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의 돈바스 진입은 전쟁 서막?..미, '침공 아니다'며 외교 지속 표명

정의길 2022. 2. 2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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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우크라이나 전선][뉴스분석] 푸틴의 친러세력 독립승인 본격적 침공일까

미 등 서방 및 우크라이나, '침공' 표현 안써
미 고위관리, "추가 침공 아니다, 이미 점령한 지역"
'가혹한 제재' 카드 남기고, 외교적 지속 표명
양국 외교장관·정상회담이 마지막 고비될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무장세력이 점령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에 존재하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과 주권을 승인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 국가들의 독립을 승인하고 ‘평화유지’를 명목으로 출병을 결정하면서, 지난해 11월부터 넉달째 지속 중인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대한 ‘새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그러자 독일이 노르트스트림2 천연가스관의 승인 절차를 멈추겠다고 밝히는 등 각국이 고강도 제재 조처를 쏟아내고 있다. 이번 움직임이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 간의 전쟁의 서막이 될지, 외교적 해법을 향한 막판 고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푸틴 대통령은 21일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해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과 주권을 승인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이어, 국영방송으로 55분에 걸쳐 발표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오랜 시간 현안이었던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두 공화국의 독립과 주권을 바로 승인한다. 의회가 이 결정을 지지하고 두 공화국과 우호·상호원조 조약을 비준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후 러시아와 이 두 ‘국가’ 간의 조약에 서명한 뒤, 평화유지를 위해 이 지역에 군을 파견할 것을 지시했다. 이번 조처가 미국 등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푸틴 대통령의 ‘벼랑 끝 전술’일지, 전면전쟁을 위한 중간 조처인지는 분명치 않다.

러시아의 이번 조처는 국제법의 일반 원칙으로 본다면, 우크라이나 영토와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침공’(invasion)이라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돈바스 지역은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분쟁 지역인데다, 현재도 러시아의 실질적 영향권 아래 있다. 냉정히 보면, 침공의 실제적 효과는 사실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는 물론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도 ‘침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현재 사태를 침공으로 규정하면, 러시아와 외교적 타협 여지가 줄어들면서 사태가 더욱 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의 선언 직후 내놓은 성명에서 이번 결정을 “러시아가 국제사회에 한 약속에 대한 뻔뻔한 위배”라고 비난하며, 두 지역에 대한 미국인들의 투자·무역·금융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키 대변인은 “이번 대책은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더 침공할 경우 동맹과 동반자들과의 공조로 우리가 준비해온 신속하고 가혹한 경제제재들과 별개”라고 말했다. 피해 당사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2일 텔레비전 연설에서 러시아의 조처를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침해”라고만 표현하고는 침공이라는 말을 쓰진 않았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들도 러시아의 조처가 침공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 고위 당국자는 이날 익명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는 추가적 움직임(new step)이 아니다. 러시아는 지난 8년 동안 돈바스에 병력이 있었고, 그들은 현재 이를 더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방법으로 취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러시아가 한 일을 놓고 평가할 것”이라며 “우리는 탱크가 굴러갈 때까지 계속 외교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도 미국이 돈바스의 러시아 분리주의 세력 지역에만 제재 범위를 한정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에 보낼 경우 모스크바에 가할 더 공격적인 제재를 카드로 남기고,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즉, 러시아군의 행동이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던 지역에만 한정된다면, 아직 전쟁이 시작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로부터 직접적인 안보 위협을 받는 유럽 주요국들은 즉각 여러 제재 조처를 쏟아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2일 “노르트스트림2 사업의 승인 절차를 멈추겠다. 이 절차 없이 가스관은 가동될 수 없다”고 말했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이날 안으로 제재 조처를 공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태 전개의 결정적 변곡점으로 꼽히는 것은 이미 예고된 미-러 간의 고위급 회담이다. 당장 24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다. 이 회담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면, 양국이 20일 ‘원칙적으로 합의’한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21일 담화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 역사적 연원을 언급하며 자신의 조처를 정당화한 푸틴 대통령과 개별 국가의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이 유지되도록 국제 규범을 수호해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21일 밤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러는 다시 한번 설전을 벌였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가 돈바스에 출병하는 러시아군이 “평화유지군이라는 주장은 헛소리”라고 비난하자,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대사는 “러시아군은 (친러 세력들의) 요청에 근거해 평화유지활동을 수행할 것”이라고 되받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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