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셀프 방역’ 하라면서 거리 두기는 왜 그대로 두나

이위재 사회정책부 차장 입력 2022. 2. 11. 03:01 수정 2024. 1. 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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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확진자 폭증으로 ‘자율 방역’ 시대 본격 시작
방역패스·영업시간 제한도 점차 풀려는 노력 보여야

얼마 전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거리 두기 규제를 풍자한 적이 있다. 음식점 직원과 손님들이 방역 통제관 지휘 아래 우왕좌왕하는 과정을 ‘청기 백기’ 게임에 빗댔다. “4인 올려(들어와)” 하면 손님 4명이 자리에 앉는다(식당·카페는 4인 이하 모임 가능). 식사를 하려는 찰나 “4인 내리고 2인 올려(2명으로 인원 제한 강화)” 통지가 오자 허겁지겁 2명이 나간다. 갑자기 “10인 올려”라고 고지하자 환호가 터지다 “아니 10인 내리고 6인 올려”라면서 찬물을 끼얹는다. ‘웃픈(웃기지만 슬픈)’ 장면은 이어진다. “9시 올려”, 시계가 오후 9시를 가리키자 손님들이 나간다. “9시 내리고 10시 올려”, 종업원이 나가려던 손님들을 붙잡는다. 다시 “6인 내리고 4인 올려, 10시 내리고 9시 올려, 2주간 지켜보고 변경할 뻔하다가… 2인은 백신 접종 체크하고…” 통제관 한마디가 떨어질 때마다 식당은 정신이 없다.

[서울=뉴스1]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음식점에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정부는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라 현재 실시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오는 20일까지 2주 연장한다. 백신 접종 여부 구분 없이 사적모임은 6명, 식당과 카페 등 운영시간은 오후 9시까지로 제한된다.

코로나 사태 2년 동안 정부는 방역을 명분으로 일상을 통제했다. 국민들은 밥 먹을 때마다 “지금은 몇 명까지 되지?”를 묻고, 어딜 가려 하면 자격이 있는지(백신을 2차까지 접종했는지 증명서를 받았는지 등) 먼저 확인했다. 코로나 저지라는 공동선(善)을 위해 기꺼이 감수했던 불편이다. 그런데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대유행 시대를 맞아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다. 정부는 ‘K방역’ 간판이던 ‘3T(검사·추적·치료)’를 내려놓았다. 그 막대한 확진자를 다 통제할 수 없으니 “국민 여러분, 이제 알아서 직접 (감염 여부) 검사하시고 (아프면) 약 타서 치료하십쇼”라면서 슬며시 떠넘긴 것이다. 자율 방역, 한국식 영어로 ‘셀프(SELF) 방역’이 시작됐고, 각자도생(各自圖生) 국면이 열린 셈이다. 각자도생이 조선 시대 전쟁·대기근 등 시련을 겪던 백성들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 데서 유래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셀프 방역’ 시대엔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방역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 (코로나 감염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동선(動線) 추적은 사라졌고, 관리 주체인 보건소나 의료 기관에서 (밀접접촉자이므로 검사 받으라는)연락 한 통 안 온다는 증언도 잇따른다. 1차 저지선인 자가 검사 키트는 양성(감염)을 음성으로 잘못 인식할 확률이 최대 40%다. (자가 검사 키트에서)음성으로 나왔다는 결과만 믿고 돌아다니다간 ‘수퍼 전파자’(본인이 수많은 사람에게 코로나를 퍼뜨리는)가 될 수 있다. 결국 앞으론 국민 개인 양심과 도덕, 신중함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란 얘기다. (감염됐을 지 모르면 알아서 조심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

이런 식으로 방역을 ‘셀프’로 돌리기로 했다면, 볼모 잡은 일상도 어느 정도 ‘셀프’로 돌려줘야 논리적으로 맞는다. QR코드나 출입 명부, 안심 전화, 56일째인 영업시간 오후 9시 제한 같은 ‘장애물’에 대해 방향을 새로 잡을 때가 됐다. ‘셀프 방역’을 발표하자 자영업자들이 “방역 패스·영업 제한 좀 풀어달라”는 요구를 쏟아내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화답한 데는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 지난 7일 칸타코리아 조사에서도 “방역을 완화해야 한다”(60%)가 “강화”(37%)를 압도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아직 (오미크론 확산) 정점이 아니라 의료 역량 수준을 더 확인한 다음 진행해야 한다”(정재훈 가천대 교수)고 당부하지만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래서 정부가 이번에 ‘셀프 방역’만 던지고 각종 방역 규제를 어떻게 할지 이해를 구하고 설명하는 절차를 생략했다는 점은 아쉽다. 스스로 통제하고 조심하고 마스크 철저히 쓰면서 대비하는 게 ‘셀프 방역’ 골자다. 책임은 지우면서 족쇄는 그대로 두겠다는 건 주권자(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방역 당국은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지만 “하루하루가 지옥인데 한가한 소리 한다”는 식당 주인 호소에 좀 더 민첩하고 성의있게 반응해야 한다.(정부는 국민에게 부탁하고 양해를 구해야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주객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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