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자라·H&M 사라질까..EU, 패스트패션 손본다
미판매 제품 폐기량 정보 공개도 요구할 듯
환경 부문 대책에 있어서 EU가 대개 선도적 영향을 해왔다는 측면에서 다른 국가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유럽에 의류를 판매해왔던 자라(Zara)·H&M·갭(GAP)·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제도·유통 일괄형) 업체들 또한 EU 규제의 형태나 정확한 적용 시점에 맞춰 경영 전략을 수정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유럽환경청(EEA)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EU의 의류·섬유 부문 매출액은 1620억유로(한화 218조9000억원)였습니다.
◆재활용하라, 튼튼하게 만들어라, 투명하게 공개하라
31일 BBC,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가 30일(현지시간) 유럽 내에서 판매되는 의류가 더 오래 사용되고 수리하기 쉽도록 유도하는 규제 도입을 예고했다고 합니다.
EU의 의류 산업 규제는 대략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유럽 내 판매 제품에 대한 직접 규제입니다. 2030년까지 재활용 섬유의 일정 비율 이상 사용을 의무화하고 내구성에 대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을 요구하는 규정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프랜스 팀머만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우리가 입는 옷은 세 차례 세탁하더라도 망가지지 않아야 하고 재활용도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버지니유스 싱크에비셔스 EU 환경위원도 “위원회는 패스트패션이 유행에서 뒤떨어지길 원한다”며 “2030년까지 EU에 출시되는 섬유 제품은 높은 비중의 재활용 섬유로 만들어 수명이 길고 재활용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런 제품 규제가 추구하는 방향을 유럽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싱크에비셔스 위원은 “소비자들은 옷이 지금처럼 자주 버려지거나 교체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서 패스트패션보다 더 매력적인 대안을 실제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다른 규제는 패션업체에게 환경과 관련한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방향입니다.
EU가 신호탄을 쏜 패스트패션 규제에 패션업계가 억울해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패스트패션이 환경·기후변화에 미치는 악영향은 그간 꾸준히 지적됐기 때문입니다.
옷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의식주 중 하나인 소비재입니다. 패스트패션은 필수 소비재인 옷의 소비주기를 짧게 만드는 방법으로 거대한 산업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전략은 결국 더 많은 옷의 생산과 폐기를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9년 유엔(UN)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은 2000년에서 2014년 사이 2배나 늘었다고 합니다.
환경·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유엔환경계획기구(UNEP)는 세계 탄소 배출의 약 8~10%가 패션 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봅니다. 유럽환경청(EEA)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유럽의 섬유 소비는 환경·기후변화 영향이 네 번째로 높은 소비 부문이라고 합니다. 물과 토지 이용 측면에서는 세 번째, 원자재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 측면에서는 다섯 번째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패션업계가 이런 환경·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닙니다.
‘폐페트병으로 옷을 만들었습니다.’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이런 내용을 담은 홍보 문구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탄소 배출이 불가피한 섬유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이용되고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폴리에스터 섬유로 옷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런 움직임은 실제 패스트패션 제품뿐 아니라 아웃도어, 명품 등에서도 널리 확산하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필(必)환경 ESG 시대, 패션산업 친환경 트렌드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폴리에스터 섬유 생산 중 재활용 폴리에스터 섬유 비중이 2030년 20%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다만 이런 업계 움직임에 대해 탄소 중립이라는 방향성을 기준으로 볼 때 ‘반쪽 짜리 대책’이라는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옷으로 쓰인 섬유가 다시 섬유로 재활용되지 않는다면 탄소 중립을 위한 완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재활용 섬유를 옷으로 만드는 만큼 원래 석유로 만드는 섬유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 “다만 결국은 그렇게 만들어진 옷에 쓰인 섬유를 재활용하지 않는다면 자원의 일시적 재활용에 그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폐페트병은 다시 페트병으로, 버려진 옷은 다시 옷으로 재활용하는 게 자원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이라는 설명입니다.
홍 소장은 이런 평가와 함께, 의류 부문 탄소중립을 위한 책임이 단순히 패션업계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EU가 선도적으로 나선 것처럼, 패션산업 내 ‘생산’ 부문 규제가 필요한 동시에 ‘소비’ 방식 변화도 동반돼야 한다는 겁니다.
“생산을 규제한다고 해서, 새로운 패션에 대한 수요가 계속 일어나는 걸 막는 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선 의류 공유의 활성화를 통해 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새 옷을 개인이 매번 사는 게 아니라 본인 필요나 욕구에 따라 빌려 입을 수 있는 인프라가 시장을 통해 갖춰진다면 의류에 대한 소비 주기가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제안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현실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제각각일 겁니다.
다만 패션산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업계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옷을 소비하는 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해보입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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