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피해의 기억만 있고 가해의 기억은 없다

이현상 입력 2022. 02. 17. 00:37 수정 2022. 02. 17. 20:00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적폐청산인가, 정치보복인가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다. 조국 사태 같은 정치 현안이 들끓었을 때도 침묵을 지켰다. 그런 그가 전언이나 소셜미디어가 아닌 입장문 형식으로 명확한 분노를 드러낸 것은 딱 두 번이다. 공교롭게 두 번의 분노 모두 ‘정치 보복’ 혹은 ‘적폐 청산’과 관련된다. 2018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자 다음 날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2022년 2월, 유력한 야당 대선 주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적폐 수사 의지를 밝히자 4년 전과 거의 똑같이 반응했다.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

불씨를 던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정치 보복은 없다”며 확전을 피하는 모양새다.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가면 유리할 것 없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반문(反文) 보수층은 대통령의 발언을 전형적인 ‘내로남불’ 이중 잣대라고 냉소한다. 울산시장선거 개입,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등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한 방어막으로 본다.

「 진영 정치 저류에는 ‘희생자 의식’

고통이 클수록 도덕적 우월 착각

말로는 통합, 현실은 이분법 정치

권력 독점 구조 놔두곤 해법 없어

두 진영의 대립 저류에는 ‘기억 투쟁’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피해자, 너희는 가해자라는 기억이다. 상대에게 가한 폭력과 박해는 잊어버리거나 외면한다. ‘정의’ ‘공정’이라는 가치어를 자기 진영의 전유물로 삼고, 상대 진영에는 ‘보복’ ‘적폐’라는 딱지를 붙인다.

고통의 기억 극대화 전략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집단 박해의 기억은 내부 결속의 응고제다. 타민족·국가로부터 받은 고통은 2차 대전 후 민족국가 수립의 강력한 에너지였다. 고통은 단순한 ‘피해’가 아니라 거룩한 ‘희생’으로 승화된다. 서강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이런 현상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victimhood nationalism)’로 개념화했다. 임 교수가 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부제는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이다.

2차 대전 후 폴란드 정부는 자국민 사망자 수를 602만 명으로 집계했다. 보고서 초안은 480만 명(유대계 300만+폴란드계 180만)이었으나, 갓 집권한 공산당은 600만 명(유대계 300만+폴란드계 300만) 선으로 수정했다.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더 많은 희생자 숫자가 필요했다. 이런 공식적인 집단 기억 앞에서 폴란드인이 유대인을 학살한 ‘예드바브네 사건’(1941년), ‘키엘체 사건’(1946년) 등은 설 자리가 없다.

폴란드뿐이겠는가. 심지어 전범국 일본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피해자임을 내세우고, 독일도 종전 직후 드레스덴 폭격의 고통을 강조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반일 감정을 돌파구로 삼았다. 임 교수는 “희생이 크고 끔찍할수록 그 민족은 더 큰 도덕적 정당성과 ‘존재론적 우선권’을 부여받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말한다.

비슷한 일이 국내 정치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극단으로 갈라진 두 진영은 서로 ‘고통의 비대칭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더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상대에는 엄살떨지 말라며 ‘피해자 코스프레’ 딱지를 붙인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아니라 ‘희생자의식 진영주의’다. 진영 간 감정의 골은 민족 간만큼이나 깊어졌다. 우리가 하는 적폐 청산은 ‘정의 실현’이지만, 상대가 하는 적폐 청산은 ‘정치 보복’일 뿐이다.

