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불안정 속에서 죽음 자체를 살아가는 이들의 코로나19 생존기..숨을 참다

김종목 기자 2022. 3. 18. 20: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재난은 약자에게 유난히 가혹하다.” <숨을 참다>(후마니타스)는 코로나19라는 가혹한 재난 시기를 온전히 감당하는 약자들에 관한 르포다. 11명의 작가들이 방과후강사, 콜센터 상담사, 요양보호사, 공항 지상조업사, 여행 가이드, 식당 노동자, 카페 아르바이트, 원어민 강사, 장애인 노동자, 호텔 노동자, 연극인 등 불안정 노동자들을 만났다. 작가들의 기록을 요약해 전한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닭장’이란 비유를 참아내며 매일 일터로 출근한다. ‘밀접 접촉 방지를 위한 시차 출퇴근제’는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탁상공론 행정이 이어졌다. 점검 나온 구청 공무원이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상담을 하던 직원들을 지적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직원이 말했다. “본인들이 8시간 내내 쓰고 말해 보라죠.” 병가와 연차개념도 없다. 회사가 시키는대로 일하는데도 ‘프리랜서’다. 월급이 아니라 ‘판매 수수료’를 받았다. 비용 절감 대상이다. 회사는 경쟁도 부추겼다.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를 매겨 성과급을 달리했다. 한 콜센터 노동자는 재작년 책상에 엎드려서 죽었다고 한다. “보험 청약 철회가 들어왔는데, 그 사람이 철회를 막으려고 한 시간 동안 계속 말을 한 거야.”

직장갑질 119 소속 노무사가 지난 1월 17일 ‘코로나19 이후 콜센터 노동환경 심층 면접조사’ 발표 기자회견 중 열악한 노동 조건을 담은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콜센터 업체와 원청 기업은 코로나19 때도 경제적 손실을 겪지 않았다. 한 예로, 2020년 3월 집단감염 사태를 겪은 에이스손해보험의 그해 순이익 증가율은 13%다. 액수는 478억원이다. 다소 손해를 보았다는 한 콜센터 외주업체의 순이익마저 170억 원을 웃돈다

속수무책으로 길거리로 나앉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도 정부 대책은 별다른 게 없었다.

‘관광일’만 하는 기사들은 수입이 0원이었다. 하루하루 카드빚으로 버텼다. 중소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통근 버스 운행도 중단됐다. 성진씨의 경우 넉달 만에 빚이 1700만원이 생겼다. 승용차로 각종 음식을 배달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냈다.

정부는 지입차 불법을 수십 년간 용인하고도 코로나19 때는 지입차가 불법이라며 전세버스 기사에게 4차 때까지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았다. 전세버스 기사들의 항의 시위가 빗발치자 5차 재난지원금으로 2021년 6월 70만 원, 2021년 9월 80만 원을 지급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세버스연대지부 지도부가 지난해 2월 18일 국회 앞에서 1·,2·3차 재난지원금에서 배제된 전세버스 노동자들에게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인천공항을 떠났다. 여객기가 이착륙하는 데 필요한 작업을 통칭하는 단어로, 수하물 운송 및 탑재, 급유, 항공기 점검, 기내식, 기내 청소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된 지상조업 일을 하던 은석씨도 그중 하나다. 은석씨를 포함한 노동자들은 “더 이상 국가가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방과후강사들은 한동안 코로나19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학교와 고용 관계를 맺지 않아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개인 사업자도 아니라서 소상공인을 위한 자금 지원이나 대출 지원도 받을 수 없다. 그저 ‘외부인’이었다. 현진씨는 수업이 열리길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뒤져 간 곳이 쿠팡 인천 물류센터였다. “첫날은 숨도 못 쉬고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졌다.” 현진씨는 2021년 7월에야 지원금을 받았다.

여성들은 이중, 삼중고를 겪는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이리 오너라”, “아가씨”, “알바!”라는 소리를 듣는다. 근로계약서를 안 써도 된다고 말하는 관리자부터 필요가 끝나는 순간 “내일부터 안 나와도 돼”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장까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일회용품처럼 취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재활시설을 ‘일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을 보호해 주는 좋은 곳’쯤으로 여긴다. 이 ‘좋은 곳’에서 장애인 노동자 다수가 해고당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노동현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021년 최저임금 기준으로 장애인이 아니면 받을 수 있는 월급이 83만7120원인데, 은호씨는 22만 원을 받고 일했다. 코로나19 이후 불법이 아니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르면,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에게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최저 임금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12월에 발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발달장애인 부모 1174명 중 241명(20.5%)이 “자녀를 지원하기 위해 부모 중 한쪽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한 발달장애인 부모는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내 자식도 코로나에 걸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자식을 돌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모든 폐허가 코로나19 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노동조건은 그 이전부터 악화됐다. 노동자들의 처절한 코로나19 생존 문제엔 재난 상황을 틈 타 더 광포해진 자본주의 문제가 깔려 있다. 한진그룹 산하 칼호텔네트워크는 제주칼호텔과 무관한 다른 사업 확장 때 받은 대출 때문인데도 영업손실과 코로나19 등을 핑계대며 제주칼호텔 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해고에 나섰다. 건물 등 자산은 칼호텔네트워크(한진칼의 자회사)가 소유한다. 호텔 노동자들은 대한항공 자회사인 항공종합서비스 소속이다. 호텔 노동자들에게는 한진칼과 한진그룹, 대한항공이 원청인 셈이다.

