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도 꼼짝 못하던 루게릭 환자, 뇌신호로 "아들 사랑해"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2. 3. 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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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카페] 완전 감금 상태 루게릭병 환자, 뇌 삽입 전극 통해 의사 전달
36세의 독일인 루게릭병 환자가 뇌에 삽입한 전극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호흡도 하지 못해 기계 도움을 받는 완전 마비 환자가 의사소통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스위스 비스 센터

온몸이 마비돼 눈동자도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가 뇌에 삽입한 전극의 도움을 받아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몸이 마비되면 마음도 망가질 것이란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스위스 비스 생물신경공학 센터의 요나스 짐머만 박사와 독일 튀빙겐대 닐스 비르바우머 교수 연구진은 “온몸이 마비된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 환자가 생각을 전기신호로 전달해 가족과 의사소통하는 데 성공했다”고 22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밝혔다.

연구진은 36세의 말기 ALS 남성 환자가 뇌 표면에 붙인 전극과 컴퓨터의 도움으로 가족들에게 굴라시 수프, 완두콩 수프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네 살 아들에게 “디즈니 영화를 같이 보겠느냐”고 하며 “내 멋진 아들을 사랑한다”고도 말했다.

루게릭병 환자의 뇌에 삽입한 전극. 64개의 미세 탐침이 운동중추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감지한다./스위스 비스 센터

◇완전 감금 상태 환자 첫 성공

ALS는 온몸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는 희귀 질환으로 루게릭병이라고도 불린다. 보통 진단 후 5년 내 사망한다. 2018년 세상을 떠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은 병으로 잘 알려졌다. 처음엔 눈동자가 스크린에서 어떤 글자를 보는지 카메라로 추적해 외부와 의사소통할 수 있지만 병이 악화되면 이마저도 할 수 없다. 호흡도 제 힘으로 할 수 없다.

연구진은 영혼이 완전히 육체에 감금된 환자가 가족과 의사소통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앞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연구진이 2016년 여성 ALS 환자가 뇌에 이식한 전극을 통해 문장을 전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환자는 눈과 입 근육을 일부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

이번 환자는 2018년부터 독일 튀빙겐대 연구진과 함께 생각을 문장으로 바꾸는 실험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눈동자를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 앞서 2017년 튀빙겐대 연구진은 완전 마비 ALS 환자 세 명의 뇌신호를 감지해 질문에 대해 ‘예, 아니오’ 답을 얻었다.

연구진은 환자와 가족의 동의를 받고 남성의 뇌 운동중추에 가로세로 3.2㎜인 전극을 삽입했다. 전극에는 미세 바늘이 64개 나있어 뇌 표면에 흐르는 전기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환자에게 팔과 다리, 머리나 눈을 움직여 보라고 했다.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뇌에서는 전기신호가 발생했다.

3개월의 실험 끝에 환자는 컴퓨터 스크린에 나오는 글자를 선택할지 여부를 뇌신호를 통해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게 됐다. 1년 후 환자는 1분에 한 자씩 선택해 자신을 보살피는 사람에게 자세를 바꿔달라는 등 십여 문장을 말할 수 있었다. 짐머만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온몸이 완전히 마비된 환자가 뇌에서 의사소통에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오랜 의문을 해결했다”고 밝혔다. 몸이 마비돼도 정신은 유지된다고 입증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루게릭병 환자의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분석하고 있다./스위스 비스 센터

◇전극 대신 머리 부착형 장치 개발 중

환자는 최종적으로 눈을 움직이려고 시도할 때 나오는 전기신호로 질문에 응답을 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은 성공률이 낮다. 135일의 실험 동안 107일만 80% 정확도로 적절한 전기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그 중 44일만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다른 날에는 환자가 잠들었거나 감정상태가 좋지 않았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아니면 뇌신호가 너무 약하거나 변화가 심해 해독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전극 주변에 흉터가 생긴 것도 신호를 약화시켰을 수 있다고 짐머만 박사는 밝혔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번 실험을 지원한 독일 ALS 보이스 재단은 환자에게 전극을 삽입하고 훈련을 하는 2년 동안 50만 달러가 들어갔다고 추정했다. 짐머만 박사는 전극 대신 머리에 자석으로 붙이는 장치로 뇌신호를 감지하려고 연구 중이다. 이러면 비용이 많이 들고 감염 위험도 있는 전극 삽입 수술이 필요 없다. 연구진은 단어 선택 속도를 높이거나 환자가 자주 쓰는 단어와 문장 목록을 미리 만들면 더 쉽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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