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푸틴은 어쩌다 '푸틀러'가 되었나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2022. 3. 1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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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달라졌어요."

러시아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자 서방의 러시아 관측통들이 일제히 했던 말이다. 푸틴은 그동안 교활하고 냉철한 체스 선수처럼 국제 관계를 다루어 왔는데, 이런 무모한 전쟁을 실제로 일으킨 건 예상 밖이었다는 얘기다.

푸틴을 규탄하는 세계 각지의 시위에는 '푸틀러'라고 비난하는 이미지도 많이 등장했다. 과대망상적 역사관에 사로잡혀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히틀러에 빗댄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블라디미르 푸틴'을 합쳐 '블라돌프 푸틀러'라 부르기도 한다.
(c) SBS 뉴미디어 그래픽, 뉴스쉽 타이틀 이미지

"똑바로 말해!!"…호통을 TV로 방영하는 최고권력자


러시아 군대와 정보당국에도 전문가 엘리트들이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전쟁이 무모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푸틴을 말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아래 사진을 보자.
(사진) 국가안보위원회를 주재하는 푸틴 (현지 2월21일) 크렘린 제공, AP, 연합.
러시아군이 푸틴의 명령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기 3일 전인 2월21일.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 궁에서 국가안보위원회를 열었다. 침공의 명분을 공표하는 자리였다. 커다란 회의장 한 편에 푸틴이 자리잡고 있고, 한참 떨어진 건너편에 각료와 참모들이 앉아있다. 푸틴이 호명하면 한명씩 마이크 앞으로 불려나와 푸틴과 문답을 한다. 세르게이 나르쉬킨 해외정보국장이 마이크 앞에 서서 의견을 말하는 차례. 나르쉬킨은 정보당국과 행정부, 의회를 오가며 푸틴을 섬겨 온 고위인사이자, 2016년 푸틴에 의해 '러시아 스파이들의 수장'으로 임명된 인물이다. 그와 푸틴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르쉬킨: ….서방의 파트너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수 있을 겁니다. 키이우를 압박해서 타협안을 받아들이도록….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오늘 논의하는 결정을 해야 할 겁니다.

푸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최악의 경우'라니, 무슨 소리야? 지금 협상이라도 시작하자는건가?

나르쉬킨: (당황해서) 아니요, 저…저는….

푸틴: 말해, 말해! 분명하게 말하라고!

나르쉬킨: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자는 제안을 지지하겠습니다.

푸틴: '지지하겠습니다'야, '지지하고 있습니다'야? 똑바로 말해!

나르쉬킨: (바짝 얼어서 눈치를 보며)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대화는 크렘린에서 영상으로도 공개했다. 캡처한 뒤 연속장면으로 엮어 보았다.
(캡처 원본 출처: 영국 가디언 유튜브 채널)


영상을 보면, 푸틴은 나르쉬킨에 대해 불쾌감, 경멸 등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파워엘리트 최상층부 인사인 나르쉬킨은 마치 답이 틀리면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학생처럼 안절부절한다. 북한에서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이후 김정은이 군과 당의 간부들을 모아놓고 회의하는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다.

고위인사를 이렇게 쥐잡듯 하는 영상을 그대로 공개한다는 것도 최고권력자와 참모들과의 관계의 성격을 보여준다. 푸틴의 러시아에서 이런 식의 권력행사 이미지 공개는 꽤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9년 6월의 피칼료보 사건이다. 푸틴은 당시 측근인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총리로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인구 2만의 작은 도시 피칼료보를 전격 방문했다. 그 마을에는 총 자산 35조원이 넘는 재벌이 운영하는 시멘트-알루미늄 공장이 있었다. 경제난을 이유로 공장이 문을 닫고 3개월치 임금을 체불해 주민들이 생활고를 겪다 시위에 나섰다. 푸틴이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직접 현장에 출동한 것이다. 대책회의에는 문제의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가 불려와 있었고, TV카메라가 대기하고 있었다.

(2009.6.6 SBS 8뉴스 캡처)

푸틴은 데리파스카를 일으켜세워 바퀴벌레 운운하며 야단치고, 당장 체불임금 지급 각서에 서명하라고 호통치면서 볼펜을 책상위에 던진다. 데리파스카는 구부정하게 선 채로 각서에 서명을 한다.


