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의 나비효과, 일본의 "핵 공유"

박대원 일본통신원 입력 2022. 3. 1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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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유엔 못 믿어, 핵 공유 논의해야"
기시다 총리 "인정 못 해" 선 긋지만, 일본 국민은 안보 불안 커져

(시사저널=박대원 일본통신원)

2월24일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에서는 안보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월25일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하며 "일본의 안전보장이라는 관점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무력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이 인도·태평양 지역,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관여를 강화하고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도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핵 공유' 논란으로 전·현직 총리인 아베(왼쪽)와 기시다가 충돌하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EPA 연합

유신회, 헌법 개정과 핵잠수함 리스 주장

그러나 현직 총리와 외무상의 기자회견보다 훨씬 크게 주목받은 발언이 있다. 바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핵 공유' 발언이다. 아베는 2월27일 후지TV의 《일요보도 THE PRIME》에 출연해 "유엔도 중요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당사자가 된 경우에는 유엔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자기 나라는 자기가 지킨다는 결의와 방위력 강화를 항상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일본은 NPT(핵확산방지조약) 가입국이며 비핵 3원칙을 갖고 있으나, 세계의 안전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그 현실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 공유'를 언급했다.

핵 공유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한 동맹국의 핵무기를 자국 내에 배치해 공동으로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베 전 총리는 해당 방송에서 일본 영토 내의 핵무기 배치를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나토의 핵 공유 전략을 소개한 뒤 "국민의 목숨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는, 다양한 선택지를 시야에 넣으면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해 일본에서 핵 공유 논의가 필요함을 시사했다.

아베의 핵 공유 발언 이후, 제3 야당인 일본유신회 미키 게에 의원은 "지금의 헌법으로 정말 국민의 생명과 영토, 재산을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헌법 개정 논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당 대표인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 시장은 핵 공유론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며 "미국의 핵잠수함을 리스(lease)할 수 있도록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갖지 않으며, 반입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비(非)핵 3원칙'은 '평화헌법' '전수방위'와 함께 일본 안보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원칙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에 핵무기를 반입하는 것을 전제로 한 핵 공유론은 비핵 3원칙에 명백히 위배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1969년 오키나와 시정권 반환에 관한 미·일 간 합의에서 미군의 핵 반입과 관련된 밀약이 있었다는 점에서 비핵 3원칙이 완전히 지켜지지 않은 측면도 있으나,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1967년 비핵 3원칙을 제창한 이래 일본의 역대 내각은 해당 원칙 준수를 천명하고 있다.

아베의 핵 공유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기시다 총리는 2월28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핵 공유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기시다는 3월2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핵 공유론에 대해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했으며, 7일에도 "핵 공유는 비핵 3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기시다 내각은 비핵 3원칙을 국시(國是)로서 견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렇듯 기시다가 핵 공유론을 반복해 부인하는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투하로 피폭을 경험한 지역 중 한 곳인 히로시마현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기시다에게 비핵 3원칙 준수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도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선 긋기에 나선 기시다 총리와 달리 '아베 걸스'(아베와 가까운 우익 성향의 여성 정치인을 뜻하는 말)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조회장은 아베가 《일요보도 THE PRIME》에 출연한 지 일주일 만에 같은 방송에 출연해 아베의 발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아베가 "일본도 핵 공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토의 핵 공유협정을 소개하고 "어떻게 세계의 안전이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카이치는 유사시에 대비해 비핵 3원칙 가운데 '(핵무기를) 반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사시 핵무기를 탑재한 미 함선의 일본 영해 통과를 거부하면 "핵 억지가 기능하지 않는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또한 일본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방위력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크라 사태, 일본 안보 위협으로 이어질 것"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지금 일본에서 핵 공유 발언을 비롯해 방위력 강화를 통한 안보 확보를 주장하는 논의들이 활성화되고 이유는 무엇일까. 오키나와 국제대학의 노조에 후미아키 준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국의 대만 침공설과 연결됨으로써 "헌법 개정이나 미국과의 핵 공유, 방위력 강화와 같은 강경 우파적 논조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오인해 대만 침공을 강행함으로써 일본의 안보에 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미우리신문이 3월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의 무력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이 향후 다른 지역으로 파급돼 중국이 대만에 무력행사를 하는 등 일본의 안전보장상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일본 국민의 81%가 '그렇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단순히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위기의식을 일본 국민 대다수가 공유하는 것이다.

일본 내 안보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기시다 총리는 3월7일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일본 주변에서 군사협력을 긴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주변의 안보 환경 악화를 강조하며 국방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기시다 내각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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