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비추는 머스크의 '별' [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김성모 기자 입력 2022. 3. 5. 13: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③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만약 어떤 일이 충분히 중요하다면, 예상되는 결과가 실패일지라도 시도해봐야죠.”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CEO AP=뉴시스

● 국가가 망설일 때 나선 ‘일론 머스크’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 직후 각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주요 국가가 아닌, 특정 인물에도 도움을 요청했는데, 바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였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26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머스크에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제공을 부탁한다”며 “우크라이나가 미친 러시아인들에 대항할 수 있게 해 달라”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내 인터넷망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스타링크 위성(스페이스X)

머스크는 10시간 만에 “스타링크가 우크라이나에 개통돼 있고 더 많은 터미널의 개통이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26일 미국과 등이 국제금융결제망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퇴출 등 제재 방안을 내놓은 것 못지않게 빠른 지원 의사를 밝힌 것. 당시만 해도 러시아 제재에 참여할지를 고민하는 국가가 여럿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머스크에 대한 응원이 이어졌다. 머스크의 과거 글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공세를 버티기를 기원했다.

페도로프 부총리와 머스크가 주고받은 트윗

● ‘총’만큼 급했던 ‘스타링크’

페도로프 부총리가 머스크한테 다급하게 ‘SOS’를 요청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이 끊기면 소통이 단절되고, 불안과 혼란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는 인터넷망 장애에 시달렸다. 글로벌 인터넷 감시단체 넷블록스에 따르면 25일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인터넷 기업 ‘기가트랜스’의 인터넷 연결은 평소 대비 20%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격’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는 침공 당시 키이우의 핵심 시설들에 탄도미사일을 날렸다. 동시에 사이버 공격 등으로 주요 기관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마비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머스크의 ‘스타링크’를 해법으로 본 듯하다. 스타링크는 위성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무게 227kg 소형 군집위성들을 수년에 걸쳐 지구 저궤도에 띄워 세계 어디에서나 인터넷을 빠르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현재까지 2000여 개의 위성을 쏘아 올렸으며, 2027년까지 총 1만1943개를 띄울 계획이다.

페도로프 부총리의 감사 인사. 트위터 캡처

이후 스타링크가 사용되고 있다는 현지 소식도 전해졌다. 무선인터넷 단말기 개발기업 유비퀴티의 올렉 쿠트코프 선임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스타링크를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에 따르면 28일 오후 8시 33분 기준 다운로드 속도는 초당 136.76메가비트(Mb), 업로드 속도는 초당 23.93Mb로 나타났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개발자 올레그 쿠트코브도 스타링크 위성 접시를 키이우의 집 창문 밖에 꽂아 10초 만에 인터넷 신호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스타링크 안테나 접시를 이베이에서 구매해 몇 달간 가지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며 “머스크가 우크라이나에서 서비스를 제공해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개발자 올레그 쿠트코브

올레그 쿠트코브는 1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키이우 상황을 전달했다. 트위터 캡처

● ‘빅테크’ 기업들의 참전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도 러시아 제재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구글의 직원들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회사 내부에서 의견을 모았다. 이후 일부 러시아 국영 매체 계정의 광고 등 영리 행위를 금지하기로 했다. 1일에는 유럽 전역에서 러시아 관영 유튜브 채널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페이스북 등 다른 소셜미디어 기업들도 이와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페이스북은 “러시아 국영 매체가 전 세계 어디서든 우리 플랫폼으로 돈 버는 것을 금지한다”며 “추가적인 러시아 국영 매체에 표식을 부착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플랫폼 기업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가짜 뉴스’ 가능성이 높은 사례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을 때, 러시아 정부의 ‘거짓 발표’가 러시아 관영 언론과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외신들은 이를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을 만들려는 러시아의 ‘가짜 깃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통신의 유튜브 채널. 최신 뉴스가 업데이트 되지 않고 있다.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악마가 되지 말자’가 모토인 구글은 우크라이나의 실시간 교통 상황과 혼잡도 등을 알 수 있는 구글맵 기능을 일시 차단했다. 러시아군이 구글맵을 활용해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군과 시민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구글은 임직원들과 1500만 달러(약 180억 원) 규모의 현금과 물품을 우크라이나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기부한다는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앤비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 10만 명에게 무료로 임시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5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유엔 기구들은 추정하고 있다.

