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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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유럽의 난민 위기와 인종주의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입력 2022. 03.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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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이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세계 각국에서 쏟아지고 있다. 특히 폴란드, 헝가리 등 인접국가들은 방역패스 면제, 숙소와 식량 제공, 3년간 체류 및 아이들에 대한 교육 보장 등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들 국가의 국경지역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도우려는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국 언론 또한 러시아 탱크를 맨손으로 막아내는 주민, 러시아 군인을 꾸짖는 할머니의 모습 등을 보도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지어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외국인들의 참전을 요청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에 호응하여 영국, 호주, 한국 등의 나라에서 젊은 남성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우호적인 반응과 조치들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유럽을 휩쓸었던 시리아 난민에 대한 적대적 반응을 고려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2010년대 시리아 내전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터키를 경유하여 유럽으로 이동했고,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키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보트에 몸을 실었던 4세 아이의 시신이 해변으로 떠내려왔다. 이 아이의 사진은 유럽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난민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렸지만 난민 수용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나 조치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이례적으로 시리아 난민들을 수용했던 독일에서조차 난민들은 네오나치 성향의 젊은 세대의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시리아 난민과 우크라이나 난민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극단적인 온도차를 만들어 낸 것은 무엇일까? 뉴욕시립대 영문과 교수 무스타파 바이유미(Moustafa Bayoumi)는 ‘가디언’ 기고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보도 속에 숨어 있는 인종주의를 포착한다. 그에 따르면 서구 언론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시리아인과 달리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그리고 ‘우리처럼 인스타그램을 쓰고 넷플렉스를 보는’ ‘문명인’임을 강조한다. 즉 우크라이나 난민은 유럽의 부에 기생해 살려고 들어오는 야만적인 이방인이 아니라, 러시아 군인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문명화된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원하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이방인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는 행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우호적인 대응은 난민의 상황과 처지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유럽인과 비유럽인이라는 인종적 위계질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 국경에는 유럽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와 대우가 취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유학 온 수많은 아프리카, 인도, 중동 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학생들은 국경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곤란을 겪고 있다. BBC 뉴스에 따르면 인도 유학생들은 국경 근처 호스텔에 갇혀 인도 정부에 탈출용 비행기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고, 아프리카 및 중동 아시아 출신 유학생들도 국경에 발이 묶인 채 극심한 상태의 식량과 물 부족 상태를 겪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 텔레비전에서 접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 속에 이들은 없다. 우리가 보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90일의 체류 기간까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대부분 하얀 피부톤을 가진) 유럽인의 분류에 들어가는 사람들로, 이들에게는 국경을 넘어가 난민에게 제공하는 지원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이 점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위기는 시리아 난민 위기에서 우리가 목격하였던 인종주의적 적대감과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인간주의는 여전히 인종주의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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