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강군인데".. 러, 우크라서 고전하는 이유 [박수찬의 軍]
많은 사람들은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인 러시아가 단기간 내 우크라이나를 무력화하고 전쟁을 끝내리라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전장에는 파괴되거나 버려진 러시아군 장비가 널려 있다. 현대전의 기본인 제공권조차 장악하지 못했다. 전차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군을 패배시켰던 소련군의 후예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러시아는 전면전을 치를 상황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러시아는 전쟁 목표가 불분명했다. 영토 확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영향력 확대 저지, 미국과의 대결 구도 변화 등 러시아의 안보 이익 중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비행장 점령에 실패하고, 키이우로 남하하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받아 진격이 저지되면서 전격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프랑스보다 넓은 60만㎢에 달하는 영토에 도시들이 널리 퍼져 있다. 그만큼 타격해야 할 표적도 많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밀유도무기 재고는 이를 모두 타격할 수 없었다. 지르콘 극초음속미사일은 실전투입이 불가능했고, 킨잘 극초음속미사일은 수십발만 생산됐다. 이스칸데르, 칼리브르, kh-101도 각각 수백발만 있었다. 개전 이래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 1000발을 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키이우 외에 하르키우, 체르니히우, 수미, 헤르손 등의 도시가 곳곳에 있는데도 러시아군의 지상작전은 농업지대 위주로 짜여졌다. 많은 병력이 필요한 시가전 대비는 미흡했다.
실제로 10개 중대를 중령급 지휘관이 효과적으로 통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체첸과 시리아에선 러시아군에 우호적인 현지 무장조직의 지원을 받았지만, 우크라이나처럼 적대적 환경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연료와 식량 보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통신도 연결되지 않아 일선 부대에 파견된 연방보안국(FSB) 요원이 중국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 민간 통신장비를 쓰는 정황도 포착됐다. 징집병과 계약직 지원병 간 전투의지나 숙련도 차이도 컸다.
공군 조종사의 숙련도도 낮았다. 공중에서 핵심시설을 정밀타격해야 지상군 작전이 쉬워지는데, 우크라이나군 지휘통제 및 방공망과 전투기는 지금도 작동한다. 공중 정밀타격이 실패한 셈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미사일 매복 공격은 간선도로에 집중됐고, 후방에서 오는 유조차 등 보급대열이 공격받자 진격 속도도 현저히 감소했다. 이는 러시아군이 주요 도시에 묶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무차별 폭격과 산업시설 파괴로 돌아서나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러시아는 새로운 전술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주요 도시를 대대적으로 포격하면서 시가전을 벌이는 것이다. 체첸과 시리아에서 썼던 전술이다.
보병 증원은 재블린 등 우크라이나의 대전차미사일 위협으로 진격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는 극동과 시베리아, 아르메니아 등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민간군사기업 소속 용병과 시리아, 체첸 전투원 등도 모으는 중이다.
전격전에 실패하고, 키이우 포위도 쉽지 않은데다 다른 주요 도시도 함락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용병을 앞세워 인적 손실을 막고, 구식 대포와 다연장로켓으로 끊임없이 포격을 감행해 민간인들을 공포에 빠뜨려 정치적 타협을 강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러시아의 의도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일반적으로 시가전은 방어하는 측에 훨씬 유리하다. 장기간에 걸쳐 물자와 인력을 보충해주고, 적의 포격으로부터 병력과 무기를 숨기기도 쉽다. 포위 공격을 감행해도 함락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시리아 내전 당시 정부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함락까지 5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리아 반군보다 훨씬 정예화된 우크라이나 정부군,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에 분노한 민병대와 시민들을 상대로 러시아군이 시가전에 뛰어든다면, 시리아 내전보다 훨씬 길고 참혹한 시가전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러시아군 지휘관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무기와 식량 등의 군수물자 지원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용병을 동원해도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싸우기 위한 훈련과 장비 지급 등이 필요하다. 그만큼 시간이 더 소요되는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이 추가적인 점령 작전 대신 주요 도시를 초토화하고, 남부 지역에 ‘인민공화국’을 세워 러시아화하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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