이런 장면이 전국에 방영됐고, 푸틴은 경제난에 시달리던 서민들의 영웅이 됐다. 실제로 그 재벌이 한 짓은 바퀴벌레같다는 욕설을 들어도 싸다고 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다. 법과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나라에선 이런 악덕기업주는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 법정에서 처벌받고 필요한 배상을 한다. 러시아에서는 회의를 사전에 준비하고 문제의 재벌을 불러다 대령시켜놓고, 합의각서도 미리 준비해 놓고, 국영 TV의 카메라도 준비시켜놓고, 호통치는 푸틴의 모습을 연출했다. 정의를 구현하는 차르(황제)의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어 백성들이 차르를 칭송하게 한 것이다.

그때부터 10년도 더 지난 지금, 푸틴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다. 푸틴에게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직언이 가능한 사람이 남아있기 어려운 구조다.

유형의 거리로 표현된 무형의 권력, 그리고 코로나19

권력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회의장의 좌석배치 같은 것을 통해서말이다. 2월28일(현지시간) 푸틴의 관저에서는 국영에너지회사 고위경영진과의 면담이 열렸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예상되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아래 사진과 같은 배치에서, 불려온 전문가들은 국가최고권력자인 푸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사진) 관저에서 국영 에너지회사 등 관계자를 만나는 푸틴, 모스크바 2월24일 (Sputnik/로이터/연합)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런 모습은 코로나19에 대한 푸틴의 과민증 때문에 더 심해졌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푸틴을 만날 사람은 호텔에서 2주간 격리를 한 뒤 소독제가 분사되는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즈는 미국 정보 당국자들을 인용해, 코로나19를 극도로 조심하는 푸틴이 지난 2년간 각료 또는 참모들과 대부분 화상회의 또는 전화통화를 했다고 보도했다.

물리적 거리는 소통의 질에 영향을 준다.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속닥거릴 수 있도록 가까이 붙어앉으면 보다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하다. 멀리 떨어지면 내밀하고 솔직한 소통도 어려워진다. 20년 넘게 국가원수 자리에 군림하는 푸틴에게, 참모들이 반대의견을 내고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푸틴이 KGB에서 성장하면서 편집증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온갖 공작과 권력 암투를 때로는 실행하고 때로는 지켜보며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대면접촉의 부재와 고립생활의 장기화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미국 정보당국자들은 푸틴이 자충수를 뒀을 때 그의 편집증적 성향이 더욱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나 핵위협 등을 지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런데, 푸틴이 사람들을 만난 최근의 사진 중 의외의 모습이 있다.

푸틴은 '자애로운' 마초?

모스크바 근교 아에로플로트 항공학교, 현지 3월5일 (Kremlin/ Sputnik/ 로이터,연합)
지난 5일(현지시간)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국영 아에로플로트항공의 승무원학교를 찾아 여성들과 사진을 찍은 것이다. 앞서 소개한 안보나 경제회의에서 말소리도 안들릴 정도로 먼 거리에 참석자들을 배치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상은 모순되지 않는다.

푸틴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범접할 수 없는 절대권력자' 이면서 동시에 '자애로운 마초'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푸틴은 강한 남성성 -그것이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지라도-을 자랑하는 걸 좋아한다. 푸틴은 1952년생인데, 웃통을 벗고 나이에 비해 근육질인 상체를 드러낸 채 스포츠를 즐기거나 말을 타는 등의 모습을 자주 홍보한다.

2009년 시베리아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푸틴. (AFP)
푸틴이 추구하는 리더상은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숫사자와 같은 것이다. 무리에서 가장 강한 숫사자는 경쟁자를 압살하고, 자신의 암사자와 새끼들을 하이에나 등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한다. 푸틴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보호자를 자처했다. 그들을 우크라이나의 신나치주의자들 (푸틴은 젤렌스키 등 반러 친서방 지도부를 그렇게 부른다.)의 학살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특별군사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자들의 초원에서는 잔혹드라마도 펼쳐진다. 우두머리 수컷이 다른 수컷의 유전자를 받은 새끼를 물어 죽이는 것이다.

