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37] 넥슨 김정주의 죽음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2. 3.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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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만나는 일이나, 도를 통한다거나, 근심·걱정을 벗어나서 달관하는 것이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야말로 궁극적 관심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이미 구원받았다. 하느님을 만났다고 믿는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불행하게 일찍 죽으면 세상 사람들은 뭔가 충격을 받는다.

김정주 넥슨 창업주./뉴스1

신흥 재벌 ‘빅5′ 가운데 하나인 넥슨 김정주(54)의 우울증 죽음은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전쟁터에서는 죽기 싫어도 총 맞고 죽지만 평화시에 수조원을 가졌지만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에도 급수가 있다. 가장 높은 급수는 고종명(考終命)이다. ‘고종명’은 오복(五福) 중 하나에 속한다. 죽을 때 후회가 없이 ‘잘 놀다 간다!’면서 큰 고통 없이 죽는 게 고종명이다. 도가 높은 선사(禪師)들이 앉은 상태로 죽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은 고종명의 대표적 사례다. 인생을 잘 산 사람은 이렇게 죽는 것이다. 재산을 수조원 가진 성공한 인생이 왜 고종명을 못하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는가?

80대 후반에 죽은 이어령은 죽기 2~3년 전부터 대비했다. ‘나 병 걸려서 조금 있으면 저승에 간다. 물어볼 것 있으면 미리 다 물어봐라’ 하고 갔다. 이만하면 고종명이다. 이어령은 살아생전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너무 자기 말만 길게 하는 습관이 있어서 상대방은 끼어들기 어렵게 만드는 벽(癖)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 좀 불만이 있었다. 그러나 죽을 때는 격조 있게 죽었다. 고종명이 장광설의 벽을 상쇄했다고나 할까.

김정주와 같은 재벌의 팔자는 재다신약(財多身弱)이 되기 쉽다. 수조원을 버는 과정에서 이미 타고난 에너지를 거의 소진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번 크고 작은 위기를 통과하면서 이미 진을 뺀 상태인 것이다. 돈 많다고 소문나면 많은 사기꾼이 파리 떼처럼 달려든다. 그리고 주변에 친구가 없어진다. 이해관계의 인간들로만 둘러싸인다. 속을 터놓을 친구가 없이 고독한 상태가 되면 폐가 울결해서 폐암에 걸린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어떤 분야든지 7할 능선을 넘어가면 저격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7할을 넘는 순간 스나이퍼의 총알들이 날아온다. 파리 떼와 총알에 질려버리면 우울증이 온다. 베풀어 놓은 덕이 있어야 방탄조끼를 입는다. 돈이 없어도 시달리고 수조원을 가져도 죽어야 하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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