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산불] 원전부터 금강송까지..아찔했던 순간들
화마 금강송 군락지 4차례 침범..산불 영향구역 2만923㏊
(울진=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역대급 피해 규모를 낸 울진·삼척 산불은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국가 주요시설물까지 위협하면서 아찔했던 순간들이 잇따랐다.
산불 발생 첫날 초속 20m가 넘는 강풍으로 불길은 최초 발화한 경북 울진을 넘어 강원도 삼척까지 급속히 번지며 피해 구역은 속수무책으로 확산했다.
밤새 울진 한울원자력발전소와 한국가스공사 삼척기지를 위협한 화마는 다음날 풍향을 따라 인구 밀집 지역인 울진읍 시가지로 방향을 틀면서 이재민이 속출했다.
산림 당국이 민가와 천년 사찰 불영사 등 주요 시설을 방어하는 동안 산림 피해는 커졌다. 산림 지역에는 짙은 연무와 연기가 가득 차 헬기 진화에 어려움을 더했다.
불길이 마지막으로 향한 울진 소광리 금강송 군락과 이어지는 응봉산 자락은 해발고도가 높고 절벽 등 급경사지로 이뤄졌다.
진화 인력 접근이 어려워, 주로 헬기에만 의존해야 해 산불 사태를 장기화시켰다.
주불 진화는 발생 213시간 43분 만에 이뤄졌다. 산불 영향구역은 2만923㏊(울진 1만8천463㏊, 삼척 2천460㏊)이며, 주택 319채 등 시설물 643개가 소실됐다.
천문학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산림당국은 국가 주요시설과 인구 밀집지역 등에 대한 방어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한울 원전과 LNG 생산기지를 지켜라"
이번 산불은 확산 속도가 유난히 빨랐다. 지난 4일 오전 11시 17분 건조경보 속에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발생한 불은 초속 25m 이상의 강풍을 타고 반나절 만에 국가 주요 시설들을 위협했다.
발화 후 4시간도 되지 않은 4일 오후 3시 최초 발화지점에서 11㎞ 떨어진 한울원전 울타리 주변까지 불씨가 날아들었다.
한수원은 자체 진화를 한 뒤, 송전망 문제에 대비해 한울 1∼5호기 출력을 50%까지 낮췄다.
오후 5시 30분 산불은 국내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인 삼척 원덕읍 호산리 LNG기지 후문 1㎞까지 근접했다.
소방당국은 LNG기지를 포위하듯 둘러싸고 예비 살수를 펼쳤다. 35만L(리터)급 대용량포 방사시스템 2대를 삼척 LNG기지 주변에 전진 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대용량포 방사시스템은 1분에 7만5천L의 소방용수를 130m까지 방수하는 능력을 갖춘 '울트라급' 소방차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다행히 밤사이 강풍이 잦아들면서 한울원전과 LNG 기지를 위협했던 화마는 물러났다.
울진읍 덮친 화마…주민 1만 명 대피
산불 발생 이튿날인 5일 불길은 바람을 타고 인구 밀집 지역인 울진읍 시가지로 남하했다.
울진 인구(4만7천775명) 약 30%가 거주하는 울진읍 아파트 단지 뒷산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자 긴장감은 최고로 치솟았다.
산림 당국은 주민 1만 명에게 대피령을 발령했다.
산림과 소방당국은 집단 주거지 코앞에 있는 가스충전소에 불길이 닿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일부 주택과 농·축산 시설, 공장 등이 화마에 소실됐지만, 다행히 주민과 시가지 안전은 지켜냈다.
소광리 핵심 산림자산 '금강송 군락지'와 응봉산 방어
산림 당국은 이번 산불 진화에 가장 큰 고비로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보호를 꼽았다.
소광리 일대에는 불길이 총 4차례 침범했다.
8일 오전 7시 금강송 군락지 경계선에서 튄 비산화(불똥)가 금강송 수 그루에 붙어 긴급 진화가 진행됐다.
산림 당국의 사투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3시간 뒤 금강송 군락지를 침범해 폭 100m 미만, 길이 100∼200m 구역이 소실됐다.
8∼9일 밤사이에도 금강송 군락지 보호구역 경계에 화선이 재침범해 진화가 이뤄졌다. 이어 10일 오후 8시께도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에 불꽃이 한 번 더 튀어 산림 당국을 긴장시켰다.
금강송 군락지는 지형상 해발 999.7m 높이 응봉산과 연결돼 응봉산 산불을 동시에 잡아야 완전 진화가 가능했다.
산세가 험한 응봉산에는 지상 진화 인력 투입이 어려웠다.
11일 응봉산에는 야간 진화 헬기 수리온이 배치되고 특전사, 해병대 등 진화인력이 보강됐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응봉산에서 계속 화기가 넘어오는데 동시에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를 지키는 전략이 어려웠다"며 "방어에 혼신을 다해주신 관계기관 모두에 감사의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sunhy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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