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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G8' 자랑한 文정부, 우크라엔 매번 G7보다 늦었다 [뉴스원샷]

유지혜 입력 2022. 03. 05. 05:00 수정 2022. 03. 0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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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20년 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연속된 정부의 늑장 대응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오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은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전쟁의 참상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위로와 지지의 뜻을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직후 트위터에 통화 사실을 알리며 한국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지지와 연대의 뜻을 표했다는 반가운 소식. 하지만 아무래도 늦은 감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명실상부 G8? 정상급 지지 가장 늦어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에 주요 7개국(G7)에 더해 한국이 G8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자평했다.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친 뒤인 지난해 6월 청와대는 “한국이 명실상부하게 G8 국가로 자리매김한 것 아니냐는 국제적인 평가”를 강조했고(박수현 국민소통수석),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 대통령이 G8 국가로 대우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국익을 폈다”며 언론의 평가가 인색하다고 탓했다.

그러니 정부여당이 자부한 대로 G7 국가들과 비교해보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며칠 간격으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해 공동 대응을 논의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에는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통화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지난달 27일에는 우크라이나 총리와, 지난 2일에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달 15일에 이어 28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다.

문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통화 소식에 반가움에 앞서 ‘인제야?’라는 반응이 먼저 나왔던 이유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시민들이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 잔해 옆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정부의 대응이 거의 이런 식이다. 계속해서 한발씩, 며칠씩 늦는다. 그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말이다. 그러고선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성과처럼 발표한다.

미안하지만, 그래서야 생색조차 나질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매일, 아니 몇 시간 단위로 바뀌며 위급해지는데, 이런 국면에서 한발씩, 며칠씩 늦는 건 국제사회가 인식하는 대한민국의 위상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머뭇댄 대러 제재, 불신 자초


제재만 해도 그렇다. 올 초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 시계는 빠르게 돌아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군 진입 명령을 내린 지난달 21일부터 미국이 동맹과 우방을 규합해 대대적인 제재 몰아치기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란과 북한에는 몇 년이 걸렸던 강력한 제재들이 불과 1주일 사이 거의 체제를 갖췄을 정도다.

한국에도 1월 중순 무렵 이미 미국의 제재 협의 요청이 이뤄졌다. 하지만 한국이 동참 입장을 밝힌 건 지난달 24일이었다. 그것도 독자 제재는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면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불과 사흘 차이’가 아니다. 한‧미 동맹을 외교의 근간으로 두고,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를 지닌 대한민국으로서는 ‘사흘씩이나’ 늦은 것이다. 그나마도 후속조치 발표에는 그로부터 나흘이 더 걸렸다.

미국이 반도체 기술 등의 대러 수출 금지와 관련, 근거가 되는 해외직접제품규칙(FDPR)에서 ‘제재 동참 파트너국’의 경우 면제를 적용하면서 처음에 한국을 빼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바이든이 그리는 대러 제재 스크럼, 그 ‘신뢰의 고리’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미국은 지난 3일에야 면제국 명단에 한국을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1주일씩이나’ 늦었다.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에서 러시아의 공격으로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관련 발표 시점을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당국자의 방미 일정에 맞추는 방안이 고려됐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산업부는 물론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발표 시점은 온전히 협의 절차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다.

정말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관가에 설득력 있게 회자되는 것 자체가 너무나 낯 뜨겁고 황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日 ‘묻고 더블로’에 묻힌 인도적 지원


오히려 제재에 불참하면 한국 기업이 피해를 보는 마당에 기업에 미칠 영향 등을 이유로 제재 동참에 늑장을 부린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정부 입장에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더 빨랐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 큰 재해만 발생해도 곧바로 결정하는 게 긴급 인도적 지원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은 지난달 28일에야 나왔다. 규모는 1000만 달러였다. 물론 통상의 인도적 지원 규모보다 큰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으로 크게 손상된 한 마을의 주택.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이날 저녁 기시다 일본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며 1억 달러 규모의 차관 제공에 더해 또 1억 달러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를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직접 발표하며 공식화했다. 기시다 총리의 2억 달러 ‘묻고 더블로’ 신공 앞에 한국의 뒤늦은 1000만 달러 지원은 금세 관심에서 묻혔다.

자발적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 조명을 건물에 비추며 연대를 강조하고, 여러 통로를 찾아 기부하고…. 한발씩 늦지 않은 건 결국 국민밖에 없었던 셈이다.


3‧1운동-우크라 저항, 본질은 같다


가장 아쉬운 ‘실기’는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였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농부들이 맨몸으로 러시아 탱크에 달려들어 진군을 막고, 어린이들이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고사리손으로 주먹질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런 저항정신은 1919년 3‧1 운동에서 우리 선조들이 보여준 바로 그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열린 제10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하지만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는 없었다. 3‧1운동에 대해 “비폭력의 평화적인 저항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독립의 함성은 압록강을 건너고 태평양을 넘어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면서도 이를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과 연결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게 못 했다고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 정도 되는 나라에는, 그런 나라의 지도자에는 그 이상을 기대했다는 뜻이다. 수차례 강조한 대로 문 정부가 G8으로 도약한 게 맞다면, 그 정도는 생각했어야 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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