년후 채무비율 69% 예상
한은 기준금리 인상과도 엇박자..물가 불안만 부추길 우려
이종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추경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인한 은행 부도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에서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 이후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빚내서 투자)’ 등으로 가계부채 위험이 확대된 상황에서 지지대 역할을 해줘야 할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면 자칫 은행 부도로 연쇄적인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은 추가경정예산안을 대규모로 증액해야 한다며 오히려 돈을 더 풀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통해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고 있는데 정책 엇박자가 나는 것이다. 만약 추경안이 대규모 증액돼 돈이 더 풀리게 되면 재정 건전성 악화는 물론 이자 부담 확대와 함께 물가 상승 압력이 나타나면서 오히려 취약 계층에게 피해가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황순주 KDI 거시·경제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국가 부도 위험이 커질수록 은행 부도 위험도 높아질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유독 두드러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황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와 같이 기축통화를 보유하지 않고, 재정수입에 비해 은행권 규모가 크고, 민간 신용이 많고 빠르게 확대되는 나라일수록 국가 부도 위험이 증가하면 은행 부도 위험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우리나라는 국가 재정에 비해 은행권 규모가 크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해도 정부가 은행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지난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재정수입 대비 은행권 총자산 비율은 620%로 전체 선진국 가운데 1위였으며 2위인 일본(463%)과도 큰 격차를 보였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해당 비율이 415%였던 아이슬란드는 당시 금융권 규모가 너무 크다며 국가 재정을 통한 구제금융을 포기했다.

민간 부채가 많은 것도 취약 지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 GDP 대비 민간 신용 잔액은 1844조 9000억 원으로 3개월 만에 36조 7000억 원 늘었다. 이미 금융 건전성 자체도 좋지 않다. 지난해 1분기 말 우리나라 신용갭(Credit-to-GDP gap)은 18.3%포인트로 지난해 4분기(17.6%포인트)보다 0.7%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1972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신용갭은 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이 장기 추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신용갭이 10%를 넘어가면 ‘경보’ 단계로 분류하는데 이를 한참 웃도는 수준이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비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재정 지원이 어려울 때 대체 수단으로 발권력을 동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물가나 금융 안정 등 제약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악조건으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점차 커지는데 정치권은 오는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추경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경 증액 재원의 대부분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 마련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정 건전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미 국가 채무는 2018년 650조 5000억 원에서 2022년 1075조 7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도 35.9%에서 50.1%로 늘어난 상태다.

황 연구위원은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언제든지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주요국 대부분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만 지속적으로 정부 부채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2026년이 되면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69.7%로 코로나19 이전 대비 27.5%포인트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다른 비기축통화 선진국은 정부 부채가 14.4%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대규모 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은 본래 취지와 달리 취약 계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경으로 인한 국채금리 상승이 시장금리 상승을 부추기면서 가계나 기업의 이자 부담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재정지출이 오히려 민간 소비나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추경발 과도한 시장 변동성 확대에 7일 한은이 2조 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 매입을 단행했지만 오히려 국채 3년물 금리는 3년 8개월 만에 2.3%대로 올라섰다.

추경 증액이 최근 3%를 넘는 물가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마저 이례적으로 확장 재정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통위는 1월 회의에서 확장 재정으로 인한 재정 측면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경고했다. 현금성 지원을 위해 정부가 돈을 풀면 오히려 물가가 오르면서 저소득층에 부담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한 금통위원은 “정부 이전지출의 소득 불균형 보전 효과가 인플레이션에 의해 일정 부분 상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 연구위원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로 재정 건전성 강화를 꼽았다. 그는 “향후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구조적인 복지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사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종적인 수단이 재정이라는 점에서도 재정 여력을 비축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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