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국 구하려 악기 던지고 총 들었다..서울팝스 단원 3인 우크라로 떠나

박대의 2022. 3. 2. 18: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팝스' 단원 3인 우크라行
우크라이나 복싱 챔피언도 귀국 두렵지 않다"
20년간 서울팝스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해온 우크라이나인 주친 드미트로(47)가 러시아군 침략에 맞서기 위해 고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지난 1일 전쟁터에서 악기 대신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한국 동료들에게 보냈다. 오른쪽 사진은 드미트로가 서울에서 연주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서울팝스오케스트라]
탱크 앞에서 주친 드미트로 씨(47)는 콘트라베이스가 아니라 총을 들고 서 있었다.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해온 그는 지난 1월 27일 전운에 휩싸인 고국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떠났으며 현재 러시아군과 교전 중이다.

지난 1일에야 그의 참전 소식을 전해들은 하성호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단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후 수소문했더니 휴대폰 문자를 통해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사진을 보내와 한참 울었다"며 "부인과 아들을 한국에 두고 혼자 고국으로 가서 싸우고 있는데 제발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2002년부터 묵직한 콘트라베이스 저음으로 서울팝스오케스트라 선율을 뒷받침하던 드미트로 씨는 착하고 성실한 실력파 연주자였다. 20년 전 키이우(키예프의 우크라이나식 발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내한했을 때 하 단장의 제안으로 서울팝스오케스트라에 입단한 후 단원 사이에서 맏형 역할을 도맡았다. 전체 상근 단원 45명 중 약 20%가 외국인으로 구성돼 적재적소에 필요한 국외 연주자를 직접 연결하며 '구원투수'로 활약해왔다.

그러나 1월 11일 세종문화회관 신년음악회를 마친 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고국행을 결심했다. 드미트로 씨의 아내이자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바이올린 단원이었던 우크라이나 출신 나타냐 씨는 "3년간 어머니를 만나지 못해 남편의 우크라이나행을 말릴 수 없었다"며 "다행히 어머니는 폴란드로 대피했는데, 남편이 어제 하루 연락이 안 돼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연주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 단원 2명도 그와 함께 고국으로 떠났다. 2016년 4월 입단한 트럼펫 연주자 마트비옌코 코스탄틴 씨(52)와 2015년 6월 합류한 비올라 주자 레우 켈레르 씨(51)가 드미트로 씨의 뜻에 동참했다. 3명 모두 키이우 음악원 선후배다. 드미트로 씨 소개로 오케스트라에 합류한 이들은 점차 악화되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지켜보다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는 소식은 동료 단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이미 한국에 뿌리내려 평화로운 삶을 누린 연주자들이 고국의 위기에 스스로 총을 든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미 예비군 나이를 훌쩍 넘어 지천명(知天命)을 맞을 때까지 평생 악기만 연주해온 노장들이 솔선수범해 나라를 지키러 나선 사실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하 단장은 "3명 모두 우리 오케스트라 핵심 단원"이라며 "고국을 위해 목숨을 거는 귀한 단원들의 감동적인 사례를 알려 그들의 무사 귀환을 많은 사람들이 기원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전·현직 복싱 챔피언들도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이자 현재 헤비급 세계 챔피언인 올렉산드르 우식(35)도 조국 방어를 위해 최근 귀국했다. 그는 2일 CNN 인터뷰에서 "내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내 임무"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는 "내 몸과 명예는 조국에 속하고 내 가족에 속한 것"이라며 "전혀 두렵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과 그의 동생인 전직 복싱 챔피언 블라디미르 클리치코는 개전 초기부터 전장의 포화에 뛰어들었다. 이날 CNN과 인터뷰한 비탈리 클리치코 시장은 "러시아군이 키이우 시내로 진입하면 우크라이나인들은 모든 광장과 거리에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박대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