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무엇을 위한 성실성인가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2. 3.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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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높은 성취와 관련을 보인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이 그 자체로 삶의 목표가 될 때는 문제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얼마전 연구실 사람들과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말라며 자신을 다그치고, 일 하지 않는 상태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고 휴식 시간에 죄책감을 느끼며, 멈추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우리 삶이 과하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실제 일에서 오는 피로감 못지 않게 다양한 강박과 부담, 압박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근면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여기며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친다. 물론 이런 특성들이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다년간의 연구에 따르면 다섯가지 주요 성격특성 중 책임감, 의무감, 근면 성실함과 깊은 관련을 보이는 성실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높은 성취와 관련을 보인다. 문제는 열심히 사는 것이 그 자체로 삶의 목표가 될 때다. 

일반적으로 목표는 우리 삶에 있어 장기적 또는 단기적으로 이로운 바람직한 상태로 정의된다. 오늘 맛있는 점심을 먹기 같은 작은 것부터 승진하기 같이 좀 더 앞을 내다보는 종류의 것 등 서로 다른 차원의 목표가 존재한다. 여기서 목표란 개인에게 '이롭고 바람직한 상태'라는 점에 주목해보자. 사람마다 최종적인 삶의 목적(목표가 이루고 싶은 특정 결과라면 목적은 그 결과를 이뤄야 하는 이유에 가깝다)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뤄야 할 바람직한 상태 또한 서로 다른 것이 자연스럽다. 예컨대 즐겁고 신나는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취미생활을 본업으로 여기고 나머지는 거들뿐인 일들로 정의할 수 있다. 반대로 무엇보다 사회적 명성을 얻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개인적인 즐거움이나 관계는 다소 희생하더라도 높은 성취를 얻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좋은 인간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일 수 있다. 

이렇게 사람마다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원천이 각기 다른데, 이와 상관 없이 그저 뭐든지 다 잘 열심히 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과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 미스매치를 낳는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하다면, 즉 자기 자신에게 이롭고 바람직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있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목표들을 무작정 따라가는 데에는 별다른 이득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들과 내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면 되려 애쓸수록 내가 원하는 삶과 괴리가 먼 삶만 살게 된다. 

물론 모든 일을 다 열심히 잘 해내면 좋겠지만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눈 앞의 일들을 바쁘게 처리하면서도 혹시 목적과 수단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어디까지나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기 위한 수단일 뿐인 열심히 살기가 어느 순간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하는 이유다. 

특히 눈 앞에 힘든 도전이 있을 때는 마치 그 목표가 삶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본말전도가 일어난다. 예컨대 졸업이나 취업 등도 결국에는 어떠한 삶을 살고 싶다는 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 가지 수단일 뿐이다.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벨상을 수상한 심리학자로 유명한 대니얼 카네만은 “그 어떤 일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 일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는 말이지요”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선생님 또한 “그거 별로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을 달고 사신다. 어떤 사람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겨도, 중요한 발표를 망쳐도 “그래서 뭐? 이게 정말 그렇게 중요해?”하고 자문해보면 그만큼 까지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의 정서 예측실력은 엉망이다. 중요한 면접을 망쳤을 때, 적어도 몇 달은 죽고 싶을 거라고 예측하는 것과 다르게 1~2주 정도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충격을 털고 일어선다. 인간은 무서울 정도로 잘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달성하지 못하면 죽고 말 거라고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들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사실 목표 달성에 실패해서 불행해지는 경우 또한 실패에서 오는 객관적인 결과보다 그 목표를 향한 우리의 집착과 강박이 더 큰 문제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컨대 행복하면 좋고 삶의 의미를 찾으면 좋지만,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고 이상적인 상태를 정의하는 순간 그 이상적인 상태와 멀어지기 쉽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반드시 내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형태를 머리 속에서 단단히 짜맞추는 순간, '그렇지 않은 상태'를 필연적으로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판단하는 순간 불행해지는 동물이다. 각종 부담감, 불안, 걱정 또한 실제 내 삶의 상태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삶과 목표에 대한 경직된 사고방식 때문에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불행을 위해 깨야 할 것은 나의 게으름이 아니라 어느덧 좁고 단단해진 시야일지도 모르겠다 .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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