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 운명의 尹 정부, 그게 신의 한수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2022. 4. 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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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있는 글을 자주 쓰는 한 칼럼니스트가 노무현 정부 4년차이던 2006년에 이런 글을 썼다. "노 대통령이 잘한 일들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것이 많은 특징이 있다. 무엇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안한 것이 업적이 됐다는 얘기다." 칼럼니스트는 '부작위'의 사례로 검찰을 정치에 덜 활용한 것, 정치자금을 덜 받은 것, 지역편중 인사를 심하게 하지 않은 것 등을 꼽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칼럼을 다시 보니 지지세력의 요구를 무조건 듣지는 않았던 것이 가장 탁월한 노무현의 부작위가 아니었던가 한다. 그 덕분에 한·미 FTA 협상이 시작되고 이라크 파병으로 한미관계가 돈독해 졌으니 말이다. 지금 그것은 노무현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노무현 2기'를 자처한 문재인 5년을 돌이켜보자면 노무현과 문재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문재인에게는 '부작위의 여백'이 안 보인다. 문재인은 모든 영역에서 '작위'의 흔적을 남겼다. 검찰을 정치에 활용하려다 말을 듣지않자 '검수완박'을 하려 했고(지금도 진행중이다) 시장과 싸우다 '23전 23패'의 전적을 남기고 퇴장한 부동산담당 장관이 있었다. 탈원전과 '소주성'은 더 말하면 입 아프다.

 '징용 판결'이란 작위에 얽매어 일본과 5년 내내 싸웠고 '종전선언'을 하고 싶어 북한과 미국에 애걸복걸했다. 그 작위에 소득은 없었다. 북의 모라토리엄 파괴에도 외교부장관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K방역' 어쩌고하며 온갖 작위를 다 연출하더니 '신규감염 세계1등'을 찍고나서야 "병과 더불어 살자"며 부작위도 못되는, '무작위스런' 소리를 한다. 그간 선무당같았던 작위로 받은 고통, 날린 돈과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우리편 챙기기'에 4년은 부족했던지 정권 종료 한달을 앞두고도 '알박기 인사' 작위질로 인수위와 충돌하고 있다. 3·1절, 광복절마다 서푼짜리 역사관을 욱여넣은 작위적 기념사로 절반의 국민을 기분 상하게 했다. 급기야 전대미문의 '영부인 사치' 작위로 말년이 아주 치사해지고 있다. '옷좀 해입은거 가지고 치사하게'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를 읽고 들어야하는 국민 노릇은 비참하다. 전임 대통령의 7시간을 분단위로 공개하라고 눈알을 부라렸던 사람들이 영부인 옷값 내역은 국가안보에 해당해서 비밀에 부친다고 한다. 하는 짓도, 해명도 참 작위스럽다.

 좌우 할 것없이 다음 정부가 약체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172석의 전투적 야당 때문이다. 우는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걱정하고, 좌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하고 전의를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부작위 정치'를 해야할 운명이다. 최소 다음 총선까지는 그래야 한다. 그건 무척 불편한 시간이 되겠지만 그러나 결과까지 불편하란 법은 없다. 문재인처럼 작위하느니 부작위하는게 정권과 국가를 위해 몇백배 바람직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집무실에서 걸프협력회의 주한대사들을 접견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2022.4.1 [사진 = 공동취재단]
 당장 집무실 이전 문제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 청와대를 상대로 아쉬운 소리도 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았으면 한다. 통의동 생활 좀 하다가 취임후 자력으로 옮기는게 낫다.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디에 있으나 국정과 민심에 연결돼 있으면 된다. 그게 대통령의 '유비쿼터스'이다.

 입법이 필요한 일은 미루는게 낫다. 안될걸 뻔히 알면서 싸워봐야 '나쁜 야당탓'은 할수 있을지 몰라도 민심이 피곤해 한다. 국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는 작위보다 부작위가 우월하다. 그 묘리를 깨우쳐야 한다. 마음이 흔들릴때마다 문재인 정권을 떠올리고 그 반대로 하면 된다.

 인사를 할때 실수로 무자격자를 지명할수는 있다. 여론 검증과정에서 기준점 이하로 내려가면 민심과 싸우지 말고 사람을 잘라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민심과 싸웠다. 도덕적 하자가 없는데 야당이 이념적으로 반대하는 인물은 써야 한다. 그것조차 안하면 부작위 정권이 아니라 '무위 정권'이 되므로.

 대통령이 메시지를 낼 때는 크고 당당하면 된다. 뭘 들쑤시며 국민을 편가름하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늘, 일부러 그랬다. 국민들이 3·1절, 광복절 뉴스를 들을때 편안하게 들을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대통령이 입법을 동반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다. 실제 크고 중요한 일은 대부분 국회와 상관없다. 한미관계와 한일관계를 회복시키는건 오직 대통령의 권능이다. 대통령이 하는 일중에서 외교와 국방이 제일 중요하다. 문재인이 대북, 대미, 대일, 대중외교에서 펼쳤던 말도 안되는 일들을 그만 두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정상화된다.

 국가재정은 긴축으로 가라. 불편하겠지만 문재인 정부의 방만재정을 정상화시키려면 다음 정부가 욕먹는 수밖에 없다. 172석 야당도 긴축재정에 대해서는 별로 시비하지 못할 것이다. 야당이 '돈 더 써야 한다'고 그러면 못이기는척 받으면 되는 것이고. 국민연금 개혁은 해도 좋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재미없는 일인데 야당도 윤석열 정부가 해주길 바랄 것이다. 인기없어도 해야할 일을 하면 된다. 문재인 정부는 그런 일을 절대 안했다.

 요컨대 윤석열 정부의 역사적 사명은 부작위를 통한 '대한민국 정상화'다. 무얼 새로 꾸미고 무리하게 힘을써서 성취하려 해서는 안된다. 물 흘러가듯, 상식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 당장은 인기가 없을지 몰라도 1~2년 지나다보면 국민도 '아 이게 나라지'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다시 강조하는바, 신념이 흔들릴때마다 문재인 정권을 기억하라.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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