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학습 효과?..가이아나에 눈독 들이는 베네수엘라

정원식 기자 2022. 3. 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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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위키피디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남미 베네수엘라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접경 국가 가이아나에 대해 무력 개입을 시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폴 안젤로 미 외교관계위원회(CFR) 라틴아메리카 연구원은 22일(현지시간)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야심에 불을 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젤로 연구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주권, 인권, 2차대전 후 미래 분쟁을 막기 위한 국제적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라며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국경이 세계의 다음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의 영토 분쟁이 벌어지는 지역은 가이아나를 가로지르는 에세퀴보강 서쪽으로, 스페인어로 ‘과야나 에세키바’로 불리는 지역이다. 면적이 15만9500㎢인 이 지역은 인구 79만명인 가이아나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가이아나가 실효 지배 중이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베네수엘라는 영국령 기아나(가이아나의 독립 이전 명칭)가 점유하던 에세퀴보강 서쪽에 대해 1830년대부터 영유권을 주장했다. 양측의 다툼은 1899년 국제중재재판소가 에세퀴보강 서쪽이 영국령 기아나 땅이라고 판결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가이아나 독립 논의가 본격화한 1962년 1899년 판결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강압적 결정이었다며 무효를 선언했다.

에세퀴보강 서쪽은 금과 다이아몬드 등 지하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2015년 미국 엑손모빌 컨소시엄이 이 지역 앞바다에서 유전을 발견하면서 베네수엘라의 영유권 주장이 더욱 거세졌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해군 함정을 보내 엑손모빌의 시추 작업을 방해하고 지난해에는 베네수엘라군이 가이아나 어선 두 척을 몇주간 억류하고 국경 지역에 전투기를 출동시켰다. 가이아나의 중재 요청을 받은 유엔은 2018년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했으나, 베네수엘라는 이 문제에 대한 ICJ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에세퀴보강 서쪽을 ‘재정복’하겠다며 2015년과 2021년 베네수엘라의 해상 경계를 가이아나의 배타적 경계수역까지로 확대하는 칙령을 내리고 국경 지역에 수차례 군대를 파견했다. 마두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베네수엘라 야당도 에세퀴보 문제에 대해서는 마두로 대통령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7년 이후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와 밀착해왔다. 베네수엘라는 러시아 항공기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구매하고 러시아군과 합동 군사 훈련을 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에는 러시아로부터 스푸트니크 V 백신을 제공받았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지난 1월13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등 나토 동진으로 러시아 아놉가 위협당할 경우 미국의 턱밑인 베네수엘라와 쿠바에 군사 인프라를 배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도 푸틴 대통령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국영방송 연설에서 “세상은 푸틴 대통령이 국민들을 보호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기를 바라는 것인가”라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나토의 안보 위협에 맞서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푸틴 대통령의 용기 있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러시아 옹호는 가이아나 국민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8일 가이아나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가이아나 현지 매체 카이에투르뉴스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기자들에게 “베네수엘라가 내일 새벽 가이아나에 들어와서 자기네 땅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면서 “우리가 오늘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이유는 여기서도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고 그럴 경우 우리가 세계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이아나 병력 규모는 베네수엘라의 100분의 1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군사력 격차보다 훨씬 크다. 가이아나는 위기시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이 서로를 지원하는 미주상호원조조약 가입국도 아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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