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섬에서 보내는 '희망'이라는 메시지 /정일근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2022. 3. 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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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저는 코로나19의 대대적인 확산세를 잠시 피하고자 남해 먼바다, 먼 섬에서 바다의 봄을 낚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행여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방역 자세라고 나무라시면,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저에게 주는 이른 휴가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오랫동안 그리워한 섬까지 찾아왔습니다. 저에게 섬은 뭍에서 멀리 떨어진 도피처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좌표입니다.

뿌리 깊은 후박(厚朴)나무를 가진 이 섬에서 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기 전에, 먼저 침묵하는 법을 배웁니다. 기저질환의 병약한 몸을 가져 코로나19가 문제였지만, 요즘의 뉴스처럼 사람의 말과 말이 세상을 흔드는 일에서도 비켜 서 있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박나무는 저에게 좋은 친구입니다. 후박나무의 ‘후박’은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다’는 ‘후박하다’란 말과 같은 뜻의 한자를 씁니다. 그래서인지 후박나무 앞에 서서 후박, 후박이라고 입 안에 넣고 중얼거려보면 후박한 옛 친구를 만나듯 흔들리는 마음이 잔잔한 수평을 찾고 편안해집니다.

섬에서 저의 하루는 물이 들면 낚시를 던지고 볕이 좋으면 후박나무 곁에서 책을 읽거나 풀어야 할 인생 숙제를 두고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깁니다. 여기서는 세상의 안부보다 이순(耳順)의 생을 여러 해 살아온 저 자신에게 안부를 묻고,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해서 답합니다. 사실 계속되는 ‘병란(病亂)’에 저의 40년 가까운 시(詩) 나침반도 고장이 난 듯하여 용도폐기와 수리해서 사용할까 하는 사이에 고민이 컸습니다.

온몸으로 밀고 왔다고 믿은 시가 어느 순간 줄이 터져 고장 난 악기 ‘비파’ 신세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시의 시대라 불리던 1980년대에 시작된 저의 시력은 녹슨 훈장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슬슬 뒷방으로 밀려나는 시의 자리를 바라보며 안타까웠지만, 시가 서 있을 자리는 해마다 좁아졌습니다. 활기찼던 시인들과의 자리는 언제나 자조(自嘲)적인 결론으로 파장이 났습니다. 시인이 시로 위무 받지 못한다면, 시가 시인을 위무하지 못한다면 그 기능이 다 했다는 참담함이 들 정도였습니다.

섬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지낼 시간이 많아 좋습니다. 낚시를 던질 때, 후박나무 곁에서는 마스크를 벗어 던져버립니다. 가끔 낚시에 물려오는 어종을 보면 이미 바닷속에는 봄이 완연한 것 같습니다. 낚시라고 하긴 하지만 어쩌다 잡혀 올라오는 물고기엔 아무 욕심이 없습니다. 이내 다시 바다로 던져줍니다. 그렇다고 제가 바늘 없는 낚시로 천하를 평정한 ‘강태공’을 ‘코스프레’하는 것은 아닙니다. 강태공은 낚시로 천하를 낚았지만, 시인은 만사에 무심할 뿐입니다.

또 한 가지 멀리서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니 제가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도시에서는 확진자 수가 휴대전화기로 날아들 때마다 겪는 고통은 현실이어서 심각했습니다. 우리나라 방역과 코로나19의 대결은 코로나19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는 그 불안과 고통이 점점 잦아드는 기분입니다. 코로나19로 하루 만에 제가 주소를 두고 사는 도시의 인구 1%가 넘는 사람들이 확진될 때, 사실 두려웠습니다. 오랜 시간 버텨온 ‘멘탈’이 뿌리째 흔들리는 통증이 통점으로 찾아왔습니다. 긴 시간 믿음을 가져온 K-방역에 대한 희망이 무너지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더 허탈한 건 두려움에 비례해 제가 할 일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시를 가르치지만, 마스크를 쓴 선생과 마스크를 쓴 학생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그 거리감이 따라다녔습니다. 저의 감염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누군가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불안했습니다.

최근 확진자가 줄어드는 일을 감히 ‘희망’이라고 말해봅니다. 제가 머무는 섬의 자유, 섬의 사유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그 섬’이길 바랍니다. 이제 돌아가면 시와 사람과 다시, 뜨겁게 마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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