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나온 중대재해처벌법, 죽음을 막으려면

방준호 기자 2022. 2. 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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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삼표 채석장 사망사고·김용균 노동자 산재 사망사건 '원청 대표 무죄' 판결 앞에
조문으로 뜯어본 '경영자의 의무'와 안전한 '기업 구조'
2022년 1월29일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매몰 사고 현장에서 구조당국이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

2002년 시민단체, “산재 사망은 기업의 살인” 구호 외치기 시작.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상시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부터 시행).

2022년 1월29일 중대재해처벌법 첫 수사 사건 발생.

문제 제기부터 법 시행까지 20년, 법 시행에서 첫 적용 사건에 이르기까지 단 사흘 걸렸다. 2022년 1월29일 오전 10시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채석장에서 작업자 3명이 토사에 매몰됐다. 모두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수사 사건이 됐다. 사흘은 예상된 단기간이다. 일터에서의 죽음은 잦다. 2022년 1월 한 달에만 67명이 일터에서 숨졌다.(노동건강연대 집계)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김용균 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사건과 관련해, 2022년 2월1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병숙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원청이 컨베이어벨트와 관련한 위험성 등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하청업체 대표와 관리자들은 집행유예와 가벼운 벌금형을 받았다.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만들어낸 죽음에 대해서도 원청 기업 책임은 물을 수 없었다.

잦고, 책임지지 않아, 다시 잦은 죽음 앞에 중대재해처벌법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법학자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을 이끌어온 이들에게 물었다. ‘노동자를 일하는 과정에서 죽이지 말라’는 합의는 20년간 명확히 세웠다. 다만 형법의 언어로 풀이하기 쉽지 않다. 누구를 처벌할 수 있는가. 고의인가. 행위와 결과 사이 인과관계는 있는가. 수사, 기소, 재판 과정은 이전의 다른 형사사건처럼 물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한 이에 답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법의 자구보다 중요한 건 법의 취지”(권영국 변호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분명 이전의 법과 다른 점이 있다. 김용균 노동자 산재 사망사건 관련 1심 판결에서 드러났듯 “오죽하면 나온 법”(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이라 그렇다. 삼표 노동자 사망과 김용균 사망 관련 1심 판결을 앞에 두고, 제정 취지를 바탕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장을 되짚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경영자를 처벌한다. 무엇을 위반하면 처벌되는지 얼핏 추상적으로 보인다. 법이 정한 경영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는 세세하게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적지 않았다. 그저 감독·관리할 의무다. 필요한 인력·예산 확보, 안전·보건 관계 법령 이행에 필요한 관리 등이다. 산안법이 670여 개 산업안전보건 기준 규칙을 나열한 것과 다르다. “기업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책임을 할 만큼 다 했는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은 사건별 수사·재판·기소 과정, 규제 기관과의 소통과 가이드라인, 전문가들의 잠정적 합의 등이 쌓이며 형성된다.”(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호함은 불가피하다. 수만 가지 직업과 그 작업, 새로운 작업의 위험까지 더해지는 산업현장에서 “위험을 가장 잘 아는 건 기업 스스로”(권영국 변호사)라는 전제가 바탕에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적힌 몇 되지 않은 의무는 기업이 구조적인 위험을 스스로 파악하고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끌어내려는 안간힘이다. 법은 무엇보다 산안법처럼 형식적 요건을 갖추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위험을 줄이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앞서 비슷한 법을 제정한 국가들 또한 경영자의 의무를 세세하게 규정하지는 않았다. 핵심은 ‘스스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위험에 대비하는 기업 구조를 경영책임자가 만들었느냐다. 그렇다면 경영책임자는 누구인가.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법을 위반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경영책임자는 물론 (원청)기업 의사결정의 최고책임자다. 일반적인 경우 대표이사로 해석하나 꼭 그렇진 않다. 한국의 특수한 기업 구조 때문이다. 오너는 직함 없이도 경영을 좌우한다. 법 제정 운동을 벌일 때 굳이 법에 직함을 적지 않기를 요구한 이유다. 반면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동시에 적었다. 최고경영자가 따로 직책을 마련해 책임을 미룰 여지를 남긴다. 이 문구는 경영계 요구로 반영됐다. 법 문구만으로는 경영책임자가 사주인지, 최고경영자인지, 안전 담당 임원쯤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수사가 필요하다. “법은, 중대재해처벌법 수사가 결국 기업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최고 결정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까지 할 것을 요구한다.”(최정학 교수) 사법 처리 앞에 경영책임자는 아마도 변명할 것이다. ‘고의는 없었다, 몰랐다, 노동자 부주의다.’ 산안법 재판에서 숱하게 반복된 변명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통할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5조: 지체 없이 점검 결과를 보고받을 것

형법은 물론 (미필적) 고의를 범죄행위를 판단하는 주요한 요소로 삼는다.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하는 고의는, “비용절감을 위해 안전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면 확실하고, 알면서도 방치한 경우도 해당된다.”(전형배 교수) 판단하기 어렵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경영자가 알아야 할 의무란 자신이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점뿐이니까. 여기에는 “보고받지 못해 몰랐다”는 변명도 통할 수 없다. 보고를 받아내고 확인하는 것부터 경영자의 의무로, 법 시행령은 규정했다.

한층 어려운 건 인과관계다. 예를 들어 ‘안전 난간을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가 숨졌다’면, 원인을 명확히 짚을 수 있다. 안전 난간 미설치다. 그런데 적절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서, 노동자 의견을 듣는 절차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서, 즉 안전한 ‘기업 구조’를 만들고 관리하지 않아서 숨졌다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법정 공방은 주로 이 대목에서 펼쳐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중요한 건 다시 법의 취지다. “현장의 직접적인 위험 요인을 넘어 구조와 체계가 사건의 원인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한 것이다. 인과관계를 기존 형법보다 좀더 폭넓게 봐야 할 필요는 있다.”(최정학 교수)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참담하며 진부한 말은 어쩔 수 없이 사실이다. 법 적용 과정에서 불기소, 가벼운 처벌, 심지어 위헌법률심판청구까지 나올 수 있다. 대형 로펌이 기업을 변호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요구해온 이들이 믿는 건 다시, 시민의 성숙한 논의다. “단순히 처벌에 대한 관심을 넘어 경영자가 어떤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 기업이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과 합의가 이뤄져야 사법 판단의 근거도 제대로 마련될 것이다.”(이상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공동대표) 무사히 일하기까지, 할 일은 아직 너무 많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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