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중교통에 광고 덕지덕지 "눈·귀가 어지럽다"

오주비 기자 2022. 3.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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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 천장에는 가로 3.7m, 세로 0.75m에 달하는 대형 광고판 2개가 나란히 설치돼 있었다. 작년 10월 새로 설치된 ‘멀티비전’ 광고판이다. 선명하고 밝은 화면 속에는 전자제품 등을 홍보하는 형형색색의 동영상 광고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광고판 뒤 ‘타는 곳’이라 적힌 안내판이 흐려 보일 정도로 화면이 크고 밝았다. 그 광고판 아래에 있는 가로 2m, 세로 1m쯤 되는 대형 화면에서도 동영상 광고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날 기자는 지상에 있는 충무로역 1번 출구에서 지하 4층 3호선 승강장까지 가는 약 3분간 이런 크고 작은 광고판 40개와 마주쳐야 했다.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 김모(29)씨는 “요즘 지하철을 탈 때 역마다 번쩍번쩍하는 광고가 너무 많아 눈이 아플 지경”이라고 했다.

지하철역 기둥·벽마다 광고판 - 13일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지하 1층 곳곳에도 조명을 환하게 밝힌 광고판이 늘어서 있다. /김지호 기자

최근 지하철·버스 같은 대중교통과 택시 등 서울 주요 교통 시설에 광고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하철 역은 물론 버스 창가, 택시 뒷좌석 등 시선을 딱히 돌릴 곳이 없는 곳에도 잇따라 광고판이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은 “광고 공해 수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하철·버스·택시업계는 “코로나 2년 간 적자가 너무 많이 쌓여 광고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2021년 지하철 역에 있는 동영상(멀티비전) 광고판을 기존 70개에서 120개로 늘렸다. 2016년부터 5년 가까이 유동 인구가 많은 역 28곳에 70개의 광고판을 뒀지만 지금은 약 53개 역에 광고판 120개가 있다. 70%가량 늘어난 것이다.

버스 유리창에 스티커 광고 - 현재 서울 시내버스 7300여 대 중 3000여 대에는 창문 16개에 가로 20㎝, 세로 10㎝ 크기의 스티커 광고가 붙어 있다. /오주비 기자

버스 창문엔 작년 4월부터 스티커 광고가 줄줄이 생겼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버스 약 7300대 중 3000여 대 창문에는 가로 20cm, 세로 10cm 크기의 스티커 광고가 붙어 있다. 실제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시내버스 차고지에 가보니 주차된 버스 23대 중 20대는 창문 16개에 모두 이런 광고가 붙어 있었다. 특히 자리에 앉은 승객 기준으로 눈높이쯤에 광고 스티커가 붙어있다. 1주일에 한 번씩 한강을 건너는 버스를 탄다는 장연지(26)씨는 “창문 밖으로 강을 보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는데 밖 풍경을 볼 때 광고를 보지 않을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택시는 작년 5월 이후 조수석 헤드레스트(머리 받침대)에 동영상이 나오는 화면을 걸어 놓은 차량이 늘고 있다. 뒷좌석 손님은 화면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에만 이런 택시가 4700여 대에 달한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대학생 옥모(24)씨는 “야간에 화면이 너무 밝아 눈을 감아도 빛이 느껴졌다”고 했다. 경력 10년의 택시기사 전모(58)씨는 “젊은 사람들과 달리 나이 든 사람들은 화면을 끄거나 소리를 줄이는 방법을 몰라 ‘어지럽다’고 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택시에 모니터 광고 - 서울에서 운행하는 택시 4700여 대에도 조수석 헤드레스트에 동영상 광고가 나오는 모니터가 달려 있다. /오주비 기자

지하철·버스·택시업계는 “코로나 탓에 시민 이동량이 줄면서 적자가 쌓여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서울 시내버스 누적 부채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712억원에서 2년 만인 지난해 8191억원으로 늘어났다. 서울 지하철 당기순손실 역시 2019년 5865억원이었지만 이듬해 1조원을 넘겼다. 작년도 손실이 1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과거 도시 미관을 위해 간판의 규격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처럼, 대중교통 광고들에 대해서도 조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고로 시민들이 불편을 느낀다는 걸 안다”면서 “내부 검토를 거쳐 불편 사항을 줄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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