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박 그림 한장에 54억..한국인이 가장 열광하는 일본인 화가 [아트마켓 사용설명서]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구사마 야요이(93)의 잘 알려진 연작 중 하나인 '호박(Pumpkin)'(1981년)은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서울옥션 메이저 경매에서 54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에서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상위 15개 작품 중 8개가 구사마의 작품이었다. 'Gold-Sky-Nets'(캔버스에 아크릴, 112×145.5㎝, 2015년, 낙찰가 36억5000만원)와 'Infinity-Nets(WFTO)'(캔버스에 아크릴, 130.3×130.3㎝, 2016년, 31억원) 등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사마는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 기준에서도 이우환 작가에 이어 전체 2위(약 365억2800만원)를 차지했다. 출품된 238점 가운데 199점(83.61%)이 낙찰로 이어졌다. 낙찰 총액이 2017년(129억원)의 3배 가까이 뛴 것이다. 한국 작가 작품이 주를 이루는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당시 그가 환영으로 봤던 것이 둥근 점이었다. 어머니의 붉은 꽃무늬 식탁보에서 시작된 점증적인 물방울 무늬는 계속해서 작가를 따라다녔다. 강박증적인 반복과 증식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 전반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작가가 스스로 정신병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드러내고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 노력한, 치유의 결과이기도 하다.
호박죽을 먹고 병이 나은 기억으로 구사마는 평생 둥근 점과 호박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호박 연작은 심리적 강박에서 기인한 형상이지만 구사마의 작품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구사마는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유년시절에 시작되었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을 추구할 뿐"이라며 "내가 정신병원에서 사는 것은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혼자 있기 힘들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편안하게 느낀다. 병원에서 살지 않는다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환각 증세가 있다"고 밝혔다. 지금도 그는 정신병원 앞에 마련한 신주쿠 작업실에서 밤낮으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196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받지 못한 구사마는 전시장 앞마당 잔디에 1500여 개의 물방울 무늬 오브제를 깔아놓는다. '개당 2달러!'라고 적힌 이 물방울 오브제는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받았고, 이듬해 그가 베니스비엔날레 초청장을 받게 했다. 1986년 프랑스 돌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89년 뉴욕 국제현대미술센터, 영국 옥스퍼드 현대미술관에서의 연이은 전시를 통해 국제적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특히 1990년대 이후의 미술 동향 변화를 빠르게 반영한 구사마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교감과 함께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에서 선보인 거울방의 호박들이 무한히 자기 복제를 하는 작품은 그의 국제적 명성을 더욱 치솟게 했다. 1994년 일본 나오시마에 설치된 대형 '노란 호박'과 2012년 루이비통과의 협업, 2020년 봄 미국 뉴욕 보태니컬 가든에서 개최한 야외 조각전 등도 유명세를 탔다.
구사마는 한동안 서구 남성 위주의 미술계에서 소외됐지만, 2012년 미국 뉴욕 휘트니뮤지엄 회고전 이후 큰 인기를 얻게 됐다. 실제로 아트프라이스 분석에 따르면 구사마의 작품은 홍콩에서 50%, 그 외 아시아 지역에서 30%, 런던과 뉴욕 등 서구 시장에서 20%가 판매되는 등 세계적으로 고른 수요를 보인다. 지난해 12월에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를 통해 '호박(LPASG)'(2013년)이 94억5000만원에 낙찰돼 작가 경매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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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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