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투표함 못넣나" "1번 찍힌 용지 뭐냐" 확진자 투표 항의 빗발

장상진 기자 2022. 3. 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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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표한 투표지, 밀봉도 하지않고 보조원 받아서 운반
쇼핑백,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바구니로 운반한 곳도
온라인선 '투표혼란상 인증샷' 쏟아져
선관위 "확진자 투표 인원 많아 혼란 있었다"
김웅 "선관위 사무총장, 시민 항의를 '난동'이라 불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둘째 날인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 내 임시기표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사전투표지를 전달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미리 찍어놓은 이 투표용지는 도대체 뭐냐고요!” (40대 여성 유권자)

”저도 잘 모르겠어요.” (30대 남성 투표 보조원)

“모른다고? 그게 말이예요? 내 투표용지는 내가 직접 들고 들어가서 투표함에 넣어야겠어요.” (유권자)

“안됩니다. 저한테 맡기시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보조원)

“안되긴 뭐가 안돼요. 제가 뭘 믿고 그쪽에게 제 표를 맡겨요, 봉투 밀봉도 안해서 뻔히 열고 다니면서…” (유권자)

“선관위 직원 나오라해요!” (다른 남성 유권자)

5일 오후 5시30분쯤 서울 은평구 신사1동 주민센터 코로나 확진자·격리자 투표소에서는 이런 고성이 오간 끝에 대기 행렬에서 기다리던 유권자 열댓명이 투표를 거부하고 귀가했다. 이 투표소에서는 확진자의 경우 야외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뒤, 빈 봉투에 담아 보조원에게 전달하면, 보조원이 혼자 이를 들고 실내로 들어가 투표함에 넣기로 했는데, 한 40대 여성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를 넣을 봉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기표된 용지 1장이 이미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1동 투표소 확진자 임시기표소에서 40대 유권자가 자신의 투표용지(맨밑장)를 담을 봉투(가운데) 속에서 '1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기표된 투표용지(맨윗장)를 발견했다. 이 일로 기다리던 유권자 열댓명이 항의 끝에 투표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봉투를 들고온 보조원은 "나는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독자제공

이처럼 이날 진행된 제 20대 대통령 선거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가 전국 곳곳의 현장에서 대혼란을 빚었다. 신사1동에서는 ‘봉투’를 이용했지만, 어떤 투표소에서는 종이쇼핑백이, 어떤 투표소에서는 골판지 상자가 등장했다.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적어서 걷어간 투표소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성을 동반한 항의가 발생했고, 인천 등에서는 투표가 중단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기표한 투표지, 열린 봉투나 바구니, 쇼핑백으로 날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제20대 대선 투표관리 특별대책’에 따르면 확진·격리 유권자들은 투표 현장에서 선거사무보조원에게 신분을 확인받은 뒤 투표용지 1장과 임시기표소 봉투 1장을 배부 받는다. 이후 전용 임시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한 뒤, 용지를 미리 받은 빈 봉투에 넣어 보조원에게 전달한다. 보조원은 참관인 입회 하에 봉투에서 투표지가 공개되지 않도록 꺼내 투표함에 넣어야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이런 매뉴얼과는 전혀 달랐다. 은평구 신사1동을 비롯한 여러 기표소에서 보조원이 참관인 없이 혼자 돌아다니며 투표용지를 건냈고, 기표된 표를 들고 다녔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러 명의 봉투를 한꺼번에 수거하거나, 종이봉투에 담아 야외에 방치하는 등의 주먹구구식 진행이 발생했다.

‘봉투’도 현장에선 ‘쇼핑백’, ‘구멍뚫은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바구니‘ 등으로 제멋대로 운용됐다. 전주 덕진구 농촌진흥청 등 일부 투표소에선 봉투에 유권자 이름을 적어서 표를 담았다. 곳곳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함을 가지고 오면 직접 넣겠다” “봉투를 봉할 수 있는 풀이나 스테이플러를 가져다 달라”고 소리쳤다. 보조원들은 “우리는 선관위가 하라는 대로 절차에 따라 한다”며 거부했다.

온라인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확진자 투표 부실 실태를 고발하며 온라인에 올린 사진들. 선관위도 "각 투표소에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봉투나 상자, 바구니에 담아 옮기도록 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에 쏟아진 부실 투표 인증샷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이런 사태를 고발하는 ‘인증샷’이 넘쳐나고 있다. “부정투표” 주장도 수없이 올라온다. 한 네티즌은 투표함이 있는 공간은 CCTV조차 없었다며 “내 표가 어떻게 될지 알고 맡기느냐”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참관인 입회 하에 투표함에 용지를 넣는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거법은 ‘선거인은 기표한 후 그 자리에서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유권자들 증언대로라면 투표소 여러 곳에서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가 야외에 방치돼 바람에 날아다니는 모습도 찍혔다. 이를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확진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넣겠다고 ‘난동’을 부리다 인쇄된 투표용지를 두고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전북 전주 덕진구 한 투표장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사람이 몰려 혼란이 있으니 구별하기 위해 투표용지 뒤에 이름을 쓰라”고 한 일도 있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김모씨는 조선닷컴에 “사람들이 항의하자 관계자는 그제야 ‘혼란스러워 선거법위반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며 “당시 현장에 남아있던 사람들에 한해 무효표 처리한 뒤 재투표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선관위 내부 전산 시스템에도 각지에서 올라온 불미 사태 보고가 줄을 이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 홍보 담당 관계자는 “유권자가 기표한 투표용지를 바구니나 상자에 담아 정식 투표함까지 옮기도록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그 이동 과정을 참관인이 지켜보도록 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참관인 없이 투표 보조원 1명이 표를 운반하는 모습이 발견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확진자 투표 인원이 많아 일부에서 혼란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며 “정확한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

◇선관위, 투표지 직접 투표함 넣으려던 시민에 “난동 부린다”

하지만 공식 홍보 담당의 이 같은 해명과 달리, 선관위 고위 간부는 유권자의 선거법 준수 요구 항의를 ‘난동’이라고 표현했다. 이날밤 야당이 중앙선관위를 항의방문, 김세환 선관위 사무총장을 면담했다. 김웅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방문을 마친 뒤 면담 내용을 정리해 올렸다.

면담에서 의원들이 ‘기표하지 않은 투표용지가 야외에 방치돼 바람에 날아다니는 모습’에 대해 항의하자, 김세환 선관위 사무총장은 “확진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넣겠다고 ‘난동’을 부리다 인쇄된 투표용지를 두고 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고 김 의원은 전했다. ‘공직선거법 지키라고 한 국민보고 난동이라고 표현했나’라는 항의에도 사무총장은 “그렇다”고 답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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