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의 국제정치적 의미[뉴스분석]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2022. 3. 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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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표들이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논의하기 위한 유엔 긴급특별총회 소집 결의안 표결을 위해 긴급회의를 열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왔던 국제질서에 무력으로 현상 변경을 가하려는 시도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주도로 이뤄져왔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국제질서가 중국의 부상에 이어 러시아의 공세적 재편 시도로 새로운 단계를 맞고 있다. 이번 사태가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일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도 그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제정치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사태가 어떤 식으로 일단락되든 그 후유증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갈등과 불안정성이 커지고 미·중 관계는 물론 한반도 정세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리스크 관리는 한국에게 가장 시급한 외교안보 과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나

미국은 러시아의 공격적 군사 배치에 경고로만 일관했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격적인 침공 결정에도 손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은 미국에게 호기다. 미국은 러시아의 강공으로 많은 것을 챙겼다.

러시아의 행위는 논란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명백한 침략이다. 세계에 공동의 적이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유럽의 동맹국들은 물론 중립적 입장을 가졌던 나라들까지 미국과 같은 편에 서서 러시아를 비난하고 결속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세계 전략은 동맹·우호국을 결집시키는 것이었다. 이번 일로 힘들이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 또한 국내정치적으로 고전하고 있던 바이든이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 반전의 계기를 잡을 수도 있다. 푸틴이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바이든을 도와준 격이라는 평가나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는 무엇을 노리나

푸틴의 계획은 우크라이나를 점령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수도 키에프를 점령하고 젤렌스키 정권을 무너뜨린 뒤 친러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러시아가 전면전을 편 것은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의도다. 빨리 끝내지 않으면 러시아에게 크게 불리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의 관건은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저항하느냐에 달려있다. 우크라이나가 저항을 계속한다면 미국과 서방은 군수물자는 물론 비공식적 군사작전과 용병까지 제공할 수 있다.

푸틴의 의도대로 친러정권을 세우고 빠진다고 해도 그 정권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얻을 것이 별로 없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에 적응이 돼 있고 민주혁명으로 친러 정권을 무너뜨린 경험도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독재적 영향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푸틴은 왜 무리수를 뒀나

러시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에 확실한 레드라인을 긋고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또한 냉전 이후 축소된 러시아의 위상을 회복하고 미·중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 개입해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일원이 되면 러시아는 나토와 국경을 맞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러시아로서는 견디기 힘든 안보 위협이다. 과거 나폴레옹과 나치 독일의 러시아 침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유럽에서 러시아까지 이어진 대평원 지대는 전략적으로 러시아 방어에 매우 불리하다. 아무런 방어물이 없는 이 같은 지형을 두고 러시아의 한 외교관은 모스크바를 ‘팬케이크 위에 놓인 딸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과거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던 동구권 국가들이 나토에 속속 가입했지만 발트 3국을 제외하면 직접 국경을 맞대지는 않았다. 폴란드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던 것도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에 벨라루스라는 완충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0㎞에 달하는 육상 국경을 가진 우크라이나는 나토와의 완충 역할을 위해 러시아에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생산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의 빵공장’이자 서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 천연가스의 통로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자치 지역을 독립국가로 만들어 완충 지역을 확보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곧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용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크렘린궁 집무실에서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고 있다. 크렘린궁 웹사이트/연합뉴스

■미·중 관계에 미칠 영향

과거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러시아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세계질서을 좌우하는 큰 물줄기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여전히 가장 큰 관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각국의 동맹·우호국을 결집시킨 것은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게 커다란 자산이 될 수 있다. 러시아의 침략적 행동에 자극받은 중국의 주변국들이 경각심을 갖게 하는 효과도 있다. 더욱이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러시아를 저지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세계 각국과의 거리가 그만큼 멀어졌다.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비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세력임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면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지만 반대하지도 않는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본격화되면 러시아는 중국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중국 역시 이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와 협력하는 중국에게도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미·중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한국에게도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

■북한에 미치는 영향

우크라이나가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침공을 받게 됐다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던 핵무기는 옛 소련이 전략적 이유로 배치한 것이기 때문에 그 소유권은 러시아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핵무기라는 ‘점유 이탈물’을 습득한 상태로 독립하게 된 것이지 안보를 위해 핵을 보유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핵무기를 유지·관리할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이 가질 수 없는 물건을 원 소유자에게 돌려주고 경제적 대가를 받은 것뿐이다. 우크라이나 핵무기가 테러단체나 적성국가의 손에 들어갈 것을 우려했던 미국도 우크라이나에게 핵무기 이전을 조건으로 경제지원을 제공했다. 부다페스트 협약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메모랜덤’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당한 것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지 핵무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핵포기는 그만큼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태도는 적절했나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던 시점까지 한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갖지 못했고 러시아 제재가 논의될 때도 한·러 관계 등을 감안해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은 9·11 테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적과 친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사건이 됐다. 제재 동참 여부에 부정적이었던 한국이 갑자기 입장을 바꾸고 러시아 제재에 적극성을 띄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이 처음부터 우크라이나 사태가 갖는 국제정치적 의미나 심각성, 파장 등을 오판하고 과소평가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고 뒤늦게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면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파장은 끝난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한국에게 어려운 외교적 문제가 될 전망이다. 특히 대선 이후 차기 정부에게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미국과의 공조 문제는 가장 시급한 외교적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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