‘약자’가 된 대통령

시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이다. 현 집권 세력과 지지자들은 ‘논두렁 시계’로 상징되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망신주기식 정치 보복 수사를 트라우마로 간직한다. 한때 폐족으로 몰렸던 ‘친노 386’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활한 배경에는 이런 희생자의식이 있었다. 부당한 권력에 희생된 비극의 주인공으로 노무현을 자리매김했고, 그 계승자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보수세력 또한 희생자의식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윤석열 후보의 최대 정치 자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과정에서 당했던 압박이다. 법의 집행자 검찰총장으로서 ‘공정과 상식’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부패 완판’ 세력에 의해 좌절됐다는 피(被)박해 서사다. 보수세력 다수는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과도한 정치 보복을 당했다고 믿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마저 보호 대상이 됐다. 친문 의원들은 “문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 5년 전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자”고 광장으로 나왔던 태극기 부대와 다를 바 없다. ‘지킨다’는 말에는 수동적 존재 혹은 피해자라는 뉘앙스가 녹아 있다. 제왕적 권력을 지녔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희생자의식 진영주의 앞에서는 약자에 지나지 않는다.

지지율 떠받친 적폐 청산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 사이의 선을 긋기란 쉽지 않다. 현실 권력의 손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지킬과 하이드처럼 선악의 쌍생아가 되기 십상이다. 결국 기준은 대중의 공감과 지지다. 김영삼 정부 초기, 군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 같은 적폐 청산 작업은 높은 지지율로 이어졌다. 군사 문화의 잔재를 일소하겠다는 의지와 명분에 국민은 공감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의 적폐 청산 작업도 비교적 높은 지지를 얻었다. 국민 공감대가 있었다. 문제는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적폐 청산을 지지층 결집의 땔감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친일-독재-부패 세력’ 대 ‘반일-민주-개혁 세력’이라는 이분법 정치였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기득권은 교체되지 않았다는 ‘비주류 의식’이 가동됐다. 정치가 분열할수록 진영 내부의 결집도는 높아진다. 조국 수사, 코로나19 대응, 부동산 문제, 대일·대중 외교 등 거의 모든 이슈마다 피아(彼我)가 갈렸다. 합리적 토론과 객관적 성찰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분법 정치에는 거의 종교 수준의 희생자의식도 작동한다. 재판을 받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는 “골고다 언덕길을 조국과 그의 가족이 걸어가고 있다. 십자가를 짊어졌다. 예수가 함께 걷고 계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희생자의식이 낳은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심리다. “우리 DNA는 다르다”는 선민의식은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로 이어진다. “과거에 충분히 고통받았으니, 그래서 도덕적으로 우월하니, 이 정도의 잘못은 문제 될 것 없다”고 착각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비극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2002년 작품이다. 분노와 증오가 얽혀 복수에 복수가 꼬리를 무는 잔혹극이다. 포스터에 새겨진 홍보 문구는 ‘우연히 시작된 비극, 상상보다 거대한 파국’이다. 우리 정치의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세상엔 두 가지 유괴가 있어. 착한 유괴와 나쁜 유괴.” 누나의 신장 이식 수술비 마련을 고민하던 주인공(신하균)에게 주인공의 애인(배두나)이 중소기업 사장(송강호)의 아이를 유괴할 것을 제안하면서 한 말이다. 영화에는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영화의 제목이다. 제목은 “내가 하는 복수는 정당하지만, 네가 하는 복수는 부당하다”는 뜻으로 읽히기 쉽다. 하지만 제목의 출처인 성경 구절은 다른 뜻이다. “보수(報讐·복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구약 ‘신명기’) 이민족에게 핍박받는 유대인들에게 내린 신의 말이다. 영화는 신의 몫인 복수를 인간이 제멋대로 행함으로써 생긴 비극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신정(神政)이 아닌 민주 공화정에서 복수는 누구의 몫인가. 인간의 손을 떠나지 못하는 복수가 공의(公義)가 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법률과 시스템의 몫이라는 답은 공허하다. 법률과 시스템을 대통령이 독점하는 권력 구조를 고치지 않는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힘들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자는 주장은 넘치는데, 유력 대선 주자들은 관심이 없다. 이재명 후보는 4년 중임 개헌안을 내놓았고, 윤석열 후보는 청와대 해체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런 구상이 대통령 권한 축소와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한다. 4년 중임은 현직 대통령의 재출마에 공조직이 동원될 가능성이 크고, 청와대 해체 또한 행정부 등을 이용해 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겠다는 의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되든 정치는 달라지기 어렵다. 희생자의식을 연료로 삼는 진영 간 기억 전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