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문화일보

<시론>'아시아형 핵 공유' 추진할 때다

기자 입력 2022. 03. 16. 11:41 수정 2022. 03. 1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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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최대 핵보유국의 우크라 침공

규범에 기반한 세계질서 파괴

中·北도 푸틴식 접근법 노릴 것

일본선 美전술핵 배치론 대두

尹정부 안보 우선 對日 외교로

한·미·일 핵공유 협정 협의해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9·11테러나 베를린장벽 붕괴에 맞먹는 충격적 사건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러시아가 안보 우려를 내세워 이웃 국가를 공격한 것은 국제법과 규범에 기반한 세계 질서를 파괴하고, 핵과 무력이 통하는 약육강식 시대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도박이 성공한다면, 러시아보다 더한 독재국인 중국이나 북한 등이 핵을 앞세워 푸틴식 접근법을 쓰려 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미국 핵무기의 자국 배치를 허용해야 한다며 나토식 핵 공유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베는 지난달 27일 “부다페스트 각서를 맺을 때 우크라이나에 전술핵을 남겨뒀으면 어땠을까 하는 논의가 있는데, 일본도 여러 선택지를 논의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세계 각국이 안전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면서 일본의 ‘비핵 3원칙’ 폐기 필요성까지 시사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핵무기 제조·보유·반입 관련 비핵 3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며 일축했지만, 자민당 최대 파벌의 보스가 운을 뗀 뒤 정치권의 동조 기류는 확산 추세다.

나토식 핵 공유는 대선 때 제기됐던 이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대선 후보 TV토론 때 “전술핵 반입은 피하면서 오키나와와 괌에 있는 것을 활용하는 협정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한국형 핵 공유’를 제안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에 대해 언급을 피한 채 확장억제 강화론을 피력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간사로 임명된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안철수식 핵 공유와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안보전문가들과 함께 쓴 ‘북한 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공감한반도연구회 보고서)에서 “나토식 핵 공유 협정을 통해 핵우산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또 “동해상에 미국 핵잠수함을 배치해 동맹 공동관리 아래 두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제안도 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아베의 제안에 대해 공식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일 ‘일본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핵 논쟁’이란 사설에서 ‘핵 공유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동맹을 심화시킬 기회’라고 평가했다. 또, 아베의 제안에 대해 ‘글로벌 질서 파괴 시대에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푸틴의 도발로 자유주의 세계 질서가 흔들리는 혼란기엔 새로운 방식으로 국가를 수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미국도 아베의 파격적인 제언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중이 아시아에서 푸틴식 도발을 벌일 경우, 한국과 일본은 꼼짝없이 우크라이나처럼 당할 수 있다. 대만은 더 위험하다. 따라서 아베의 나토식 핵 공유 제안에 대해 미 주류사회에서 긍정론을 편 만큼 바이든 행정부도 그간 상상할 수 없던 것을 생각하는(think unthinkable) 쪽으로 입장을 선회할 수 있다. 아시아 핵심 동맹국인 한·일이 함께 목소리를 내면 더욱 그럴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금기도 깰 수 있다는 입장이다. 비핵국가인 호주에 핵잠수함을 제공키로 한 오커스 안보협정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일 관계가 치유 불능 상태에 빠진 게 문제지만, 정권 교체가 새로운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윤 당선인이 11일 통화 때 “동북아 안보와 경제 번영 등 향후 힘을 모아야 할 과제가 많다”고 한 데 대해 기시다 총리는 “관계 개선을 위해 협력하고 싶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동아시아에 드리운 안보 위협에 대해 한·일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으면서 미국과 안보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면 위안부·징용 갈등을 해결할 의외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한·일이 당면한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동맹인 미국과 핵 공유 문제를 협의하는 것은 꽉 막힌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푸는 성동격서 식 해법이 될 수도 있다. 5월엔 바이든이 한·일 등 아시아를 순방한다. 한·미·일이 바이든 방문을 계기로 아시아형 핵 공유에 합의한다면, 한·일은 안보 협력을 통해 과거사 갈등을 푸는 새로운 단계로 나갈 수 있다.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꾸는 과감한 역발상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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