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63] 유추, 생각의 중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2022. 2. 1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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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오늘은 세 사람의 탁월한 사상가가 태어난 날이다. 제러미 벤담(1748), 앨프리드 화이트헤드(1861), 그리고 더글러스 호프스태터(1945)가 얼추 100년 간격으로 탄생했다. 법률가로 시작해 공리주의 철학을 집대성한 벤담과 수학을 공부하고 이른바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hy) 분야를 정립한 화이트헤드에 관해서는 익히 알고 있겠지만 호프스태터는 좀 낯설지 모른다. 그러나 1979년 그에게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안겨준 책 ‘괴델, 에셔, 바흐’를 최애하는 독자는 은근히 많다.

호프스태터에게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Walking encyclopedia)’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서양의 다빈치나 우리나라의 정약용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물리학 박사 과정에서 훗날 ‘호프스태터의 나비(Hofstadter’s butterfly)’로 불리게 된 자기장 전자 프랙털 현상을 발견해 일약 유명해지지만, 그는 이내 그 무렵 막 태동한 인지과학 분야로 뛰어든다. 지금은 주로 심리학과 철학의 영역에서 노닌다.

2017년 나는 그가 프랑스 심리학자 에마뉘엘 상데와 함께 저술한 ‘사고의 본질’ 우리말 번역본의 감수와 해제를 맡았다. 이상화 시인이 봄을 고양이에 비유한 것처럼 우리는 흔히 유추를 시적 수사법의 하나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호프스태터와 상데는 유추를 생소한 사물이나 개념을 경험의 기억에 비교해 이해하는 ‘순진한’ 수준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중추 메커니즘이라고 역설한다.

유추 혹은 비유가 사고의 한 유형이 아니라 인간 인지 활동의 핵심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들다 보면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책을 덮을 무렵이면 유추를 거치지 않는 사고가 있는지 찾기 시작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설득당했다. 오미크론 변이의 창궐로 뜻하지 않게 격리당했다면 한번 도전해보시라. 슬기로운 격리 생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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