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앞에 '강적'이 나타났다..영토욕심 푸틴이 만든 뜻밖의 결과
'우크라 다음은 나' 위기감 발동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유럽 국가들이 전례 없이 뭉치며 ‘원 팀’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립국인 스위스와 스웨덴·핀란드까지 국시(國是)를 깨고 러시아 제재 대열에 동참하는 등 오랜만에 단일대오로 나섰다. 벨라루스 등 억압적 정권인 친러 국가 등이 예외다.
중립국 스위스·스웨덴, 불개입 전통 깼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AFP통신·뉴욕타임스(NYT)는 스위스가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다고 보도했다. 스위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포함해 EU의 제재 명단에 오른 367명 전원의 자산을 즉시 동결하고, 러시아 항공기에 대해 자국 영공을 폐쇄했다. 스위스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러시아 기업과 개인의 자산은 104억 스위스프랑(약 13조5306억원)에 달한다. 가디언은 엄격한 은행비밀법이 시행 중인 스위스는 러시아 정치인과 재벌의 가장 큰 현금 보관처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국제법상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유럽연합(EU)는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도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부과한 제재만 이행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스위스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EU의 러시아 제재에 불참 의사를 밝혀왔다. 하지만 전날 수도 베른에서 시민 2만 여명이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국내외 여론이 비등하자 EU와 뜻을 같이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오랜 군사적 비동맹주의 정책을 고수해온 스웨덴과 핀란드도 군사무기 지원에 동참했다. 스웨덴은 지난달 27일 전투식량과 장갑차, 대전차 로켓 등을 우크라이나군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을 끝으로 군사동맹에 가입하거나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웨덴은 1·2차 세계대전은 물론 미·소 냉전 시기에도 어느 진영에도 편들지 않고 ‘평시 비동맹, 전시 중립’ 원칙을 지켰다. 스웨덴이 무력충돌이 벌어진 나라에 무기를 공급한 것은 1939년 당시 소련의 핀란드 침공 때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
獨 주요 기업도 러시아 ‘손절’
독일은 연방 정부에 이어 주요 기업까지 러시아 압박에 동참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트럭업체인 독일의 다임러트럭은 오랜 협력업체인 러시아의 트럭 제조사 카마와의 협력 관계를 전면 동결했다. 독일 국영항공사인 루프트한자는 러시아 항로를 모두 취소했고, 관광기업 투이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노선을 중단하고 패키지 상품도 중단했다. 자동차기업 폭스바겐은 러시아 현지 대리점으로의 차량 인도를 중지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더 많은 기업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뜻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
EU, '우크라 난민 수용' 만장일치
유럽은 ‘우크라이나 끌어안기’에도 결집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EU 27개 회원국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에 대해 망명 신청 없이 최대 3년간 난민으로 수용한다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과거 유럽 국가들이 중동으로부터 온 난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울타리와 장벽을 설치했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조치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을 강경 거부했던 오스트리아의 카를 네하머 총리는 이번엔 “당연히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
“푸틴이 ‘유럽의 통일’ 만들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유럽이 단일대오를 보여주는 데 대해 “우크라이나 다음 차례는 나”라는 위기감이 작동한 것으로 분석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문제연구소(RUSI)의 카린 폰 히펠 사무총장은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전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룬다면 또 다른 옛 소련 국가였던 몰도바와 조지아로 고개를 돌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영국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키어 자일스 선임연구원 역시 “러시아의 목표는 100년 전 자국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라며 “발트 3국·폴란드·핀란드에게 (러시아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상대를 분열시켜 영향력을 넓혀가던 푸틴이, 자신의 패권에 가장 불리한 조건인 ‘유럽의 통일’을 무심코 만들었다”면서 “유럽의 안보 지형에 가장 큰 도전거리였던 유럽 내부의 분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녹아버렸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던 뜻밖의 결과를 만들었다는 뉘앙스다.
유엔 긴급 특별총회는 2일 러시아의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을 표결에 부친다. 총회의 결의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다만 이날 나온 찬성표 수는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고립됐는지 볼 수 있는 척도로 받아들여질 전망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성철 스님 일갈 "무식한 포수 돼라, 그래야 호랑이 잡는다"
- 아이폰 맛본 그들, 제재에 격분…침공 1주도 안돼 러 쪼개졌다
- 최첨단 무기도 발 묶였다...러시아 항복시킨 '머드 장군' 정체
- "우린 야만인 아니니까" 러시아가 버린 시신, 우크라가 거둔다
- 샌델 추종 진보진영, 서울대 신입생 제비 뽑으면 공정한 겁니까
- '나꼼수' 김용민 "윤석열 검사 때, 김건희 성상납 강력 의심"
- '박근혜 동생' 박근령, 이재명 지지선언…'특보단 고문' 임명
- "발견 즉시 흙으로 덮어라"…우크라 곳곳 '소름 끼치는 표식'
- "차기 대통령, 이게 가장 절실" DJ·박근혜 비서실장 한광옥 훈수
- [단독] 이재명 공보물 허위소명 논란…선관위, 도마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