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나이 없애자" 공감대 크지만.. "고유 문화" 반론 거세 [뉴스 인사이드]

이정한 2022. 4.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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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나이 셈법 통일' 공약 실현될까
계산 방법에 따라 '두 살 차이'
세금 등 법적으론 '만 나이' 따지지만
일상선 '세는 나이'.. '연 나이'도 쓰여
성인 71% "만 나이만 따져야"
백신 접종 등 "헷갈린다" 민원 속출
신속한 정책 시행에 걸림돌로 작용
일각선 "굳이 규제할 일인가"
"계량 단위와 달리 사회적 혼란 적어
관습 바꾸려는 행정 편의주의" 지적
‘만 나이’를 법적·사회적 기준으로 통일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전 국민의 나이가 바뀔지 관심을 모은다.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최대 두 살까지 어려질 수 있다. 제각각인 나이 기준을 만 나이로 표준화해 사회적 혼란을 줄이겠다는 취지지만, 관습의 영역을 정부가 앞장서 바꾸면 되레 혼란만 커진다는 반론도 있다.
 
연말·연초가 되면 어김없이 “한국식 나이를 폐지하자”는 말이 나온다. 으레 올라오는 안건으로 치부하기에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윤 당선인도 59초 ‘쇼츠(shorts)’ 공약으로 만 나이 통일을 내놨다. 그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있다. 나이에 따라 백신 접종 대상과 진료·치료 방법, 지원 등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내가 대상자인지 헷갈린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일례로 지난달 부터 만 5∼11세 소아의 백신 접종이 시행됐는데, 같은 연도에 태어났더라도 맞는 백신이 다르다. 생일이 지나지 않은 2010년생은 만 11세로 기존 백신 용량(30㎍)의 3분의 1만 투여하는 소아용 백신 접종 대상자가 된다. 하지만 생일이 지난 2010년생은 성인과 동일한 백신을 맞는다.

신속한 정책 시행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정책 수립자와 대상자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다. 앞선 사례에서 방역 당국은 며칠 차이로 백신 종류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지난 3월 30일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 병원에 놓인 만 5∼11세 소아·아동 코로나19 예방접종 관련 안내문. 31일부터 만 5∼11세 소아·아동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연합뉴스
◆군입대 연 나이, 복지는 만 나이, 일상은 세는 나이

이는 우리나라가 세 가지 나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태어나면 ‘한 살’이 돼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는 ‘세는 나이’, 태어난 순간 ‘0살’로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한 살을 더하는 ‘만 나이’, ‘0살’로 출발해 해가 바뀌면 한 살씩 올라가는 ‘연 나이’. 예컨대 2000년 4월4일에 태어났다면 세는 나이로는 23살, 연 나이는 22살, 만 나이는 21살이 된다.

세금이나 복지 등의 법적 기준은 만 나이지만, 일상에서는 세는 나이가 가장 많이 쓰인다. 연 나이는 그 중간인 셈인데 술·담배 구매(청소년보호법)와 입영 영장 발부(병역법) 기준 등 주로 법 집행 편의를 위해 쓴다. 일상의 나이와 법적 나이가 달라서 행정상 오류나 혼란이 생긴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에 공문서에 만 나이 기재를 의무화하고 사회적으로도 만 나이로 계산·표시할 것을 권장하는 만 나이 통일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에도 더불어민주당 이장섭 의원 등 13명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에 행안위 수석전문위원실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우선될 필요가 있다”는 검토의견을 냈다.

윤 당선인이 만 나이 통일을 약속하면서 번번이 무산됐던 만 나이 표준화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공감대가 넓고 제도 변경에 따른 사회경제적 효율성이 높지만, 관습을 바꾸는 데 정부가 앞장서면 혼란만 커진다는 지적도 있다.

