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한다더니 방폐장은 차기 정부로..'골든타임' 놓쳤다

김남준 2022. 2. 1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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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기 위한 의견 수렴에 착수하면서,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EU가 폐기물 처리를 원전을 친환경으로 분류하는 전제 조건으로 달아서다. 지지부진한 한국 방사성 폐기물 처리 논의도 본격 착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폐기물 처리해야 ‘녹색’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한국수력원자력
11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일(현지시간) 원자력 발전을 ‘녹색 분류 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하려면 2045년까지 건설 허가를 받고,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 가동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조건을 부여했다. 폐기물 처리 문제에 민감한 독일 등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그간 원전은 폐기물 처리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아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EU 택소노미가 정한 방사성 폐기물 계획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아직 나온 바가 없다. 다만 전 세계 환경 정책을 주도하는 EU가 원전의 방사선 폐기물 처리를 택소노미 조건으로 부여한 만큼, 앞으로 원전 가동에 있어 폐기물 처리 시설 확보가 필수 조건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임시 저장 포화에 “원전 멈출 수도”


친환경 정책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원전의 지속 가동과 안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현재 한국은 별도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 없어,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폐기물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

임시 저장시설에 고준위 폐기물을 저장하다 보니 안전성 우려도 크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저장시설 용량이 빠르면 2031년부터 순차적으로 다 찬다는 점이다. 원자력진흥위원회는 오는 2031년에는 고리·한빛 원전, 이듬해인 3032년에는 한울 원전의 저장시설이 모두 찰 것으로 예상했다. 원전을 가동할 때마다 방사성 폐기물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추가 저장시설이 없다면 원전을 가동을 멈춰야 한다.


‘골든 타임’ 이미 지나


원전 별 임시저장시설 포화시점. 원자력진흥위원회
더 큰 문제는 이미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확보를 위한 ‘골든 타임’이 지났다는 점이다. 정부는 2차 기본계획에서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 건설까지 37년이 걸린다고 예상했다. 부지 선정에만 13년, 부지 선정 후 중간저장시설 건립만 7년이 걸린다고 봤다. 올해부터 부지 선정에 들어가 정부 계획대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고리·한빛·한울 원전의 임시 저장시설이 모두 다 찰 때까지 처리장 부지조차 정할 수 없다.

그나마도 정부가 정한 시간표는 아주 낙관적인 상황을 전제한 것이다. 부지 선정을 놓고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이 일어나면 시간은 더 늦어질 수 있다. 실제 최근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리 시설 건설 계획을 확정한 스웨덴도 1992년부터 부지확보에 착수해 30년이 걸렸다. 부지를 정하고 2016년부터 건설에 들어간 핀란드는 39년 전인 1983년부터 부지확보에 나섰다.


탈원전 한다더니, 방폐장은 다음 정권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가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부도 지난 1986년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장 후보지로 영덕·울진·포항 등을 정해 검토에 나섰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1990년에 태안 안면도·고성·양양, 1994년 인천 굴업도를 후보지로 검토했지만 없던 일이 됐다.

주민 반발이 심한만큼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설 건립을 위해서는 특히 정부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을 주장한 문재인 정부는 정작 탈원전에서 가장 중요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립 문제에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 7월 이미 ‘1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계획안이 확정됐기 때문에 다음 정부는 부지 선정 등에 착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 추진을 이유로 해당 계획을 돌연 재검토했다. 약 4년간의 재검토 과정을 거친 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다시 마련했다. 그동안 부지 선정 등 핵심 문제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이번에 확정한 2차 계획안을 보면 이전 정부가 만든 1차 계획안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면서 “탈원전을 하든 안 하든 폐기물 처리장은 반드시 지어야 하는데, 정부가 여론 눈치에 일부러 이를 방치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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