배신감에 몸을 떠는 마초의 잔혹성


알자지라 영문판의 정치분석가 마르완 비샤라는 최근 푸틴의 마초 심리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분석하는 칼럼을 썼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푸틴의 방송연설에서는 분노와 씁쓸함, 강한 '배신감'이 날것으로 표출됐다. 자꾸 서방에 다가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실망과 질투를 넘어, 배신만은 용서 못하겠다는 심리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돈도 주고 땅도 줘서 만들어준 나라가 우크라이나인데, 너희들이 러시아의 적의 품에 안기겠다고?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어!' 이것이 그의 눈에 비친 푸틴의 속내다.
(마리우폴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위 공격이 자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외곽에서 희생된 민간인 시신이 집단매장되고 있다.
이것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이유로 살해하려드는 폭력남편의 심리와 유사한 기제다. 이런 유형의 사건에서, 눈이 뒤집힌 남편은 새끼를 물어죽이는 숫사자처럼 잔혹해진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푸틴이 민간인 대상 무차별 폭격에 이어 화학무기나 핵무기까지 쓸 수도 있다는 전망은 이런 심리적 이유에도 기인한다.
국제문제를 다루는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피터 딕슨은, 푸틴의 야망은 이념을 공유하는 연방으로서의 소련 재건이 아니라 국수주의적인 '러시아 제국'의 재건이며, 그 과정에서 제노사이드(특정 인종이나 민족의 말살)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 역시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갖는 '배신감'에 주목한다. 러시아 제국의 품을 떠나 서유럽-대서양세력에게 안기려고 수년째 몸부림치는 데 대해 푸틴이 느끼는 분노는 일종의 배신감이라는 것이다.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에서 푸틴이 배운 것

2009.9.1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방탄유리 뒤에서 군사퍼레이드를 참관하는 카다피. AP자료.
리비아의 철권통치자였던 카다피의 몰락과 푸틴의 심리를 연관시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킴 가타스의 <애틀랜틱> 3월6일자 기고가 그런 사례다. 카다피는 원래 반미 독재자였지만 2003년 반미정책 중단을 선언하고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자진폐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2011년 아랍 민주화 시위가 터졌다. 아랍의 봄이 리비아로 번져오자 카다피는 국민을 상대로 내전을 선포했다. 이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군사개입을 위한 유엔결의안을 추진했다. 당시 푸틴은 대통령직을 측근인 메드베데프에게 넘겨주고 수상으로 한발 물러나 있던 시기였는데, 메드베데프가 서방의 설득에 넘어가 결의안을 비토하지 않았고, 결국 나토군이 리비아에 개입했다. 카다피는 나토군에 쫓겨 하수구에 숨었다가 반군에게 붙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2011년, 나토 군에게 쫓겨 고향 시르테(수르트)까지 도망가 하수구에 숨었다가 시민군에게 붙잡힌 카다피. 이후 끌려다니며 매를 맞다가 유혈이 낭자한 채로 죽었다. 너무 끔찍한 모습이어서 여기에 실을 수 없다. (Reuters/BBC 캡처)
푸틴은 당시 카다피가 붙잡혀 죽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고 한다. 윌리엄 번스 CIA국장의 저서 <더 백 채널>에 나오는 내용이다. 킴 가타스에 따르면, 푸틴은 카다피의 최후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 권력자에게 민주화는 위험하다는 것, 카다피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욕먹는 외톨이 폭군일 때가 가장 좋았다는 것, 서방을 향해 문을 열자 서방세력이 치고 들어와 카다피의 목숨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푸틴은 이듬해인 2012년 대통령으로 크렘린에 복귀한다. 그리고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 축출을 도모하는 서방세력의 차단에 나선다. 2015년 시리아 내전에 전면적으로 개입해 민간인 상대 무차별 폭격, 화학무기 사용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사드 독재 정권을 지켜준다.
이 과정에서 푸틴은 민주화 혁명의 연쇄고리를 러시아의 무력개입으로 끊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서방세계는 자신의 시도를 진지하게 무력으로 저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킴 가타스는 분석한다. 푸틴이 진정으로 '간이 커진' 것은 시리아를 통해서였으며,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디까지 밀어붙일지도 시리아에서 푸틴이 벌인 전쟁범죄들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시리아 정부군의 양민학살을 지원하는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 2018년 터키 이스탄불의 러시아 공관 앞 (게티 이미지)

