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억 횡령에 징역 2년6월.. '회장님 형량' 깎아준 판사들

김승환 2022. 2. 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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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한 판결 논란
300억 이상 횡령 배임 범죄 선고
양형 기준 안 지킨 비율 60% 육박
최신원 前회장 형량도 1년반 줄여
피의자들 대부분 총수나 경영인
"법리와 무관한 경제 파장 고려"
300억~500억 구간 양형기준 같아
"대법 양형 기준 세분화도 필요"
‘징역 2년6개월’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에게 선고한 형량이다. 기소 당시 횡령·배임·규모인 2235억원 중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금액은 580억원 정도였다. 구체적으로 개인 유상증자 대금과 양도소득세 등 280억원가량을 SK텔레시스 자금으로 납부한 혐의, 개인 골프장 사업을 위해 155억원을 SK텔레시스로부터 대여한 혐의, 친인척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하고 회삿돈으로 개인 워커힐 호텔 빌라 사용료를 낸 혐의 등이 유죄로 판단됐다.

이렇게 유죄로 인정된 금액을 기준으로 볼 때 최 전 회장에 대한 형량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 양형위원회는 횡령·배임 금액이 300억원 이상인 경우 기본적으로 징역 5∼8년, 가중 시 7∼11년을 권고하고 있다. 최 전 회장에 대한 1심 선고 형량은 양형위원회가 감경 시 기준으로 정한 징역 4∼7년과 비교해도 1년6개월 이상 적다.

양형기준에 미달하는 법원 선고와 관련해 최 전 회장의 사례가 특수한 게 아니다. 대표적인 ‘화이트칼라’ 범죄인 횡령·배임 사건은 그 범행 규모가 크면 클수록 법원이 더 관대하게 판결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4년간 범행 금액이 1억∼50억원인 횡령·배임 사건의 경우 그 양형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선고 비율이 10% 남짓에 불과했으나, 300억원 이상 사건은 무려 60%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20년 선고된 횡령·배임 사건의 양형기준 미준수율은 6.1%(9167건 중 557건) 수준이었다.
이 수치를 양형기준상 범행금액대별로 분류할 경우 대체로 금액이 많을수록 미준수율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1억원 미만 1.4%(4999건 중 71건) △1억∼5억원 11.1%(2843건 중 315건) △5억∼50억원 10.8%(1147건 중 124건) △50억∼300억원 21.4%(154건 중 33건) △300억원 이상 58.3%(24건 중 14건)였다. 감경 시 양형기준이 징역 10월 이하인 1억원 미만 구간을 제외하더라도, 50억∼300억원 구간(기본 징역 4∼7년)과 300억원 이상 구간(〃 5∼8년)의 미준수율은 1억∼5억원(〃 1∼3년)이나 5억∼50억원(〃 2∼5년)보다 각각 2배, 5배 정도 높은 것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법원이 법리와 무관한 판단을 개입시킨 탓이라고 지적했다. 일정 액수 이상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이들이 대개 총수 일가나 전문 경영인 등인데, 이들에 대한 중형 선고가 미칠 수 있는 경제적 영향에 대해 판사가 고려한다는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법리로 판단해야 할 판사들이 경영계 주요 인물에 대한 처벌이 미칠 부수적 영향을 암묵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총수나 전문 경영인에 대한 중형이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안인데, 이를 선고에 고려하는 건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법원이 배임 행위 중 ‘일감 몰아가기’ 같은 경우에 대해 분명 사익 추구에 해당하는 처벌 대상인데도 ‘경영상 판단’으로 봐 처벌을 가볍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액일수록 금액 구간이 급격하게 넓어지는 현행 기준이 법원의 관대한 판결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김준우 변호사는 “300억원이나 500억원이나 같은 양형기준을 적용받는 게 말이 안 된다. 기준 자체가 이미 계급적”이라며 “구분을 더 세분화하면 실제 법원의 (양형기준) 준수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한서·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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