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K방역의 퇴장

지호일 2022. 2. 1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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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성탄절 전야에 달갑지 않은 통보가 날아왔다.

이는 'K방역'의 실질적 퇴장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 숟가락 얹듯 K방역이란 명칭을 부여하면서부터 방역시스템은 변질 가능성을 내포하기 시작했다.

K방역은 곧 우상화되고 진영 논리가 붙더니 선거 유불리를 따져 방역 원칙이 흔들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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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사회부장


2020년 성탄절 전야에 달갑지 않은 통보가 날아왔다. “코로나19 양성 확진입니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자가격리를 하던 중이었다. 입국 비행기 안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역학조사관이 설명했다. 이틀 뒤 아파트 단지 앞으로 온 구급차에 실려 경기도 어느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됐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에 얼굴이 화끈거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구급차에 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양성 판정 소식은 청천 날벼락 같았지만 치료센터에서의 생활은 지낼 만했다. 무료하고 초조한 마음에 유리창 너머 인적 드문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 몇 시간씩을 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격리가 풀리던 날 장거리 택시를 타고 귀가할 때의 홀가분함이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날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확산세가 정점을 지나 조금씩 억제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후 1년여가 지났다. 일상은 오지 않았다. 센터에 머물 당시 하루 1000명 안팎이던 신규 확진자 수는 이제 그 수십 배로 불어나 우리 삶을 숨 막히게 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안심 발령’을 계속하던 정부가 돌연 ‘각자도생 방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2년여간 방역 댐 안에 가둬뒀던 감염병이 통제 불능 수위까지 오른 것이다. 오미크론 변이 폭우로 댐 자체가 터질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지자 한꺼번에 모든 수문을 연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도 사전 예고 없는 방류. ‘알아서 물난리에 방비하라. 감당 가능한 피해까지는 감수하시라.’

이는 ‘K방역’의 실질적 퇴장을 뜻한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시행해 온 신속한 검사(Test)·추적(Trace)·치료(Treat)의 3T 방역 정책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정부가 시인한 것이다.

한국의 촘촘한 방역체계가 감염병 대응에 힘을 냈던 건 사실이다. 자유와 인권, 프라이버시의 희생을 받아들인 국민과 방역·의료 일선의 눈물겨운 사투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숟가락 얹듯 K방역이란 명칭을 부여하면서부터 방역시스템은 변질 가능성을 내포하기 시작했다. 과학의 영역에 정치와 행정의 논리가 올라탄 것이다.

K방역은 곧 우상화되고 진영 논리가 붙더니 선거 유불리를 따져 방역의 방향이 흔들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전문가 그룹과 현장 의료진 목소리 대신 정치인과 관료들이 방역의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 하고, 그렇게 머리가 무거워진 방역 체계는 갈수록 코로나와 상대하기 힘에 부쳐 했다. ‘백신만 들어오면’ ‘접종률만 올라가면’ ‘먹는 약만 보급되면’ 하는 식의 설레발이 ‘희망 고문’을 이어가는 사이 불신 여론이 꿈틀댔고, 그 틈새로 각종 음모론은 뱀의 머리처럼 고개를 들었다.

이런 와중에 극강의 전파력으로 코로나계를 평정한 오미크론이 진격해 왔다. 수치적으로도 전혀 새로운 국면에 직면하게 된 정부는 허둥지둥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방역 지침이 이를 보여 준다. 드러내놓고 말을 못할 뿐 집단감염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차라리 걸릴 사람은 빨리 걸리자’고 여기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방역 그물을 한순간 놓아버린 것 같다.

방역 당국 입에서 ‘계절독감처럼 관리 전환’이란 언급도 나왔다. 그러나 낙관을 말하기엔 폭우를 뿌려대는 오미크론 먹구름이 여전히 짙지 않나. 넘어야 할 유행의 정점이 얼마나 높을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위험과 피해의 골이 얼마나 깊을지도 알 수 없다. 사회 전반이 그로기 상태가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김칫국 마실 때가 아니다. 정치는 방역을 놓아주시라.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식당에서 어쩔 수 없이 밀접접촉하며 내쉬는 숨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시민들이 불안과 분노, 불신 속에 지켜보는 중이다.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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