“(30년 일한 과장님이) 손님이 욕을 하면 욕이 귀에 들어오잖아요. 그걸 그냥 ‘내 월급이 들어오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래요.” 영훈씨의 말이다. 그렇게 고된 감정노동, 육체노동을 하다 처음으로 슬럼프에 빠진 것이 칼호텔 매각 소식이다. 2021년 9월 2일이다. 매각 사유는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와 경영 악화였다. 해외 여행 대신 제주도를 선택하는 국내 여행객들과 고정 투숙하는 승무원, 제주도민 등의 이용으로 코로19 초기 어려움을 극복했다. 직원들은 연차소진, 무급휴직, 고용유지 지원금을 통해 유급휴직을 하며 견뎠다. 임금은 3년째 동결 중이었다. 호텔 예약률이 코로나19 이전 70~80%까지 돌아오던 차였다.

제주 칼호텔 노동자가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조끼를 입고 제주 강정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열린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 선언식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김종목 기자

호텔 측은 2022년까지 상환해야 할 장기차입금이 2300억 원인데, 2020년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565억 감소했고, 영업 손실 규모가 630%에 이른다고 했지만, 장기차입금 중 1050억 원은 칼호텔네트워크가 그랜드하얏트 인천의 객실을 500개 증축하려고 2012~13년에 대출받은 것이다. 노조는 회사 측에 공인된 회계 사무소에서 작성한 제주칼호텔만의 재무제표를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이전 호텔. 레저 사업 구조 개편 방침을 확정했다. “코로나는 구실이죠.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그냥 때마침 코로나가 터졌던 거죠.” 영훈씨는 이렇게 말했다. “칼호텔 직원 300명 다 제주도민인데, 한진그룹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한진그룹은 제주칼호텔 말고도 대한항공 제주-김포 노선부터 제동목장, 정석비행장, 생수까지 제주도 자원과 지원을 통해 대기업으로 성장했거든요.”

정부 돈도 들어갔다. 2020년 4월, 대형 항공사 두 곳에 수혈된 돈은 2조9000억 원이다. 재벌들은 지역민의 지원과 헌신, 정부의 세금 지원을 모른 척한다.

이 책을 두고 최근 37년 만에 복직된 한진중 마지막 해고 노동자 김진숙은 이렇게 썼다. “재난이 곧 죽음인 사람들과 재난이 오히려 기회인 사람들로 나뉜 사회…책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엎친 데 덮친 오늘의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제도권 바깥의 차별과 불안정 속에서 죽음 같은 삶이 아니라 바로 죽음 자체를 살아가고 있다. 이 처절한 현실 위에 서지 않는 한, 우리를 설득할 미래는 없으며 그 밖의 모든 아름다운 언어들은 허위이고 기만”이라고 했다.

시인 송경동은 들어가는 글에서 “비윤리적 변이를 거듭하며 자연을, 다른 종을, 이민족을, 다른 피부를, 노동자를, 여성을, 약자와 소수자를 대상화하고 차별하며 배제하고 착취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추적도, 선제 방역도, 격리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썼다. 그는 “무한한 이윤만을 쫓는 소수의 오만과 무지, 폭력으로 생겨난 재난의 책임을 왜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지, 이제 그들에게 되물을 때”라고 했다.

송경동은 지난 15일 제주 강정 해군기지에서 출발한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에도 참여했다. 이날 선언식을 끝내고 제주 칼호텔로 가 ‘고용보장 없는 제주칼호텔 매각반대 투쟁 연대 방문’을 진행했다. 순례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여성 노동자들을 만난다.

재난이 소수 취약 계층만의 일은 아니다. 책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특수고용직,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간접고용, 일용직, 초단시간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 고령·청소년 노동자 등 부실한 법 제도 밖에서 차별받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수를 모두 합하면 총 1689만 명에 이른다. 소수 특권 계층을 뺀 모두의 일인 것이다.

직장갑질119와 익천문화재단 길동무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코로나19와 한국 노동 현장 문제를 분석한 학자 4명의 글도 실었다.

서문과 르포 작가는 다음과 같다. ‘서문 - 사라진 책임들에 대하여’(송경동), ‘관계자 외 출입금지 - 방과 후 강사의 일’(박내현)’, ‘마스크가 하지 못한 일 - 콜센터 상담사의 일’·‘달라진 것은 없다’(희정), ‘비행기가 뜨기까지 - 공항 지상조업사의 일’(변정윤), ‘길을 잃다 - 버스 기사와 여행사 직원의 일’(박점규), ‘어느 쓸쓸한 노동에 대하여 - 식당에서의 일’(시야), ‘스물다섯, 아르바이트라는 일’(박혜리), ‘나의 무해함을 증명합니다 - 원어민 강사의 일’(정윤영), ‘우리가 일터에서 만난다는 것 -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의 일’(정창조), ‘코로나라는 참 좋은 구실 - 호텔에서의 일’(연정), ‘숨을 참는 시간 - 연극인의 일’(하명희).

현장 분석 글은 다음과 같다. ‘재난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 - 코로나가 알려 준 우리의 노동 현실’(정슬기), ‘코로나19와 노동법의 과제 - 정의롭고 안전한 일터를 위하여’(이다혜), ‘코로나19 고용정책 국제 비교’(이병희), ‘포스트 코로나, 노동과 복지의 방향 - 제도의 지체와 사회적 실천의 상상력 ’(김종진).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