◆공감대 크고 기준 통일하면 효율성 높아

한국리서치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24∼27일 시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10명 중 7명(71%)이 한국식 나이를 폐지하고 만 나이를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다. 그 이유로는 ‘법률 적용 및 행정 처리에서 오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가 가장 많았고 ‘국제기준에 맞추기 위해서’가 뒤를 이었다. 김준모 건국대 교수(행정학)는 “복지 서비스를 받거나 가입할 때의 혼란을 예방하는 등 제도적 실익이 분명하고 공감대도 넓다”며 “도량형 통일처럼 전 세계적으로도 국제표준을 세우는 만큼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식 나이 탓에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서 소통하는 데 혼선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경기 평택시는 “세는 나이와 만 나이의 차이로 민원이 빈번하다”며 국회와 중앙부처에 연령 계산 방식을 만 나이로 일원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평택시는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다. 지난달 기준 평택시의 등록 외국인 수는 2만4136명이다. 또 보안상 밝히지 않는 미군과 그 부양가족 등이 3만7000∼5만8000명(평택시 지역발전 전략연구) 정도로 추산된다. 평택시 관계자는 “세 가지 나이 탓에 일선 행정에서 받는 민원이 상당하다”며 “나이 기준을 통일하는 게 필요하다는 데 다들 공감했다”고 말했다.
◆고유의 문화, 관습 바꾸면 혼란 더 커져

하지만 고유의 문화를 바꾸는 것에 대한 반발도 만만찮다. 장유승 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는 “정서적 측면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양력 사용을 강요받으면서 반발이 컸고 그게 오늘날에도 음력이 쓰이는 이유 중 하나”라며 “만 나이도 당시에 들어왔지만 일상에 스며들지 못했는데 이를 구태여 (이제 와서)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본래 동아시아의 나이 셈법이던 세는 나이를 중국과 일본, 북한 등이 버렸는데 한국만 고집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근대화 과정에서 각국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지, 그게 우리도 바꿔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반박했다.

공약이 실제로 시행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행정학)는 “거대한 국정 과제들이 산적했는데 새 정부가 나이 기준을 어젠다로 걸고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여론이 형성되면 국회가 반영할 과제지 정부가 앞장서 고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김 교수는 “관습이랑 상관없이 하겠다는 게 행정 편의주의”라며 “계량 단위와는 달리 지금의 나이 기준에서 오는 사회적 혼란이나 비효율이 크진 않다”고 덧붙였다.

사진=뉴스1
◆ ‘세는 나이’ 쓰는 나라 韓이 유일… ‘연령 서열’ 문화 영향

전 세계에서 ‘세는 나이’를 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주로 쓰이던 나이 셈법이 한국에만 남게 된 데는 나이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한국 문화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나이 서열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만 나이 통일’이 이뤄져도 만 나이가 실생활에 사용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세는 나이의 기원은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 한자 문화권에는 ‘0’의 개념이 없어 ‘1’부터 시작했다는 설과 제왕이 즉위하면 그해부터 계산하는 기년법에서 비롯됐다는 의견도 있다. 기원이 어디든 중국은 1960∼1970년대 문화대혁명 이후 세는 나이를 쓰지 않는다. 일본은 1902년 만 나이를 공식적으로 적용하고 1950년에는 법으로 세는 나이를 못 쓰게 했다. 북한도 1980년대 이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세는 나이의 뿌리가 한국이 아님에도 ‘한국식 나이’, ‘코리안 에이지’라고 불리는 배경이다.

한국도 1962년 만 나이를 공식 나이로 발표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세는 나이가 ‘공식’ 나이다. 여기에는 나이 서열 문화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첫 만남에 대뜸 나이부터 묻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한국에 기수제 문화를 정착시킨 일본도 상하 관계가 명확하지만 나이에 따라 서열을 나누지는 않는다. 중국도 나이를 따져 관계를 정하지 않는다.

언어학자 신지영 고려대 교수(국문학)는 저서 ‘언어의 높이뛰기’에서 나이가 권력인 한국 사회에서 세는 나이는 버릴 수 없는 나이 셈법이라고 분석했다. 나이가 권력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나이를 궁금해하고, 나이에 민감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만 나이로 계산하면 같은 해에 태어났더라도 생일을 전후로 어떤 날은 나이가 같고 어떤 날은 나이가 달라진다. 이른바 ‘족보’가 꼬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세는 나이는 다르다. 같은 날 모든 사람이 함께 나이를 먹기 때문에 헷갈릴 일이 없다. 신 교수는 “세는 나이는 상대와의 나이 차이를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만든다”며 “나이 정보가 중요한 (한국에서) 세는 나이를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나이 셈법을 통일하고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를 쓰도록 권유하더라도 세는 나이가 없어지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 나이가 자리 잡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나이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문화가 과거보다 옅어졌기 때문이다. 김준모 건국대 교수(행정학)는 “일상에서 세는 나이를 쓰는 걸 한번에 바꾸기는 어렵다”면서도 “앞세대가 지나가고 뒷세대가 오는 것처럼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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