1일에는 애플과 월트디즈니가 러시아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워너브라더스도 개봉 예정작인 ‘더 배트맨’의 러시아 개봉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워너브라더스의 개봉 예정작 ‘더 배트맨’

● 정부의 압박과 빅테크의 고민

사실 빅테크 기업들이 움직이기 이전에 우크라이나와 미 정부 관계자들은 플랫폼 기업들에게 러시아의 가짜 뉴스를 제재해줄 것을 요청했었다. 빅테크 기업들이 제재에 동참했지만, 해외에선 일부 뒷말도 나오고 있다. 각국 정부의 플랫폼사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제재에 나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뤄진 조치로도 볼 수 있지만,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구글은 콘텐츠 삭제 관련 정부 요청이 2015년 이후 5배 증가해 연 5만여 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페이스북에는 40% 증가한 약 9만 건의 정부 요청이 있었다.

구글. AP=뉴시스

이미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구독자가 50만 명 이상인 회사는 법률 책임을 위해 러시아에 사무실을 설치하라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미 스탠포드대 사이버정책센터 펠로우이자 구글 전 법률고문인 다프네 켈러는 “이상한 줄다리기”라며 “특정 국가에서 어떤 콘텐츠를 삭제하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칫 광고 시장의 규모에 따라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일지가 결정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향후 플랫폼 업체들의 제재나 각종 규정에 정부의 압박이 심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제적 긴장 관계가 고조되고 국가 내 정부의 영향력이 커지면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개인정보 보호나 알권리 요구 등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탱크보다 강력한 ‘소셜미디어’

정부의 압박은 플랫폼과 IT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쟁에서 소셜미디어는 그 어느 때보다 위력을 발휘했다. 해외 언론들은 이번 전쟁을 ‘틱톡 전쟁’이라 부르기도 했다. 소셜미디어 틱톡에는 러시아 군대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틱톡에 올라온 수백여 개의 영상들의 배경 풍경을 구글의 실제 데이터와 비교하는 방식 등으로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소셜미디어는 위기의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전쟁 직후 종적을 감췄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후 미국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해외도피를 권고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지만, 그는 트위터를 통해 건재를 알리면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달 중순 우크라이나의 비정부 여론조사 기관 ‘레이팅스’가 성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91%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는 작년 12월보다 3배 증가한 수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뉴시스

● ‘어나니머스’의 등장

국제 해커단체 ‘어나니머스’는 러시아 내부를 흔들었다. 이 단체는 25일 러시아 정부와 사어버 전쟁을 선포했다. 어나니머스는 28일 타스통신, 코메르산트 등 러시아 매체 웹사이트를 해킹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웹사이트에 “광기를 멈출 것을 촉구한다. 당신의 아들과 남편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우리는(러시아는) 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있다. 그들은 원유와 가스 구입을 멈췄다. 몇 년 뒤 우리는 북한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화면에 띄웠다. 어나니머스는 이외에도 러시아 국방부와 크렘린궁 웹사이트 등을 해킹해 데이터베이스를 유출했고, 군 통신도 가로막았다고 했다. 크렘린궁 등 정부 웹사이트 6개는 일정 시간 먹통이 됐다.

어나니머스의 사이버 전쟁 선포. 트위터 캡처

블룸버그는 전 세계 해커들의 러시아 공격이 푸틴 대통령을 예상보다 더 자극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러시아 해커는 외국 표적을 공격하는 데 능숙하지만 방어는 이보다 더 어렵다”며 “공격은 몇 번만 성공해도 혼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수비는 항상 승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방어는 방탄 수준은 확실히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어나니머스 트위터

● 하나 된 마음, 각각의 전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세계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로 뭉쳤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경제 제재에 스위스, 싱가포르 등 중립 성향의 국가들까지 동참했다.

한편으로는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지 모른다. 전쟁이 미칠 영향이 그만큼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업 등 경제 문제다.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해온 일부 유럽 국가들은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러시아의 스위프트 결제망 퇴출이 본격화되면 국내 수출 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세계 11위 경제 대국인 러시아의 고립으로 세계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과 더 낮은 성장률을 경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쟁을 계기로 세계의 경제 패턴이 빠르게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미국 등 주요 국가는 ‘공급망 재편’에 돌입한 상태다.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낮추고,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은 자국에서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시작됐다. 2010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 고용대책의 일환으로 자국으로 유턴한 기업의 공장 이전 비용을 20% 보조해주는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했다. 전문가들은 이 때부터 산업 재편성이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에 속도가 붙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급 병목 현상을 체감하면서 공급망 재편이 각국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전쟁은 이 같은 변화를 더욱 더 가속화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년 동안 심화된 지정학적 위험은 세계 정치의 특징이었지만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은 경제적 결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를 외면했다”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패턴을 깨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세계화된 공급망과 통합 금융 시장의 시스템을 더욱 쇠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