히틀러와 푸틴…피해망상적 국수주의의 폭력

소규모 무력 위협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뒤 점차 스케일을 키워 엄청난 전쟁비극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푸틴은 히틀러와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피해-과대망상적 역사관과 지정학의 혼종 사상에 사로잡혀 주변국을 무력침공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히틀러는 게르만족이 잘 살 수 있으려면 독일이 중부유럽에서 보다 큰 땅을 차지하는 것이 역사와 인류발전의 순리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영국이 유태인 자본과 손잡고 베르사유조약(1차세계대전 종전 조약)으로 독일에 굴욕을 강제하였으므로 무력으로 되갚아줘야 한다는 사상에 사로잡혔고,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푸틴은 서유럽-대서양 세력에 맞서 유라시아 대륙의 힘을 끌어모아 웅대한 루스족의 제국을 재건하자는 사상에 물들어 있다. 그에게 미국과 나토는 소련의 붕괴라는 치욕을 안겨주었던 궁극의 적이고, 러시아는 피해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유럽-대서양 세력을 유럽대륙에서 말살할 수는 없고, 대신 러시아의 앞마당은 청소하여 완충지대로 두겠다는 것이 푸틴의 지정학적 사고다.


전쟁상대국의 인명피해는 물론, 자국 병사들의 목숨 또한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히틀러는 겨울 소련으로 쳐들어갔다가 얼어죽고 굶어죽고 소련군 반격에 당하는 장병들에게 퇴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후퇴해서 재정비 후 다시 진격해야 한다는 군 간부들에게 정신이 썩었다고 호통쳤고, '현 위치 사수'를 광적으로 고집했다. 그 결과 독일군은 회복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졌다.

2022년의 러시아군은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우크라이나에 보내졌다. 훈련 가는 줄 알고 차량에 탔다가 우크라이나에 내려진 앳된 징집병들은 배가 고파 탈영을 한다. 진흙밭에 빠진 탱크를 버려두고 도망치거나 저항군의 휴대용 미사일에 맞아 목숨을 잃는 러시아 병사도 부지기수다. 푸틴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 두 손 드는지 보자며 인원과 장비를 갈아넣는 중이다. 침공 대상보다 숫적으로 우위에 있으며 강력한 연합군과 맞서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푸틴의 처지는 히틀러와 다르다.

히틀러는 미국의 참전과 소련군의 반격으로 결국 저지되었다. 독일군 내에서 암살이 여러차례 시도되기도 했지만, 결국 히틀러는 소련군이 코앞까지 진격해오자 1945년 4월30일 베를린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히틀러의 알려진 마지막 모습. 1945년 4월30일, 자신의 지하벙커에 쏟아진 소련군 폭격의 피해상황을 보기 위해 SS 장교와 함께 잠시 나온 모습이 찍혔다. 그는 얼마 뒤 벙커에서 자살했다. (UKTV History 캡처)

푸틴의 경우는 히틀러와 달리, 그의 군대를 패퇴시키며 본진을 밀고 들어오는 강한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그토록 원하는 전투기 제공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에겐 미안하지만, 전쟁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대할 것은 러시아 내부에서 푸틴 제거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일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푸틴, 어떤 종말을 맞을까.


흥미롭게도, 푸틴 자신이 이 문제에 관해 미국 미디어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2017년 미국 CBS 방송이 자신에 대해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인터뷰를 했는데, 암살 위협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 것이다.

질문자: 다섯 번의 암살 위기를 넘겼다면서요? 그런데 쿠바의 카스트로보다는 적군요. 그는 50번이라던데.

푸틴: 아, 카스트로와 회담할 때 그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가 묻더군요. "내가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줄 아시오?" 어떻게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내 자신의 안전 문제는 내가 직접 챙기기 때문이지."
나도 내가 할 일을 하고, 경호실은 그들의 할 일을 합니다. 여전히 일을 꽤 잘 하더군요. (그러니까 자신이 살아있다는 뜻)

푸틴: 러시아엔 이런 말이 있다는 거 압니까? '교수형을 당할 자는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질문자: 아…허허… 당신이 어떤 운명을 맞을 지 알고 있나요?

푸틴: 신만이 우리의 운명을 알겠죠. 당신이나 나나.

질문자: ....저는 그냥 침대에서 조용히 죽고 싶은데요.

푸틴: 죽음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문제는, 이 덧없는 세상에 살면서 그때까지 무엇을 이루느냐,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누리고 가느냐겠죠.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푸틴은 '교수형을 당할 자'의 운명일까, '물에 빠져 죽을 자'의 운명일까. 답은 신만이 알고 있고, 그가 죽기전에 이루려는 것을 저지할 세력이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

(구성: 이현식 선임기자/D콘텐츠 제작위원,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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