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윤석열 직접 충돌, 선을 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직접 충돌했다. 회동 조율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한국은행 총재 지명 문제로 옮아 붙었다가 이날은 법무부의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를 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충돌했다. 양측 갈등이 전방위로 번지는 가운데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서로 비판 발언을 내놓으면서 신구(新舊) 권력 갈등이 선을 넘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은 대선 후 15일이 넘도록 만나지 않고 있다. 여야 원로들은 “두 사람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일단 만나서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문 대통령이 전날 이창용 국제통화기금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차기 한은 총재로 지명한 것에 대해 “차기 정부와 다년간 일해야 할 사람을 마지막에 인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기자들에게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라며 이렇게 말했다. 윤 당선인은 정권 이양을 부동산 매매에 비유하며 “당선인은 매매 대금을 다 지불하고 명도(明渡)만 남아 있는 상태”라며 “법률적 권한이 매도인(문 대통령)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곧 들어와 살 사람 입장을 존중해 집을 고치는 건 잘 안 하지 않느냐”고 했다. 임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이 임기(4년) 대부분을 차기 대통령과 보낼 한은 총재를 지명한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이었다.
다음은 문 대통령 차례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 회의에서 “나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새 대통령이 되실 분이다. 만나서 인사하고 덕담하고, 혹시 참고가 될 만한 말을 주고받는 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라고 말했다고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박 수석은 “문 대통령은 ‘다른 이들 말을 듣지 마시고 당선인께서 직접 판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윤 당선인 측 김은혜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의 판단에 마치 문제가 있고, 참모들이 당선인의 판단을 흐리는 것처럼 언급하신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반박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 인수인계가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더구나 코로나와 경제 위기 대응이 긴요한 때에 두 분의 만남을 ‘덕담 나누는 자리’ 정도로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직접 입장을 밝히며 충돌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새 정부 출범 후 펼쳐질 정치 지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신구 권력이 대결로 치닫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번 대선에서 윤 당선인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간 득표율 격차는 0.73%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신구 권력 간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양측이 사정(司正) 기관 인사와 제도 개편 문제를 두고 대립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양측은 이날 윤 당선인이 공약한 법무부 장관의 검찰 수사권 폐지에 박범계 법무장관이 전날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을 두고도 충돌했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주요 사건 수사에 대한 지휘에서 배제된 경험이 있다. 그런 윤 당선인은 대선 때 정치인 출신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정치권력의 수사 방해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폐지를 공약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인 박 장관은 검찰권 견제를 위해 검찰총장에 대한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검찰의 수사에 대한 선출 권력의 통제와 검찰의 독립성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느냐를 두고 양측이 대립하는 것”이라며 “이런 대립은 새 정부 출범 후 검찰 사정에 대한 양 진영의 시각차가 반영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양측은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 문제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청와대 측은 법적 인사권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며 현재 공석인 감사위원 두 자리 중 한 자리는 자기들이 인선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윤 당선인 측은 “새 감사위원은 임기(4년)를 대부분 윤석열 정권에서 보낸다”며 윤 당선인 뜻이 존중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은 대선 후 열흘 이내에 만났지만,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15일째 만나지 못했다.
여야의 정치 원로들은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며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국민을 생각하고 일단 만나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본지 통화에서 “대통령은 국민에게 평가받는 존재”라며 “아랫사람을 통해 조율하려 하지 말고 먼저 만남에 응하는 사람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문 전 의장은 인사 갈등에 대해선 “대통령과 당선인은 갑을(甲乙) 관계가 아니다”라며 “역지사지(易地思之) 심정으로 만나면 사전 협상이 없어도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과 당선인이 대립하는 건 국가적으로 이로울 게 없다”며 “권력을 가진 쪽에서 더 포용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출신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윤 당선인이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발표했으면 현 여권도 이를 존중해줘야 한다”며 “문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을 돕는 게 나라를 위한 것이란 생각을 갖고 인사에 관한 당선인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당선인이 대립보단 협치의 자세로 나서되 문 대통령도 당선인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두 분이 만나서 풀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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