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품종 몰아내고 광복 찾은 대한 딸기 만세!

조성호 기자 2022. 3.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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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에서 딸기 농사를 하는 박수진(오른쪽)씨 부부가 지난 23일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딸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딸기는 충남 농업기술원이 2017년 개발한 ‘두리향’ 품종으로 시중에서 주로 유통되는 ‘설향’보다 더 달고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신현종 기자

충남 부여에서 9년째 양송이 버섯 농사를 짓는 김명신씨 농장. 660㎡(200평) 규모의 어둑한 창고 건물에 들어서자 네개 층으로 나뉜 선반에서 하얀색 버섯이 조그맣게 피어나고 있었다. 지난 2월 접종(씨 뿌림)한 버섯 균이 한 달 새 10원짜리 동전 크기로 자랐다고 했다. 김씨가 키우는 품종은 농촌진흥청이 2017년 만든 ‘도담’이라는 품종. 다른 양송이 품종보다 색깔은 더 하얗고 모양은 완전한 원형에 가까워 상품성이 높다. 김씨는 “외국산 종균(버섯의 씨앗)을 쓰려면 로열티까지 줘야 하는데 국산 종균은 20%가량 저렴하면서도 생산 품질은 더 좋아 팔 때도 20% 정도 비싸게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올해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 가입 20년을 맞았다. UPOV는 음반이나 소프트웨어 특허처럼 식품 씨앗도 지적재산권으로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국제기구다. UPOV 가입 이후 외국산 품종을 들여올 때 줘야 하는 로열티를 아끼려 시작한 국산 종자 개발이 농가 소득 증진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김명신씨가 23일 충남 부여군 자신의 버섯농장에서 양송이 버섯을 살펴보고 있다. 김씨가 키우는 버섯은 국내 품종인 ‘도담’으로 다른 품종보다 색깔이 희고 모양이 완전한 원형에 가깝다. /신현종 기자

◇딸기 종자,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국산화율 딸기 96%, 버섯 60%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채소·화훼·과수·특용 등 주요 4개 분야 13개 작물에서 나가는 로열티는 2012년 175억7000만원에서 작년 95억8300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작물을 재배할 때 국산 품종을 얼마나 쓰는지를 나타내는 국산화율은 10년 전 17.9%에서 작년 29.4%까지 올랐다. 2012년 44.6%이던 버섯 국산화율은 작년 60%가 됐다. 특히 양송이버섯은 국산 품종 도담 덕분에 국산화율이 72.3%까지 올랐다. 개발비 4억원을 들여 만든 도담은 농촌진흥청이 만든 ‘새아’ ‘새한’ 등 품종을 재개량한 것이다. 도담 품종을 개발한 오연이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는 “새한을 키워본 버섯재배사(농민)들이 버섯 모양이 타원형이라는 문제를 제기해 새로 개발한 게 도담”이라며 “도담은 단단함도 개선돼 하루 이틀 더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버섯보다 높은 국산화율을 자랑하는 작물은 딸기다. 2005년 개발된 ‘설향’ 품종은 당시 80%가량을 차지하던 일본 품종을 몰아냈다. 설향의 빠른 보급으로 딸기 국산화율은 작년 96.3%까지 올랐다. 딸기는 특히 한국산 품종이 인기를 끌면서 2012년 2244만달러(약 273억원)였던 수출이 작년 6348만달러(773억원)로 늘었다. 한국 딸기가 고급 과일로 인식된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선 코로나 이후 물류망이 막히자 전세기까지 띄워 수입하기도 했다. 국산 딸기 종자 ‘싼타’는 1500만원 로열티를 받고 중국 수출도 이뤄졌다.

그래픽=송윤혜

◇ 13개 작물, 외국에 지급 로열티… 9년새 80억원 가까이 아껴

사실상 종자 독립을 이룬 딸기는 새로운 개량 품종도 속속 나오고 있다. 충남 농업기술원 딸기연구소가 내놓은 킹스베리, 써니베리, 두리향 등이 대표다. 충남 논산에서 9년째 딸기 농사를 짓는 박수진씨는 올해 2000㎡(약 6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 두리향 딸기를 심었다. 두리향 품종은 설향보다 당도가 1~2브릭스(brix·1브릭스=100g에 당 1g 포함) 높고 향도 더 강하다. 박씨는 “충남 연구소에서 새로 나온 품종이라 해서 시범 삼아 심은 두리향 덕에 올해 딸기는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했다.

국산 신품종 개발에는 소비자 니즈에 맞춰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 위해 경쟁을 벌여온 유통업계 역할도 컸다. 두리향 딸기도 애초 판로를 찾지 못하던 것을 롯데마트가 발굴해 히트시켰다. 이마트가 2016년 시장에 소개한 라온파프리카는 첫해 매출 3억원을 올리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전체 파프리카 매출의 15%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일반 파프리카보다 작지만 아삭한 식감으로 2020년엔 25억원치 팔렸다. 일반 양배추보다 달콤한 맛을 가진 ‘달콤이 양배추’ 품종은 2018년 이마트에서 33만통 팔린 이후 작년 40만통까지 판매량을 늘렸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새로운 맛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마트 입장에서 새로운 국산품종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며 “국산 품종은 우리 땅이나 기후에 잘 맞기 때문에 우리 소비자 입맛에도 더 잘 맞는 편”이라고 했다.

☞UPOV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The International Union for the Protection of New Varieties of Plants). 식물 신품종 육성자의 권리를 국제적으로 보호해주기 위해 1968년 설립된 국제 기구. 가입국이 새로운 식물 품종을 개발하면 상표권처럼 식물의 권리를 보호해준다. 우리나라는 2002년 5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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